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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yner Sep 10. 2021

글 쓰는 취미를 고백하는 일

글을 쓰는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



글은 마음에 난 투명한 창과 같아서

내 마음이 의도하지 않은 부분들까지 고스란히 드러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형사 피고인들에게 주어지는

묵비권은 얼마나 큰 배려인지 모른다


이는 단순히 진실에 대한 능동적인 고백을

하지 않을 권리를 지켜줄 뿐만 아니라,

문답 과정에서 하지 않아도 될

쓸데없는 말들로 인해

자칫 자백의 단서를 제공하는 일을 방지하는

수동적인 범위의 권리까지도 보호하기 때문이다



한편 글을 쓰는 사람은 스스로 묵비권을 포기하는 자들이다


본인에게 주어진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가는'

일종의 특혜를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포기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굳이 내는 사람들이다


성공하면 다행이지만,

강한 자아로 똘똘 뭉친 주변의 눈초리를 피해

'개인의 적당한 취미'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은 글을 쓰는 취미가,

요리를 좋아한다거나

피아노를 친다거나

그림을 친다거나

필라테스를 하는 취미를 말하는 것과는 다르게,

보다 자기 자신을 재료로 하는 취미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 결과물이 에세이나 시가 아닌

SF소설이더라도 여전히 유효하다

작가라는 토양 위에서 나고 자란다

작가를 떠난 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글쓰기는 본인의 마음과 머릿속을 낱낱이 들춰내는

조금은 독특한 취미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인지 조금은 무식이나 무지의 힘이 필요할 때가 있다

무식이 보전하는 용기를

나의 소소한 재미와 정서적 만족을 위해 유용하게 쓰고 있는 셈이다



어떤 사람은

글을 쓴다고 하면

어려운 사람이라 생각하고

자기주장이 강하거나

자기감정에 대단히 몰입되어 있어서

다가서기 힘들다고도 이야기한다

글을 읽기도 전에

그렇게 단정을 짓는다

그래서 글을 쓴다는 커밍아웃은,

굳이 말하자면 이런 불필요한 잡음마저도 불사하고 내뱉는 고백이다



그래서인지 일상에서 글을 취미로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것은 유난히 더 반갑게 느껴진다


'(혹시) 글 같은 거 쓰세요?'


때때로 누군가를 새로 알게 될 때면 슬쩍 던져본다

혹은 괜스레 질문이 너무 직설적일까 에둘러 말해보기도 한다


'(책이나) 글 좋아하세요?'



그런데 이 질문은,

운동을 하냐고 묻거나

최근에 본 영화가 있냐고 묻는 질문과는 다르게

좀 수줍어진다


굳이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나에게는 이 질문이 곧

당신을 더 알고 싶다는

일종의 고백이 갖는 기대와 설렘이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글을 잘 쓰는지가 궁금한 게 아니라

나에게 마음을 보여줄,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나에게 당신의 부족함이나 어설픔을

보여줄 의향이 있냐는, 요청에 가까운 질문이다


당신에게 주어진 묵비권과

잠자코 있었으면 중간은 갔을 일종의 특혜들을 포기하고

나에게 마음을 열어줄 수 있냐는 질문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글을 쓴다고 말하는 것은 그런 의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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