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과거의 지난날들을 많이 떠올리게 된다. 과거에 아주 사소하고 당연시되었던 것들이 요즘은 하나하나 다 소중한 기억이 되어 버린 것 같다.
누군가를 만나 같이 걷고 마음 놓고 크게 웃으며 함께했던 순간들이 그때 당시엔 조금은 번거롭고 귀찮기도 했었는데, 요즘은 괜히 그 시절들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대중교통 한복판에서 목구멍이 간지러운 내가 불안하다. 어쩌다 헛기침이라도 한번 할 것 같으면 나도 내 상태가 의심스러워 조금은 불안해진다. 계속해서 내 존재를 의심해야 하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는 게 가끔은 믿어지지 않는다.
모두에게 삶이 버거워지다 보니,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는 시대가 더욱 짙어진 것 같다. 소확행이라는 단어 자체는 사람들 사이에서 잊혀 가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미 삶 곳곳에 스며들어 이젠 당연시되어 버렸다. 오늘 나의 작은 행복이 내 삶 전체가 되어버리고 있는 것만 같아 조금은 걱정스럽기도 하다.
내가 가진 바이닐 레코드가 몇 장인지나 새 알려보는 재미에 흠뻑 빠질 줄이나 알았지 최근 내 이웃의 가난과 고통을 돌아보고 헤아리려 했던 순간은 도대체 언제 적이 였던가 그래서 오늘은 핸드폰 메모장을 키고 내가 살면서 기억해야할 몇가지 것들을 적어보았다.
오늘은 등교개학을 맞이하여 나의 아내 지현이가 아파트 맞은편에서 교복을 입고 담배를 피는 고딩2학년을 잡아 담배를 다 부러뜨리고 훈계를 했던 이벤트가 있었다. 어찌나 그모습이 훈훈 하던지 나의 학창시절 지현이와 같은 어른을 만났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오싹한 감정이 들어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올렸다. 그래도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삼삼오오 거리를 가득 메우니 그 모습이 정겹고 생동감 있었다.
우리나라는 학생들에 대한 아주 슬픈 기억을 안고사는 나라다. 몇몇 어른들 에겐 그 기억을 떠올리는 일이 불편해보이기도 하지만, 오늘을 사는 내가 수학여행을 떠난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 324명을 끝까지 기억하리라 다짐했다. 나도 그 어른들의 대열에 끼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아야할까 고민하며 메모장에 꾹꾹 눌러담았다.
요즘엔 아파트를 올리는 일이 무척이나 쉬워진 모양이다. 빼곡한 고층아파트 사이에 아름다운 조경을 자랑하는 공원이 즐비하다. ‘뉴타운’ 이라는 값진 이름뒤에 이름 석자 온전히 남기지 못한채주거권을 박탈당한 철거민들을 떠올리며 메모장에 기록해본다. 그들과 하나의 터전에서 함께 살아갈 날이 언제쯤 찾아올까. 비록 남의 집에 살고는 있지만 따뜻하고 마음 편히 누울수 있는 공간과 장소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감사하며, 아직까지 온전히 눕지 못하고 고통의 현장속에 갇혀있는 용산참사의 희생자들을 떠올리니 동시에 가슴이 아팠다.
최근엔 이 시대에서 가장 나약하고 힘없는 누군가가 목숨을 잃었다. 그가 남긴 것이라곤 맞춤법틀린 유서몇장이 전부여서 가슴이 찢어질듯 아팠다. 햇살좋은 날에 꾸벅꾸벅 단잠에 빠져계신 우리집 아파트 경비아저씨가 난 따뜻해서 좋았다. 항상 306호 사는 나를 1906호에 사는 청년으로 기억하시지만 그 오래된 기억력 마저 정겹다. 아저씨를 더 사랑하리라 다짐했다.
누군가의 동선이 그토록 중요해진 요즘 오늘의 나는 어떤 작은 것에 집중했고, 어떤 작은 것에 열을 올리며 발자국을 찍어왔는가 떠올려본다. 가난과 차별과 같은 것들에 대해 떠올리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이 거대한 것들이 보잘것없고 초라한 블로그에 글자로 남겨진다는 게 부끄럽고 창피스럽지만.. 이번 블로그는 절대 지우지 않으리라 또 다짐해 본다..
코로나가 사람들을 참 불편하게 하면서 동시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 같다.
우리의 한마디와 손끝 하나가 다수의 사람에게 얼마나 막대한 영향력을 갖는지 실체적으로 깨닫게 되는 일들이 많다.
요즘은 슈퍼라는 형용사를 전파자 앞에 붙이는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 모두의 존재 앞에 슈퍼를 붙여야 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지금과 같은 시국에선 무시무시한 단어가 되어버렸지만, 나 한사람이 하는 생각과 말 행동들이 모여 누군가의 처절하고 고단한 삶 끝에 닿을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나 또한 슈퍼전파자가 아닐까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내 존재에 대한 영향력을 가늠할 수 없지만, 적어도 과소평가 하진 말아야겠다. 마스크로 얼굴의 절반을 뒤덮인 현실일지라도 우리의 존재는 결코 작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