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아주 가끔씩
생각해본다
이 모든 게 환상이라면
환상이라 부르는
한낱 공중에 흩날리는 하얀 연기에 불과하다면
조금은 상념에 빠진 것만 같은
이 생각은
어쩌면 그렇게 무리한 가정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가 두 발을 내딛고 선
이 땅을 제외하고(아니 어쩌면 이 대전제 마저도)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주체와 사건들을
정의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이름을 붙여주는 모든 과정들은
작가가 소설에서
한낱 상상에 불과한
fiction에 인물과 배경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는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사건 현장의 감식반이나
사실 관계를 명확히 밝혀야 하는 법률가의 무엇이 아니라면
생각보다 우리 삶에 그것이
fact냐 fiction이냐는 중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때로는 fiction이 fact를 바꿔버리기도 하고
아예 밑바닥부터 새롭게 만들어 내기도 한다
유발 하라리는
우리 인간이 다른 만물과 다른
첫 번째 지점으로,
그것이 또한 다른 만물을 제치고 가장 상위 포식자로 자리 함과 동시에
문명의 가장 선두에 설 수 있었던 원인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을 꼽았다
이를 테면,
종교나 그에 버금가는 신념, 가치관에 영향을 미치는 정신적 비전 등을 이야기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움직이게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꿈
다짐
신념과 확신
이쯤 이르면
어쩌면 fiction이 fact 보다 힘이 없다는 말은
완전히 틀렸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갈구하고
원하고 슬퍼하고
안타까워하고 즐거워하거나
이해하거나 하지 못했던 모든 것들이
환상이라면
어쩔 것이며
환상이 아니라고 밝혀진다 한들 그 또한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우리 중 누가
환상을 실제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현실은 환상이 아니라
실재하는 상황이며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할 것인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환상과 실재를 구분하고
분리해 내는 것이 아닐지 모른다
차라리
담담하게,
그래 이 둘을 구분 짓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없는 것인지를 깨닫고
그 정의를 넘어
그 다음에 있을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떠올려 볼 것인가
선택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된 마당에,
나는 무엇을 실재라 여길 것이며
엇을 환상이라 부를 것인가
무엇을
나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것이고
우선순위로 둘 것이며
무엇을 향해 나아갈 것인가
그것은
환상인가
실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