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 3층에서 뛰어내리려 했던 적이 있었다.
3층에서 떨어지면 죽을까에 대해 의문이지만, 그땐 죽으려고 했는지 아니면
그냥 뛰어내리고 싶었던 건지 잘 모르겠다.
그때는 내가 살 이유가 없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뛰어내릴만한 일들이 더 있었으니까. 하마터면 별거 아닌 일에 죽을뻔했다.
그때 죽지 않았던 것이 천만다행이다.
죽어 마땅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 너무 두렵고 무서워서
교회 목사님께 전화를 걸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교회에서 몇 번 뵌 적이 없어 약간 어색함이 있던 사이였는데
별안간 그 목사님 얼굴이 떠올라 전화를 걸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꺽꺽거리며 몇 분 동안 울기만 했다.
우울증이라는 게 무섭다.
타인의 자살 소식에 우리는 뭐 그런 일 가지고 목숨을 끊어버리나 하지만
당사자는 오늘을 살아가야 할 목적과 방향이 없어 점점 고립되어가다가
결국 죽어야 할 이유밖에 없는 방 안에 들어가 문고리를 걸어 잠근다.
그래서 상대적 위안이라는 것이 없다.
주변 어떤 사람이 나보다 더 혹독하고 잔혹한 상황에 부닥쳤다 한들
오늘의 난 그들의 삶 따위에 관심을 갖을만한 여력이 없다.
우울증약을 먹는다고 금세 호전되는 건 아니다.
우울증약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사람마다 약효가 다 달라 이것저것
복용해봐야 안다.
처음엔 머리가 팽팽 돈다.
나는 원래 겁이 많은 사람이어서
내가 결국 정신과 약을 먹는 상황에 이르렀구나 하는 생각부터
현대인들이라면 다 겪는 감기 같은 것에 이렇게 유별나게 병치레를 해야 하나까지.
온갖 두려움과 불안감에 휩싸여 팽팽 돌아가는 현실에 정신을 못 차렸다.
감기에 걸려 약 하나 먹는 일인데 말이다.
약에 의존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기 위해선
스스로 노력을 또 해야 한다.
노력이란 것을 하지 못해서 치료를 받는 것임에도
빨리 회복하기 위해선 자신을 움직여야 한다.
병원에서는 인지 치료라는 것을 한다.
의사 선생님이 불안과 우울한 마음에 반응하지 않고
구름이 지나가는 것처럼, 혹은 파도가 반복해서 치는 것처럼
생각하고 그저 그 마음을 바라보라고 알려줬지만,
계속해서 구름이 쌓이고 파도가 넘실거리는데
어느 누가 그것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 있는가
금방이라도 저 파도가 날 덮쳐 버릴 것 같은 감정에 난 또
반응하고 쉽게 불안해진다.
하루에 한 번씩 명상을 해야 한다.
만성 우울증을 앓고 계신듯한 남자의 목소리와 함께
종이 울리면 눈을 감고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한다.
여러 가지 감정들이 굽이쳐 지나가지만, 그것에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반응한다고 할지라도 다시 돌아와야 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아무튼 이런 것들을 꾸준히 해야 한다.
그래서 내가 벌써 1년째 약을 끊지 못하고
계속해서 복용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아주 가까운 가족이나 특정 지인에게만
겨우겨우 앓는 소리를 한다.
몸이 아픈 질병은 나 여기가 아프다 저기가 아프다 하는데,
마음의 병은 내가 심장이 아프다. 혹은 젖꼭지와 명치 사이쯤 어딘가가 답답하고 아프다 같이
증상에 대해 명확히 표현 하는 것이 어렵다.
많은 사람 속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그렇게 함께 웃고 떠들며 살아가다가
어쩌다 간혹 나 그냥 힘든 것 같다고 겨우 한마디 내뱉거나 우울한 것 같다고 토로한다.
어떨 땐 아무말 없이 그저 한숨만 푹푹 내쉬는데, 그것은 아마도 내가 느끼는 고통이 무엇인지,
그 고통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어 내뱉는 신음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주인이 되어버린 세상속에서 과거의 나는
타인의 신음과 비명은 상관할 바 없는 것 이거나
내가 일전에 겪었던 하나의 과정과도 같은 것일 거라 상대방의 아픔을 일반화시켰고,
그래서 그것쯤은 아무것도 아닌 일로 만들어 버렸다.
내가 의도를 했던 의도를 하지 않았던
그 아무것도 아닌 일에 비명을 지르고 고통을 호소하는 상대방은
그저 별것 아닌 일에 눈물을 쏟아버리는 엄살쟁이가 되어 버린다.
그런데 그 엄살쟁이가 향하는 마지막 목적지가 늘 자책이다.
정말 이 시대의 슬프고 잔혹한 메커니즘이지만,
그렇게 나 자신에게 손가락질을 해서라도 끝을 맺으려 한다.
과거의 나는 타인의 고통 앞에서 제3의 방관자 혹은 전문가가 되려 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이기적인 것인지 빌라 3층의 난간을 붙잡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다행히도 난 몇몇 사람들에게서 아주 괜찮은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들 중 그 누구도 전문가나 방관자가 되지 않았고, 오히려
나의 고통 속으로 들어와 어설픈 연기자로 존재해 주었다.
나의 고통과 아픔에 당황스러운 눈초리로, 어설픈 몸짓으로
어눌한 대사와 엉거주춤한 행동으로 날 위로해줬다.
그들 덕분에 난 나의 고통과 아픔에 있어서 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모두가 내 눈물에 비명에 고통에 반응했고 그것에 따라와 주었다.
그들은 단 한 번도 내 대사를 가로채려 하지 않았고 핀 조명을 받으려 하지 않았으며
사람들의 박수갈채 따위엔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오로지 내 아픔과 고통에 관심이 있을 뿐이었다.
그때 생각했다.
세상 사람 모두가 어설픈 조연으로 살았으면 좋겠다고.
전문가도 고치기 힘든 마음의 병 앞에 가짜 전문가 행세는 그만하고,
우리 모두가 타인의 고통 앞에 어쩔 줄 몰라하며 같이 아파하는
어눌하고 어리숙한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난 여태껏 타인의 고통 앞에 어떤 모습으로 서 있었는가.
난 내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역할로 존재해왔는가.
생각을 거듭할수록 부끄러웠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누군가의 삶에서 나 또한 어설픈 조연으로
살아가고 싶었다.
우울하고 불안한 감정을 구름이 지나가는 것처럼 바라보고, 계속해서 밀려오는 파도를
지켜보면서 지금의 어렵고 힘든 현실을 감당해내며 죽지 않고 살아가리라.
오늘도 알약을 입속에 털어 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