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 records never die

by dynamicyun

TV의 등장과 함께 라디오시대의 몰락은 어느 2인조 팝가수의 노래로 시작되었다. 그들은 라디오스타의 죽음을 노래했고, 실제로 라디오에 관련된 모든 것이 죽음을 맞이했다. 그런데 가느다란 단선을 타고 흐르던 라디오의 맥박은 따뜻함이란 정체성을 가지고 주파수를 조정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영상시대를 배경으로 죽어가는 듯 사람들을 감싸 안으며 다시 부활한 것이다.

그 생명력에 푹 빠져 중학생 때는 시험공부라는 좋은 명분을 가지고 밤늦게까지 라디오를 들었다. 늦은 새벽시간의 공기를 감싸는 오프닝 곡의 도입부가 너무 좋아서 나는 유희열의 올뎃 뮤직을 매주 청취했다. 신호가 좋지 않을 때는 안테나를 손가락으로 잡아가며 라디오를 들었는데,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전축의 라디오 선을 꼭 쥐고 있는 내 모습과 묘하게 겹쳐 괜히 기분이 좋았다. 주파수를 타고 흐르는 라디오의 신호는 여전히 따뜻했다.

나의 세대는 모두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순간 속에 살았다. 그러니까 음악을 듣기 위해 연필 끝으로 카세트 테이프를 돌리다가 그 연필을 내려놓고 모두 엠피쓰리를 목에 걸고 다녔다는 말이다. 지금은 손가락 터치 몇 번으로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대 속에 살고 있지만, 사실 좋아하는 가수의 음원을 cd에 불법 복사해서 몇 장씩이나 가지고 다녔던 시절을 우리 모두는 간직하고 있다. 지하철 외판원 아저씨가 틀어주는 올드팝 cd를 들으려고 스마트폰의 음악을 멈추는 이유는 아마도 우리의 정서가 여전히 그곳에 머물러 있기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주차장 길바닥에서 반가운 아날로그 신호를 발견했다. 경비아저씨의 손글씨였다. 아마 오전에 출근하는 사람들을 위해 미리 붙여 놓으신 것 같았다. 인쇄되어 찍혀 나온 안내문 한 장보다, 같은 내용을 다섯 번이나 펜으로 눌러 담아 쓴 경비아저씨의 손글씨가 유난히 더 따뜻하게 느껴져 좋았다.

오늘도 나는 라디오를 듣는다. 신호가 잡히지 않아 선을 꼭 쥐어보기도, 주파수를 이리저리 돌려보기도 했다. 그런데 갈피를 못 잡고 지지직 소리만 내는 라디오가 왠지 모르게 지금 내 모습과 같았다.
사실 새로운 학원에 등록하고 몇 주간 괜찮았던 마음 상태가 엉망이 되었다. 불안하고 이유 없이 가슴이 두근거려 몹시 불편해 결국 첫 수업은 나가지 못했다. 기상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일찍 눈을 떴음에도 일어나지 않을 일들을 계속해서 상상하다가 이불속에 숨어버렸다. 낯선 환경과 사람들이 무서워 이불속에 숨어버린 삼십 대 청년을 나는 결코 이해할 수 없었고, 물론 사랑할 수도 없었다.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 홀연히 두 개의 단선으로 주파수를 맞춰가며 살아가는 나의 걸음은 너무 미약하고, 느렸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제 자리를 찾아 정확한 속도로 잘 달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난 언제쯤 내 주파수를 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언제쯤 난 나만의 소리를 낼 수 있을까. 우울했고 두려웠다.

그런데 그 며칠간 라디오의 죽음과 아날로그의 생명력이 내 머릿속에 계속해서 맴돌았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라디오의 부활처럼 그리고 바닥에 붙은 경비 아저씨의 손글씨처럼 나도 죽어가듯 다시 살아나고, 바닥에 붙은 채로 남을 위해 존재하며 그렇게 살아가고 싶었다.

5g 시대 속에 가장 걸음이 느린 누군가로 살아야 할 것 같다. 내가 평안을 찾을 수 있는 그 보폭으로 아주 적당히 그리고 천천히 그렇지만 그 누구보다 따뜻하게 나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 같다.

이불속에 숨은 그때의 나는 언젠간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하지만 더 멋지고 가치 있는 누군가로 다시 살아날 것이라 애써 믿어본다.

라디오의 부활처럼 찬란히, 그리고 아날로그의 생명력처럼 아주 단단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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