낭만

by dynamicyun

우리집엔 TV가 없다.
이사 오기전엔 침대 앞에 벽걸이 TV가 있었으나
아내에게 몰아닥친 미니멀라이프 열풍과 이사 시즌이
절묘한 순간에 만나 TV를 비롯한 여러 불필요 한것들은
한순간에 그 실체를 잃어버리고 새로운 집에서 그 종적을 감추었다.

TV가 없어 처음엔 무척이나 허전하였다. 자고 일어나면 엉덩이 몇번 북북 긁어주고
그대로 리모콘을 잡아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텅빈 거실 한 모퉁이에
그대로 멈춰서서 멍하니 베란다 밖을 바라보기만 하였다.

그래도 어느정도의 몫을 오래된 장전축이 대신해 주었기에 남아있던 상실감을 떨쳐 낼 수 있었다.
다행히도 새로 이사온 지역에는 주파수가 많이 잡혀 이래저래 라디오도 듣고
LP도 돌려가며 그럭저럭 지내다가
이내 곧 TV가 차지했던 빈 공간을 아날로그가 따뜻하게 채워주게 되었다.
왠지 모르게 아내와 나 이렇게 둘만 거꾸로 가는 세상을 사는거 같아 묘하게
낭만적이었다.

몇년간의 빈곤생활이 지속된 끝에 아주 오랜만에 주머니 사정이 조금 괜찮아졌기에
등짝이나 한대 얻어맞을 각오로 새로운 턴테이블하나 들여놓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꺼냈는데,
아내는 몇일 고심하더니
어이가 없게도 허락을 해주었다.

그 길로 나는 오디오이야기라는 가게에서 중고 턴테이블 하나를 가져오고야 말았다.
사람으로 따지면 중년이라 불리울만한, 오래된 장전축에 중고 턴테이블을 연결하여 들으니 그 소리가 몹시 좋았다. 그 순간을 그리고 그 감정을 느끼게 해준 아내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당장 먹고 살 돈으로 구닥다리 턴테이블 하나 샀다고 손가락질 할 수도 있을테지만,
못먹어도 좋은 그 소리와 순간을 우리는 더 사랑한 것이다.
생각해보니, 아내와 나는 매번 이렇게 살아왔던 것 같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행복한건 명확하다.

요즘은 모두가 낭만을 위해 낭만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처럼 보인다.
나중에, 조금 더 모아서, 그 때가 되면, 이라는 가정하에 모두의 계절은 멈춰 버린것만 같다.
낭만이 사치가 되어버렸고, 진정 사치라고 여겨야할 이외의 것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꼭 필요한 필수조건이 되어버렸다.

사랑하는 사람 눈을 바라보며 따뜻한 밥 한 숟갈에 행복할수 있는데, 우리는 그 행복을 누리려고
너무 먼 길을 가려고 하는것 같다.
낭만의 시대속에서 살아가고 싶다. 그래서 그 낭만을 그 여유를 그 시대를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싶다.
불행하게도 우린 낭만이 없는 시대 속에 살아가고 있다.
그마저 남아 있는 낭만은 이율과 효율이라는 세상의 냉혹한 기준 앞에 그 온기를 점점 잃어 가고있다.
용기를 내어야만 낭만을 끌어안고 살아갈수 있는 시대가 되어 아주 서글프지만
아내와 함께 이 고독하고도 낭만적인 삶을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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