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을 향유 할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일반적인 사람이었다면 그저 그렇게 지나갔을 법한 시간과 계절들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유독 혹독했다.
회사에서 나는 언제나 실수가 많은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아직까지 확인하지 못했지만, 나 자신은 확신했다.
나는 내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언제나 나는 그 사람들의 표정과 말투 억양 심지어 그 순간의 분위기에 모든 신경이 집중되었기에 나의 역할이 현재 무엇인지 심지어 나는 여기서 누구인지도 가늠하지 못한 채 한겨울에도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그 시간을 보냈다.
가족들의 기대와 세상의 기준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 내가 누구인지도 까맣게 잊어버렸다. 출근도장을 꼬박꼬박 찍어나가는 나 자신을 보며 위안했지만, 그 위안은 나에게 진정한 위로가 되어주지 못했다. 다 계획이 있는 듯이, 아무렇지 않은 듯 그렇게 회사를 나왔지만, 실제로는 도망치듯 나가떨어진 것이다.
나는 사회의 큰 대열에서 나가떨어진 패배자라는 자책이 오히려 더 편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어려운 건 내가 처한 혹독한 현실을 도무지 남에게 말로써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고 말로써 설명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에 더욱 외롭고 힘든 것이다. 어찌 됐건 나는 상처 나고 찢겨나간 곳을 대충 부여잡고 살아가려 했던 것이다.
한동안 답을 찾지 못해 말 그대로 병이나 버렸다. 약을 먹었고 치료를 받아가며 나 자신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하나둘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낭만 행세를 하고 있던 것들을 하나둘 찾아내 삶의 반경 밖으로 던져버리기 시작했다.
없으면 곧 죽어버릴 것만 같던 것들이 내 삶에서 다 떨어져 나가버리니 남아있는 것은 사랑하는 아내뿐이었다. 아내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울고 불며 때론 서로를 물고 뜯으며 살아갔다. 누구의 탓도 아닌 서로가 서로를 탓하기도 했고 서로를 감싸 안기도 하며 짧은 시간을 보내며 살아갔다.
빈털터리가 되어보기도 했고, 야간에 편돌이가 되어 주정뱅이들과 씨름도 해보았고 무더운 여름날 시장바닥에서 울분이 섞인 고함으로 과일 장수가 돼 보기도 했다. 낮은 사람이 돼 보기도 했고 그것보다도 더 낮은 곳에서 더 낮은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 보기도 했다.
그러한 위치와 신분이 결국 내 존재를 흔들거나 지우지 못했다. 빈곤이 결국 날 죽이지 못했다라는 것이다. 오히려 아내와 나는 혹독한 곳에서 아주 우연히도 진정한 낭만을 마주하게 되었다.
사실 가진 돈이 없어 돈으로도 사지 못한 낭만이 돼버렸지만, 어찌 됐건 그 순간과 낭만을 우린 돈으로 살 수 없었다.
아내와 나는 30년을 넘긴, 그 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로 이사했다. 이사비용이 없어 이삿짐 아저씨와 단둘이 아저씨의 눈총을 뒤집어써 가며 이사했다. 작은 집에 큰 가구들 틈바구니에서 나는 치지도 못하는 고장 난 기타를 가지고 노래를 했고 지현이는 나를 보고 웃었다. 그것은 낭만이었다.
돈이 없어 살 수 없지만, 사실 돈 따위로는 사지도 못하는 그 낭만을 우리는 발견한 것이다.
우리는 모두 완벽한 직선을 그릴 수 없다라는 말을 나는 참 좋아한다.
우리는 완벽한 직선을 그릴 수 없어 형편없는 선을 그어나갈 테지만 그 끝에는 분명 멋진 답이 존재할 것이라 믿는다.
세상은 빠르게 변해간다. 어제만 해도 철근이 듬성듬성 보였던 신식 아파트가 다 쌓아 올려져 나무와 하늘을 가려버린다. 수 없이도 많은 아파트가 올라가지만, 여전히 그곳에 살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우리의 이웃들은 무성하다. 그 이웃이 되어보니, 굳이 그곳에 살지 않아도 된다라는 것을 알았다. 이곳에 진짜 낭만이 있음을 진정한 가치가 있음을 깨닫는다.
최근,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엄청나게 벌어 재껴서 무한히 가치 있는 곳에 생명이 있는 곳에 쓰고 싶지만, 그렇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미약하게나마 움직이고 싶다. 아내와 함께 낮은 사람이 되어 낮은 곳에서 낯선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것이 내게 낭만이요 진정한 신념이다. 난 퇴사를 후회한 적이 없다. 내가 살면서 해온 선택 중 가장 가치 있는 결정이었으니까. 그럼에도 하나 아쉬운 점을 꼽자면 그 시절 수 없이도 마주했던 퇴근길 차창으로 보이던 내 모습에게 좋은 말 하나 해주지 못했던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퇴근길 자신을 우연히 마주하더라도 그날의 실수를 용서하며 못난 얼굴 한번 비웃고 넘겨버릴 수 있는 사람이 되길 소망한다. 자조적 낭만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멋진 사람이 되길 진정으로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