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선언문도 아니고 유언장도 아닌 이 글이
내 인생은커녕
다른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줄리는 만무하다
영향은커녕
매서운 바람조차 되지 못하고
기껏해야
거친 옷자락에 쓸린 자동차 도장면일뿐이어서
내가 아니고서야
아니 본인조차 특별히 신경 쓰지 않으면 잊어버리고 말
그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을
힘도 권력도 그 무엇도 없는
어떻게든 상관없을 무엇이란 말이다
그럼에도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다듬고
호흡을 생각하거나
뉘앙스를 헤아린다
문장을 나누고
문단을 구분하며
오해가 있을 단어와 표현들을 살피고
비문은 없는지
길어진 문장에 술어가 주어에 호응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닌지 읊조리거나
시작은 적절했는지 첫 문장을 올려다보고
이 글이 끝나고 나서 내가 남길 그 스크래치가 무엇일지 생각한다
또다시 이 글은 잊힐 거다
아니 기억된 적조차 없던 글이고 말 것이다
이 문장들이 써지고 써지지 않음이
내 삶에 대한 평가를 크게 바꿀 수도 없을 것이며
내가 손에 쥘 수 있는 무엇의 가치를 다르게 할 것도 아니다
이 글은 그런 운명이다
그럼에도 나는
무엇인가를 바라고 떠나는 뱃사공의 마음으로
망망대해를 지날 때쯤엔
여기가 어디인지 가늠할 길 없고
하물며 지금의 노질이 이 바다에 남길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을 떠올리면서도
내가 어느 날엔 가에는 원하던 곳에 다다를 수 있으리란 마음에서
다시 자세를 고쳐 잡고 문장을 써가는 것이다
이 글이 무엇이냐
이 글이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를 살피는 일이
언젠가는 다다를 그날의 찬란을 생각하는 일임을
나는 입을 꼭 다물고
생각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