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슬폴락과 김창완

by dynamicyun

몇 년 전 퇴사 여행을 갔을 때 어느 뉴욕 미술관의 수많은 그림 중
잭슨 폴락의 넘버 6이라는 그림이 너무 보고 싶었다.
딱히 그 그림에 어떤 사연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심지어 미술에 대한 조예가 깊은 것도 아니었지만
아무 이유 없이 그의 그림이 좋아서 항상 마음속에 걸어두었다.

그때 아마도 바쁘게 다음 행선지를 가려던 참이어서
나의 아내가 잭슨폴락의 그림만 얼른 보고 가자고 제안해주었다.
잰걸음으로 미술관 이곳저곳을 뒤져 그 미술관에 하나 걸려있는 그의 그림을 찾아다녔고,
성인 남성 세 명이 들어야 겨우 옮길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걸려있는 그의 그림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림을 감상하면서 무언갈 느낄 여유가 없었다.
그냥 그의 그림이 어느 뉴욕미술관 모퉁이에 위치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정도로만 그림을 쳐다봤다.
뭔가 그리다 만 것 같기도 하고 온통 실수투성이에 아무런 규칙과 조화도 없이
그저 유화 물감이 이리저리 튀어 있는 꼴이 참 재미있었다.

나는 어떤 그림을 볼 때 작품 설명을 자세히 보지 않는 편이어서
잭슨 폴락이 그 그림을 어떤 이유에서 그렸고
관람자가 어떤 목적과 마음으로 감상해주길 바라는지도 몰랐다.
심지어 그때 당시엔 그 사람이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냥 그 그림이 마음에 들었다.

김창완 아저씨가 하얀 종이 위에 그린 수십 개의 동그라미처럼 그냥 그 그림이 마음에 들었다.
갑자기 무슨 노래하는 김창완 아저씨냐 하겠지만. 아저씨는 그 동그라미 뒤에 이 말을 덧붙였다.
“제가 그린 47개의 동그라미 중에 겨우 2개만이 그럴듯합니다.
회사생활이라는 것도 47일 중에 이틀이 동그라면 동그란 것입니다.
너무 매일매일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그렇다고 위에 그린 동그라미를 네모라고 하겠습니까? 세모라고 하겠습니까? 그저 다 찌그러진 동그라미입니다.
우리의 일상도!”
나한테 잭슨 폴락의 그림은 김창완 아저씨가 그린 47개의 동그라미와 같은 의미였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얼마나 많은 동그라미를 그리며 살았고
과연 그중에 제대로 된 동그라미는 몇 개가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런데 잭슨 폴락의 넘버6그림처럼 이리저리 실수투성이 같은 모양들이 한때 어우러져
뭔가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지는 걸 보면서
어떤 희열 같은 것을 느꼈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살면서 인생이란 게 뭘까 심각하게 고민해왔었는데,
산다는 게 찌그러진 동그라미도 그리고
유화물감을 이리저리 흩뿌려도 보고 아니면
그냥 와장창 모든 걸 다 쏟아버리며 사는 게 인생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해 본다.


내가 아는 세상은 진정한 작품이라는 게 없다.
절대적인 기준 안에서 언제나 완전해야 하니까.
이 범위 안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게 되면 무언가 큰일이 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김창완 아저씨의 말처럼 인생이 자로 잰 듯이 정확히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완성하려 하는 이 종이책 안에도 얼마나 많은 문법적 오류가 존재할까.
그래도 이 책을 받게 된 누군가가 이 정도 페이지까지 책장을 넘겨줬다는 건
아마도 나의 모든 실수를 찌그러진 동그라미로 보지 않고 잘 그린 동그라미로 봐준 건 아닐까.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가 다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타인의 잘못과 실수 앞에서 언제나 비평하는 사람이 되지 않고
그저 그런 모든 것들을 하나의 그림이라 여겨주었으면 좋겠다.
언젠간 멋진 작품으로 어딘가에 걸려있겠지라는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우린 모두 그럴 수 있다고 믿는다.
이 말도 안 되는 책을 쓰는 나를 포함해서
기대감을 가지고 인내하며 책장을 넘겨준 당신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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