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

by dynamicyun

오해하고 있었다.
세상 사람들을.
모두 다 나 처럼 우울하고 불안하고 불만족스러운 일상을 채워나가고 있는줄로 알았는데,
저마다 나름의 행복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죽고 싶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니,
이렇게 비참하고 비극적인 세상속에서 사는데 어떻게 죽고 싶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지?
분명 출근하는 모든 사람의 표정이 울상이었고, 월요병이니 뭐니 하면서 모두 다 회사에 나가기 싫다고 했으면서
아니 왜 그토록 그리고 무엇을 위해서 일을 하며 버티고 있다는 말인가.
돈을 위해서? 그래, 맞아 결국 돈이구나. 빌어먹을 돈!
그렇다면 나는 그렇게 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에서 온갖 잡다한 신앙 서적을 읽고 나 혼자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나를 제외한 세상 사람들을 비난하고 비평했다.
몸과 마음은 그렇게 점점 말라가고,
눈은 시퍼렇게 뜬 채로 세상을 그리고 사람들을 노려보며 다녔다.

주변 사람들 그 누구도 나의 현실에 대해 비난하며 시비 거는 사람이 없었음에도
하나둘 내 마음속에 강제로 끌어 들여와 그 사람을 두들겨 패듯 그리고 취조하듯
따져 물었다.
결국엔 당신도 돈이구나 좋은 집이구나 좋은 차구나 하면서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가 딱 사춘기를 지나 사쩜 오춘기쯤 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모두 나의 자격지심이었다.
돈 이 없고 좋은 차가 없고 새 아파트가 없어서
그렇게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내가 나에게 하는 일종의 생채기 같은 것들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 모든 걸 다 내 손안에 넣고 싶었음에도
나는 그렇다고 이야기하지 못하고 나 자신을 속였다.

사실 그 모든 것들이 갖고 싶었다.
아니, 더 명확히 이야기하자면 지금 이렇게 이런 꼴로 살아가는 게 몹시도 창피하고 싫었다.
지하 주차장과 집이 연결되어있는 신축아파트에서 살고 싶었고, 차박이 가능한 고급 SUV가 타고 싶었다.
그뿐만이랴
지갑에 두둑이 돈을 꽂아 넣고 여유 있게 웃으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돈도 턱턱 빌려주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부모님에게, 장인 장모님에게 용돈 하시라고 돈 봉투도 손에 딱딱 쥐여 드리는 아들이 그리고 사위가 되고 싶었고
고상한 서적이나 읽어대며 정신병원에나 다니는 내가 싫었다.
그렇게 미운 삼십 대 초반을 보내고 있는 나에게
어떤 환멸감 같은 것들이 몰려온 것이다.

그런 미운 날
그래도 김 서방 김 서방 불러주신다.
장모님께서 내게 새 운동화를 신겨주셨을 때
그 미운 마음이 눈 녹듯 녹아내렸다.
좋은 집이고 좋은 차를 떠나서
좋은 사위가 되고 싶었는데,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장모님께서 사주신 새 운동화를 신고 땅을 밟았을 때 뭔갈 깨달았다.
어쩌면 이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내가 오해하고 미워하고 증오했던 세상 사람들이
그깟 돈 때문이 아니라 소중한 누군가에게 옷을 입히고 신을 신겨주기 위해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있었구나. 자신이 아니라 어떤 누군갈 위해서 서로가 서로를 돕기 위해서
치열하게 일하며 그렇게 돈을 벌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당연한 무언갈 돌고 돌아 장모님께서 사주신 새 운동화를 신고 나서야 깨달았다.

좋은 사위가 되자.
좋은 아들이 되고 좋은 남편이 되자.
남에게 손가락질하려고 나만 고상한 척하려고 잡다한 서적에 밑줄이나 박박 그으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아침에 일찍이라도 일어나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 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구나 떠올렸다.
물론 일 하는 것으로 또는 돈을 버는 것으로 나의 모든 책임과 존재를
대신할 수 없지만,
집안에 꽁꽁 숨어 이불을 싸맨 채로 오늘 죽느니 내일 사느니 하는 게 아니라.
결국 우리는 모두 집 밖을 나서야 하구나, 겨우 깨달았다.

세상 사람들을 오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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