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발견한 건 나의 대학 시절, 어떤 아트페어의 작은 부스에서였다.
딱히 그림을 감상하는 기준이 없었고, 유일하게 알고 있는 예술가는
대학 때 책에서 만난 잭슨 폴락과 유화 물감이 이리저리 튀어있는 그의 그림뿐이었다.
그때 내가 본 그림은 대충 이러했다.
진한 하늘색 바탕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온몸을 구부린 어떤 사람의 그림이었다.
그런데 굵은 선으로 표현된 관절과 골격이 내 시선을 압도했던 것 같다.
뼈와 그 뼈에 붙어있는 살과 근육의 표현이 마음에 무척 들었고 인상적이었다. 그 이상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어 그림 앞에 서성이길 여러 차례 반복했다.
인간의 몸으로 한없이 작아지길 표현했지만, 그렇게 할수록 그 모습과 형태는 오히려 과장되고 실체적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렇다. 말도 안 되는 감상법의 반복일 뿐이다. 아무튼 한마디로 그 그림은 내게 너무 좋았다.
당시 여자 친구였던 나의 아내에게 달려가 손을 붙잡고 그 작은 부스로 이끌었다.
그곳에는 그 그림의 작가가 있었고, 별안간 나는 그분에게 분명 잘 되실 것 같다는 밑도 끝도 없는 인사를 남겼다.
곧장 악수를 청했고, 그 후 민망한 손을 둘 데가 없어
손으로 주머니를 후벼팠다. 아무리 후벼파도 그 그림을 살 수 있는 돈은 내게 없었다.
어떤 그림에 그렇게 강한 인상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작은 형태의 그림이라도 가져가 원룸 방 내 책상 위에 올려두는 상상까지 했다.
그 진한 하늘색인지 청록색인지 하는 색깔 위에 꿇어앉은 고통스러운 형태의 그림체가 너무 갖고 싶었다.
그런데 며칠 뒤 이제는 반대로 아내가 나의 손을 붙잡고 찾아간 곳은 작업실이었다.
성수동 어느 골목길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나는 그 작가와 다시 마주할 수 있었다.
아내가 생일 기념으로 그 그림을 선물하기 위해 날 데려간 것이었다.
기분이 무척이나 좋았다.
그 그림을 그린 작가와 꽤 친해졌다. 지금은 형아라고 부를 만큼.
그림 속 웅크린 사람이 마음에 들어 그림을 사게 된 것이지만
형이랑 이야기할수록 작품만큼이나 사람도 참 좋았다.
형은 성수동 어느 골목, 작은 빌라에서 사는데
그는 언제나 까까머리에 수수한 옷을 걸치고 그 옷 어딘가엔 꼭 페인트를 묻히고 다닌다.
손톱에는 항상 새까맣게 물감이 번져있는데, 아내와 나는 그 인간적인 모습을 너무 좋아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어느 동네 작은 골목에 그 선하고 꾸밈없는 사람이
그러한 모습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에 기분이 좋았고,
그런 형이 어딘가 멋있어 보였다.
사실 형이 유명해지지 않았으면 했다. 그냥 성수동 작은 방안에서 까까머리를 한 채로
새까만 손으로 멋진 그림만을 그렸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어느 순간 형이 일약 스타덤에 올라 유명세를 겪고
벤츠를 타고 손목에는 롤렉스 금장시계를 차고 다닐까 봐 겁이 났다.
하지만 내 생각으로 언제까지나 형을 성수동에 가둬둘 수는 없는 문제다.
진심으로 형이 더 잘되길 바란다.
아니, 여러 가지 의미에서 그는 분명 더 잘 될 거다.
집에 걸려있는 그 그림을 보면서 매번 느끼는 건
나도 형처럼 꾸밈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무언갈 꾸미지 않아도 멋진 사람으로 살고 싶다.
형이 그린 그림처럼 온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아도
그 자체로 모든 것을 표현하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모든 삶이 아주 자연스럽게 변해 갔으면 좋겠다.
당장이라도 옷에 물감을 묻히고 손톱을 까맣게 칠할 순 없지만,
나도 형처럼 그렇게 모든 삶이 한 폭의 그림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동경하고 좋아하는 작가와 뮤지션은 모두 죽고 없다.
그래서 형이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느 고독한 예술가처럼 마약 하지 말고, 코카인 하지 말고
알코올 중독 걸리지 말고, 우울증에 신경쇠약에 시달리지 않고
권총 자살하지 말고, 특히 코로나 걸리지 말고,
죽지 않고 오래 살아서 계속해서 멋진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로
살아갔으면 좋겠다.
형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