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꽃시장을 따라가면,
나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지현이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닌다.
지현이는 이 꽃 저 꽃 눈으로 손으로 일일이 다 확인하며,
본인이 찾고자 하는 예쁘고 건강한 꽃을 고르며 당찬 목소리로
“아저씨, 이건 얼마예요?” 하며 물어보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쾌활하고 당돌한지
피어 있는 꽃만큼이나 생기있다.
그렇다고 꽃시장이 좋은 건 아니다. 자정부터 문을 여는 새벽 꽃시장은
아주 좁은 공간임에도 사람들이 붐빈다.
많은 사람이 협소한 장소에 있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나로서는
꽃시장은 아주 불편하고 불쾌한 장소쯤 된다.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지현이는 꽃을 잘 고른다.
제값이면 더 좋은 꽃으로, 좋은 꽃이면 기왕이면 더 싸고 싱싱한 것으로 말이다.
그러려면 손으로 이꽃 저꽃을 살펴야 하는데,
나는 그 과정이 몹시 불안하다.
왜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금방이라도 가게 사장님이 화를 낼 것만 같다.
물론 지현이는 꽃이 다치지 않게 조심스럽게 들어 올리고 살피기를 반복하지만,
그 모습 자체가 불편하고 불안하다.
어떨 땐 “지현아 제발 그냥 눈으로 보자, 응? 이꽃 저꽃 다 똑같아 보이는데,
왜 유독 너만 꽃을 고르는 거니” 하며 불쑥 화를 내고 싶다.
심지어 수기 영수증을 요구하고 거기다 주차권까지 이야기하는 지현이를 볼 때면
나도 모르게 한 발짝 뒤로 빠져 다른 곳을 쳐다보게 된다.
병원에 다니지 않았으면 혼자서 기분이 나쁜 채로 아무 소리 하지 않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병원에 다니면서부터 이러한 모든 감정과 생각이 일반적이고 보편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선생님이 가르쳐준 대로 그 마음 그대로를 응시하며 지나가듯 바라본다.
그러면서 동시에 지현이를 포함한 시장 사람들의 모습을 쳐다본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는데,
그 모습 자체가 내겐 너무 부러운 광경이었고, 나도 그 한가운데 뛰어들고 싶었다.
모두가 같은 공간에 존재함에도 나는 그렇지 않았다.
어느 날은 책을 읽는데,
본문의 글씨 크기보다 더 작은 크기로 존재하는
엮은이와 펴낸이의 이름이 보였다.
저자만큼이나 그 책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은 이들임에도
아주 작은 존재감으로 페이지 한 곳에 숨어있는 사람들.
아무런 조명도 관심도 크게 받지 못하는 역할.
문득 내 인생이 꼭 서적의 엮은이나 펴낸이 같이 느껴졌다.
심지어 내가 만든 책이고 내가 만들어갈 인생임에도
나는 내 인생에 있어서 엮은이와 펴낸이만을 줄곧 자처하고 있었다.
나도 바깥에 사람들처럼 아무렇지 않게 가격을 흥정하고,
옳지 못한 것에 따져 묻고
나의 의견을 명확히 그리고 아주 큰 소리로 피력하며
그렇게 내 삶의 진정한 글쓴이로 살아가고 싶었다.
그러려면 오늘 내가 해야 하는 한가지.
바로 ‘명상’이다.
벌써 몇 주째 하지 않고 있다.
병원 선생님에게 거짓말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거짓말 할 때마다 찔리듯 가슴이 아프고, 잔잔하게 이마에 땀이 차오른다.
사실 명상을 하려는 다짐으로 이렇게 긴 글을 쓰고 있다.
오늘은. 기필코 오늘은 명상하리라.
지나가는 모든 감정과 생각들을 묵묵히 지켜보리라.
그리고 그것들을 구름이 지나가듯 바람에 맡기리라.
다짐 또 다짐한다.
그래야 얼른 세상으로 나가지.
그렇게 사람들의 표정과 말투에 오해하지 않고
그 사람들과 한때 섞여 이야기하고 허허실실 여유 있게 웃어도 보고
때론 역정도 내보고 따져 묻기도 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