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언가를 내려놓는 일은 늘 어렵다
특히 내 손안에 들어왔던 것이면 더더욱 그렇다
그것을 가졌을 때 느꼈던 성취감과 희열 만족감들은
그것이 떠났을 때에도 여전히 선명하다
이는 물질적인 것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자존심이라든가
명예라든가
혹은 누군가로부터 들었던 가벼운 칭찬마저도
그것을 손에 쥐기 전으로 돌아가는 일은 대단히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내게는 그것이 글을 쓰는 일과도 비슷하다
대단한 작가도 전문가도 아닌 사람이 느껴도 될 기분이 맞나 싶을 정도로
때로는 가벼운 글쓰기조차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좀 더 정확히는 쓴 글을 공개하는 일이 어렵다
'굳이 나서서 자랑하고 싶은 정도의' 결과물이 아닌 때가 많다
그렇게 점점 글을 공개하는 일이 줄어든다
2.
그래도 예전에는,
짧게나마 어떤 감정이나 믿음이 확고할 수 있었던 시절에는
그 어렴풋한 확신에 기대어
쓴 글을 공개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다
혹여나 그 결과물이 시간이 지나 부끄러운 무엇이 되었을지언정
최소한 그때 그 날짜의 글이라는 것에는
일종의 확신이 있었다
글 자체에 대한 확신이든,
그 감정이나 판단의 확신이든,
또는 '나는 누가 뭐래도 이 글을 써야겠다' 따위의 행위에 대한 확신이든
물론 자신감이 결과의 퀄리티를 보장하진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만족감만큼은 분명했던 것 같다
결과에 대한 만족이라기보다
과정에 대한 만족이었을 것이다
어렸을 때 운동장에서 친구들이랑 축구를 하던 때가 그랬다
제대로 된 드리블 하나, 슈팅 하나 못하면서
나는 호나우딩요고 친구는 지단 피구였다
전술도 팀워크도 없었지만 공을 따라 우르르 몰려다니던 그 시간이 좋았다
그래서 쉬는 시간 점심시간이건
축구공을 옆구리에 끼고 뛰어나갔다
슛이 제대로 되지 않아 골대를 벗어날 때에도
아쉽기는 했어도 축구하기를 망설이지는 않았다
취미라 부를 거면 그런 무엇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싶은 공놀이를 하라고 좋은 운동장을 만들어 놨더니
제대로 된 플레이가 아니면 좀처럼 뛰지 않는단다
헛발질과 실수가 조심스러워서 운동장 앞에 가면 다리가 굳는단다
아무리 봐도 바보 같다
3.
왜 그럴까 생각을 해봤다
무식이 용감한 건지도 모른다
아는 만큼 내 부족이 더 눈에 띄고
과정이 낳을 결과가 신경 쓰인다
하나의 글을 쓸 때에는 목적이나 명분이 명확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잘못된 단어 선택이나 오타조차 조심스럽다
내 행동이 낳는 결과에 대한 책임이 커진 건지도 모르겠다
별 의도 없는 펜 놀림이 갖는 위험에 대한 인식 때문인지도,
보고서 작성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갖는 직업병의 일종일지도 모르겠다
그 이유가 뭐가 되었든
언젠가부터 내가 공보다는 운동장 주변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생각이 이쯤 다다르면
원인을 단지 글에 대한 자존심 때문이라고만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의례적인 조언처럼
'어깨에 힘을 빼고 해던대로만 해'라는 조언이 도움이 안 될지도 모른다
'해맑게 공을 따라 뛰던 그때처럼 글에 몸을 맡겨' 따위의 말들이
전혀 효과가 없을지도 모른다
이럴 때엔 그냥 놔두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일단은 이 정도에서 생각을 멈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