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어언 3년째다.
일이라는 것을 하지 않고 살아온 시간이.
사실 엄연히 일이라고 한다면,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것저것 더 많이 해본 게 사실이지만.
아마 세상은 그 시간을 인정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의욕이 없다는 표현보단 딱히 취업해야 할 만한 결정적인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럼 우리 어떻게 3년이란 시간을 살아 온 걸까.
그런데 오늘도 밖을 나서려고 현관문을 열었더니,
글쎄 실한 대파 몇 줄기와 검은 봉투에 상추 고추 파프리카가 담겨
문고리에 걸려있었다.
어쩌다 숨만 쉬면 나가는 돈을 내지 못할 때면
그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헐떡거리며 살아가야 하지만,
아주 가끔 숨을 잘 못 쉬는 것 말고는 큰 문제가 없다.
퇴사하고 막상 돈줄이 끊기고 나니 온갖 불운한 상상을 했다.
그런데 그 흔한 공과금을 내지 못하는 상황이 현실이 되자,
가스비도 못 내는 운명이구나. 그래, 이렇게 굶어 죽는구나 싶었다.
매일 가스레인지를 켤 때마다
틱틱 거리는 소리가 너무 두려웠다.
계속해서 그 소리만 내다가 결국 파란 불꽃을 보지 못하게 될까 봐.
지현이와 손을 잡고 빵집 앞에서 갓구운 빵을 바라보며
다음 달에 조금 더 넉넉해지면 꼭 사줄게! 하며 지현이를 꽉 안았다.
사랑하는 아내 빵 한 쪼가리도 못 사주는 내가
죽일 듯이 한심했지만, 깊어진 우울증은 한없이
내 몸뚱이를 짓눌렀다.
그래서 요즘은 그 어느 때보다 좋다.
빵뿐만 아니라 맛있는 것 이것저것 사 먹을 수 있고,
심지어 최근엔 결혼기념일 선물로 지현이에게
카메라를 선물할 수 있었다.
그제야 물질이 내 삶에 미치는 영역과 한계를 가늠할 수 있었다.
내게서 돈은 갓구운 빵 한 쪼가리와 새 카메라까지의 영역이구나 싶었다.
다시 말해, 그 이상의 것들은 내게선 아무런 의미와 영향이 없었다.
그래서 더는 많이 벌 필요도, 나의 시간과 영혼을 소진하면서까지
물질을 쌓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회사 다닐 때 그렇게 땀을 줄줄 흘리며 일했는데,
땀 한 바가지 쏟아 번 돈으로
그달 카드 명세를 보니 뭔가 공허했다.
수십 마리의 치킨 그리고 출처를 알 수 없는 물건들
무심코 긁어버린 아무 의미 없는 생활용품과
형형색색 수십 벌의 옷을 발견한 것이다.
결국 나는 수십 봉의 닭 다리를 뜯기 위해
형형색색의 우아한 공작새가 되기 위해
그렇게 출퇴근 나 자신을 죽여가며
처절하게 땀 흘리고 일을 한 것이었다.
물론, 의미 있게 일하고 의미 있게 벌어서 좋은 곳에 쓸 수도 있었지만,
글쎄, 수십 번 시간을 다시 돌린다 해도 나는 또다시
마그네틱이 다 닳도록 아무 의미 없는 곳에 카드를 긁어버렸겠지.
그래서 꼭 필요했던 것이었다. 내 인생에서.
지현이와 빵집 앞에서 서러웠던 순간이.
가스비조차 제대로 내지 못해
두근두근 가슴 졸여가며 가스레인지 불을 켜야 했던 순간이.
그래서 요즘엔 땀 냄새나는 내 몸뚱이 씻어줄 따끈한 물에 감사하고
밥솥 뜨겁게 집혀주는 불을 켤 수 있음에 감사하고
어두운 집 밝게 비춰주는 광명이 있음에 감사하며,
특히, 이 모든 것에 대한 비용을 지불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살아간다.
요즘엔 내가 일을 해야 할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기 시작했다.
예전엔 어떤 것을 소비하고 소진하는 사람이 되어 일했다면,
지금은 누군갈 감싸 안을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 내가 이직을 할 수 있게 된다는 아주 극적인 전제가 있어야 하지만.
그런데 이 지긋지긋한 내면의 병 또한 깨끗이 닦아버리고
난 다시 그곳으로 나설 수 있을까.
다시 나서면 함께 가야지 그리고 같이 가줘야지
치킨도 사주고 닭 다리도 양보해야지.
그렇게 일하고 돈 벌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