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개똥철학

by dynamicyun

오늘은 나의 고독한 음악 외길인생을 몇 자 적어보려 한다.
사실 나는 음악으로 외길을 걸어본 적도, 고독하게 음악을 공부한 적도 없다.
그냥 살면서 음악을 들었을 뿐이다.
들여다보면 아무것도 없는 깡통 같은 이야기이지만,
그래도 나름의 연대기와 서사가 있으니 개똥철학 정도는 되지 않을까 스스로 생각한다.

극히 과장해서 이야기하자면 마치 빌리엘리엇의 오프닝 시퀀스 같은 만남이었다.
빌리엘리엇은 무슨 노랠 틀어놓고 침대에서 방방 뛰었는지 모르겠다.
사실 이 부분도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나름 내 음악 외길인생 가운데 그 진실성을 강조하고자 검색은 따로 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나도 음악을 틀어놓고 옆집 친구와 침대 위를 방방뛰며 벽지에 붙은 구구단표를 외웠다.
비트 사이사이에 구구단을 끼워 넣고 큰소리로 외웠는데, 그때 노래가 유승준의 나나나 였다.
지금은 국내에서 뵐 수 없는 분이지만.

구구단을 외우며 처음으로 느꼈던 것 같다.
‘아, 이게 음악이구나!’

그렇게 좋은 첫 만남을 시작으로 친누나의 마이마이를 통해 당대 유행했던 많은 노래와 가수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지금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자면, 신성우의 서시, 패닉의 달팽이, 웨스트라이프의 마이러브, 블루의 소리심스투비더하데스트워드 등등 시대의 순서는 맞지 않겠지만 당시를 떠올리면 이 정도가 생각난다.
그때 나는 카세트, 시디플레이어, 라디오 이 세 가지 소스로 음악을 들었다.
카세트나 시디는 뮤지션의 음원을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매력이 있다.
그래서 방 한쪽에 플레이리스트가 실제로 존재했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그때는 내 방, 그러니까 나의 공간이라는 것이 명확하지 않았던 때였기에, 누나 방 빼곡히 정리되어있던 시디와 카세트를 만지작거리고 앨범 커버를 몰래 꺼내서 보기도 하고 그랬다.
지금은 그 모든 것들이 음원 애플리케이션 속에 빨려 들어갔지만.

아무튼, 아무리 불법으로 복사해서 음악을 듣는다 해도 복사를 해야 하는 과정이 사실 그리 간단하지 않았기에
음지에서든 양지에서든 어딘가로부터 시작돼 나에게로 온 음악을 꽤 소중하게 여길 수 있었던 것 같다.

나의 아버지는 인켈에서 만든 앰프와 턴테이블 그리고 스피커가 있었다. 어떤 음악을 좋아하셨는진 모르겠다.
지금 기억나는 건 여명의 눈동자 OST가 있었고 나나 무스 꾸리의 앨피도 있었는데,
엄마는 나나 무스 끄리와 같은 헤어스타일과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다니셨다.

그때 정확히 기억나는 건 턴테이블이다. 완전 자동식.
버튼 하나만 누르면 턴테이블의 암대가 엘피 시작점에서 내려앉고 노래가 끝이 나면 제자리로 돌아왔던 기능.
어린 시절에는 그게 무슨 로봇 팔처럼 보여서 눌렀다 멈추기를 반복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나의 행동이 아찔하다.
아버지는 그 모든 과정을 그저 지켜보셨겠지. 그 로봇 팔은 사실 무쇠 같은 것이 아니라, 당시 월급쟁이 아빠가 거금 들여 산 고급 음향기기의 가냘픈 손모가지였다는 것을..

학창 시절은 음악과 관련해서라도 굳이 떠올리고 싶지 않다.
MP3 시대였고, 지미 헨드릭스, 레드제플린, 커트코베인, 린킨파크, 노토리어스 비아이쥐, 에릭 클랩튼, 올맨브라더스가 떠오른다.
정신과 사상만큼은 거의 코카인을 일렬로 세워 코로 흡입하고 기타를 다 때려 부수는 정도였지만, 현실은 너무 찌질의 극치였기에.

군에 입대하고는 취향 자체가 조금 올드해졌다. 전반적인 배경이 시골이라. 자연스레 컨츄리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친했던 선임이 김현식의 CD를 휴가 때 선물로 사 왔다. 처음으로 김광석과 김현식의 노래를 들었다. 덩달아 김창완 아저씨와 송골매 그리고 조덕배까지.
체력단련실에 쓰레기처럼 처박힌 고물 스피커로 음악을 들어도, 가사가 다 들렸다. 가사가 너무 좋았다.

취업하고 퇴사를 했다. 마음에 병이 오니 외골수 같은 성향이 생겨버렸다. 돈이 되는 곳에 온 정신을 꽂아 버렸으면 좋았으련만,
한심하기 그지없는 곳에 혼을 쏟아 버린 것이다.
애증의 장전 축과 바이닐
나의 아내도 앨피음악을 좋아해 왔다. 그 둘이 결혼을 했고, 그와 관련된 장전축이 집안에 생겨난 것은
냉장고와 세탁기보다 더욱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장전축자체가 오래된 것이라 호두나무로 제작된 틀이 끌어안고 있던 턴테이블, 앰프, 튜너 모두 다 오래된 것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소리가 좋은 건지 저 소리가 좋은 건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아내와 아무 탈 없이 음악을 잘 들었다.
유난히 울림이 컸는데, 우린 그게 할아버지 껄껄거리시는 소리 같다고 좋아했다. 사실 오래된 스피커의 우퍼가 힘없이 늘어나 버려 생긴 현상이지만, 그래도 따지고 보면 할아버지 다 된 거나 마찬가지니까.

나의 내면 상태가 더욱 악화할수록 장전축 스피커가 내뱉는, 마른기침 같은 소리가 듣기 싫었다.
집 밖으로 나가질 않으니, 괴로운 건 장전축이었다.
소리가 너무 듣기 싫어, 집에 있는 공구를 끄집어서 이리저리 들쑤셨다.
나사를 풀어서 앰프를 뜯었다, 스피커 선을 잡아 당겼다. 그 짓을 한다고 한여름에 선풍기도 틀지 않고
땀을 한 바가지를 흘리며 붙들고 씨름만 했다.
소리의 티끌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때는 그 소리에 미친 듯이 집착했다.

그러다 며칠 뒤에 수원 행궁동 쪽에 위치한 엘피 가게 사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무심코 던져주신 몇 마디에 뒤통수를 한 대 세게 얻어맞았다.
“스피커, 앰프 이런 거보다
그냥 좋은 앨범이랑 편안한 안락의자 하나만 있으면 돼요.”

처음 장전축을 샀을 때가 떠올랐다.
지현이와 혼수 장만한답시고 찾아간 곳이 안양에 있던 정크 샵이었다.
정크 샵. 말 그대로 쓰레기 가게.
우린 그 보물과도 같은 쓰레기 더미에서 장전축을 발견했다.
장전축도 부족해 그것을 비춰줄 오래된 스탠드 등까지 함께 구입했다.
장전축이 처음 온 날, 우리는 그곳에 턱을 괴고 함께 음악을 들었다.
음반이 튀어 오르건, 잡음이 나건 그것들이 우리의 귀엔 담기지도 않았다.
오로지 좋은 앨범과 편안한 의자에 앉아 우린 음악을 음악 그 자체로 즐기고 있었다.

그냥 그때가 떠올랐다.
그런데 그 자리엔 어느 순간 함께 음악을 감상하던 지현이는 사라지고 나 홀로
공구 박스를 든 채로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다.
사장님의 말대로 스피커와 앰프의 소리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음악을 듣기 위해선 좋은 앨범, 편안한 의자 그리고 내겐 좋은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앨피가게를 나와 집으로 향하는 길에
어렸을 때 옆집 친구와 음악을 들으며 침대 위에서 방방 뛰던 내 모습도 스쳐 지나가고
아무것도 모른 채로 아버지와 처음 만져보았던 턴테이블도 떠올랐다.
부모님에게 들킬까, 늦은 밤 라디오 수신기에 귀를 기울이고 볼륨을 아주 작게 한 채로
음악을 들었던 때도 기억이 났다.
그때는 스피커가 어디 건지, 앰프는 어떤 성향인지, 소리가 어떻게 들리든지 상관하지 않았다.
음악을 사랑했고, 음악과 함께한 모든 사람과 순간을 사랑했었다.

그렇게 한참을 생각하고 헤집을 대로 헤집어 놓은 장전축을
다시 정리했다.
내 인생에 있어서 음악은 나 혼자만의 전유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음반을 선택할 땐 아내를 몹시 의식한다.
레코드 가게에선 절대 들어보지 않고는 사지 않는다.
음반을 틀었을 때 아내의 표정과 분위기를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레코드 샵에서 고른 앨범의 첫 음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느낌을 받은 순간
아내와 나는 서로를 쳐다보며 코끝을 찡긋하는 순간이 있다.
악보 한 장 그릴 수 없고 악기 하나 제대로 못 만지는 우리가
그 순간만큼은 음악을 좀 아는 사람같이 느껴진다.
우리는 음악을 함께 듣고 함께 즐기고 있다.

오디오 커뮤니티에 들어가 보면
모두가 고립을 즐기고 있다.
좋은 스피커, 좋은 앰프
수십 수백만 원의 고가 음향기기를 서로 앞다투어 자랑하고 부러워한다.
여유가 되는 사람들은 방 한 칸에 방음벽까지 설치하고
문고리를 걸어 잠근 채로 눈을 감고 음악을 감상하지만,
사실 그것은 말 그대로 고립이다.

하지만 집 밖을 나가기만 해도 사방에서 음악이 울려 퍼진다.
말 그대로 배경 음악의 시대다.
냉혹하고 혹독한 현실 속에서 리듬과 박자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다.
어렵고 힘들지만, 모두가 같은 음에 소리치고 같은 박자에 몸을 움직여야 하기에
언제나 세상엔 음악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음악은 나에게 더는 고립이 아니다.
영화 인턴에서 주인공이 어떤 인터뷰를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뮤지션한테 은퇴란 없대요. 음악이 사라지면 멈출 뿐이죠. 제 안엔 아직 음악이 남아있어요.”
음악이 사라지면 멈춰야 한다.
나의 인생에도, 모두의 인생에도
음악이 멈추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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