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by dynamicyun

아빠.
전자오르간 소리가 너무 좋아요.
앰프에 헤드폰을 꽂고 노래를 듣는데
진짜 좋네요. 지미스미스 라는 뮤지션인데 요즘 제가 참 좋아하는 연주자입니다.
지미스미스는 얼굴이 까맣고 짧은 곱슬머리를 하고 있어요. 흑인이거든요.
그냥 요즘 제가 어떻게 지내는지 잘 모르시는 거 같아서요.
갑자기 왜 바다 건너 흑인 이야길 하는지 아빠는 아마 잘 모르실 거예요.
그냥 이런 이야길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요즘 어떤 공부를 하는지 미래를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어떤 정신 상태로 살아가는지에 대한
이야기 말고, 한 번쯤, 요즘 어떤 노래를 듣고 있나, 무슨 반찬이 맛있었나 하는 지극히 보편적이고 잔잔한 바다 같은 이야기를요.

제가 철이 없던 탓에 몇 주 전에 심하게 다투었죠.
그래서 몇 번이고 되돌아봤어요.
아빠를 이해하고 기다리고 한 번 더 생각했어야 했는데, 아빠와 저 사이 어딘가엔
음악 같은 이야긴 애초에 없었던 것 같아서요.
그래서 이렇게 활자로, 아주 일방적인 방법으로 제 소식을 전해 드리고 싶었어요.
음악 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길 하면서요.

한번은 바이닐 커버들을 하나씩 열어보고 구경하는데,
어떤 기타리스트가 본인 앨범커버에 이런 이야길 적어 놨더라고요.
제가 해석을 잘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이런 글이었어요.
본인이 생각하는 블루스는 어떤 특정 음악의 구조도 아니고, 뻣뻣한 하나의 음악 장르도 아니다.
블루스는 티본 워커이고 지미리드이며, 더스테이플싱어이다. 또한 존 콜트레인이며, 때때로 비틀스나 롤링 스톤즈다.

저는 음악을 배워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나이가 지긋이 든 재즈 블루스 기타리스트임에도
음악의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모든 음악 장르를 인정하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이분을 통해서 많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었어요.

제가 어떤 악기를 가지고 연주를 하는 사람이었다면,
이런 마음으로 음악을 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니까.
인생도 이렇게 살아가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봤습니다.
나이를 먹고 많은 경험을 했다 해도 이 세상에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존중하기로 하면서요.
그 다양한 사람들 속엔 물론 아빠가 포함될 수도, 저 자신이 포함될 수도 있겠죠.

그래서 저는 아빠를 앨튼 존 같은 사람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아빠의 음악 장르를 받아들이기로 한 거죠.
아빠한테 저는 어떤 아들이고 어떤 뮤지션인가요?

요즘엔 글을 쓰고 있어요. 말하게 될 일도 없겠지만
어렵게 이야길 꺼내도, 글쎄 어떤 말을 해주실까 벌써 불안해지려고 해요.

저는 왜 아빠에게 이런 사소하고도 시시한 말을 하지 못할까요.
왜 저희는 꼭 세상에 어떤 사람이 되어야만 서로에게 당당해질 수 있을까요.
아빠는 아빠대로 저는 저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해도, 어떤 사람이 되지 못해도,
정년퇴직 후에 방황하던 퇴사 후에 길을 잃어버리던
그냥 그 모든 걸 다 집어 던지고 아빠와 아들의 신분으로 만나 아무 이야기나 하면 안 되나요.

사실 아빠의 성격은 앨튼 존의 노래와는 상반되지만, 그래도 아빠를 그와 같은 사람이라 생각한 건
그 사람은 아빠보다 열 살이나 많은데 아직 살아있거든요.
그래서 오래 사셨으면 좋겠고, 이 사람이 하는 음악처럼 편안하고 희망적인 분이 되셨으면 해서요.
저도 어떤 직업을 가진 어떤 회사에 다니는 아들이 되기보단
매 순간 희망적인 노래를 부르는 아빠의 아들이 될게요.

아빠가 좋아하는 에릭 클랩튼의 UNPLUGGED 라는 앨범이 보이네요.
원더풀 투나잇을 함께 들을 날이 올까요?
아마 시간이 필요하겠죠.

오늘은 엘튼존의 노래를 들으며 잠을 청해야 할 것 같아요.
다시 뵐 때까지 건강하세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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