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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yner Aug 26. 2022

내가 쓰지 못하는 글

속으로 많은 생각을 하는 사람일수록

공개된 플랫폼은 글을 쓰기 적절하지 않은 공간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공개된 플랫폼에서 할 수 있는 말이 있고

그렇지 않은 공간에서 할 수 있는 말들이 있다


여기서 '공개'라는 의미는

플랫폼의 접근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일상에서의 나와 대외적 페르소나 충돌의 문제다

일상에서의 나의 프로필을 아는 사람들을 독자로 둔 공간은

솔직한 글쓰기에 적절하지 않다

익명으로 써낸 소원수리가 기명의 그것과는 같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민이다

브런치를 적당한 글쓰기 공간으로 정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야지 했지만

막상 이렇다 할 이야기들을 꺼내다 보면

분명히 의식하고 있으나 표현하기는 꺼려지는 부분들이 하나 둘 생겨난다

어떤 이야기를 하기에 이 공간은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익명의 글쓴이 '아무개'가 쓴 글 속에서

나는 분명 다를 것이다

직업과 나이, 특정한 관계와 지위들로 이뤄진 나의 아이덴티티를 옆에 나란히 두고는

적어 낼 수 있는 글이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탓이다

 

너 어떻게 그런 상황이면서, 그런 이야기를 할 수가 있어

너 어떻게 그런 관계들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런 이야기를 할 수가 있어

너 어떻게 그런 마음으로 일상을 살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었던 거야?


상처는 출처와 타이밍을 정해두지 않고 발생한다

나는 내가 가진 일상으로 글을 써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의도치 않게 누군가에게

(특히 나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을수록)

상처나 흠집을 내는 일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이는 발언의 톤과 강도를 떠나 소재 그 자체부터가 문제가 된다

어떤 선호나 취향을 밝히는 것만으로 때로는

누군가에게 상처가 된다


이를테면,

'나는 여행을 혼자 할 수 있거나 해본 적이 있는 사람을 더 좋아한다'거나,

'나는 의존적인 사람이 때로 부담스럽다'거나,

'나는 아침형 인간보다는 저녁형 인간이 되고 싶다'거나

하물며, '나는 책을 읽는 기쁨을 아는 사람을 좋다'는 정도의 문장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거나, 혹은 일종의 훈계성 멘트로 치부될 수밖에 없음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관계나 지위에 따른 한계도 흔하다

회사를 다니는 사람이 현재 소속된 회사나 조직, 동료를 편하게 이야기하기 어렵고

특정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의 어떤 주장은 자칫 장치적 의도를 띈 무엇으로 오해받을지 모른다

작가를 떠난 글은 있을 수 없지만,

작가의 아이덴티티로 한정받는 글들은 너무 많다


그래서

나의 글은 한정된다


마음껏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거나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옳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글은 내가 쓰지 못하는 글이 된다

쓰고 싶지만, 쓸 수 있지만

내가 쓸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쓸 수 없는 글이 된다

나는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글을 통제하게 된다


이는 내가 어떤 용기가 부족하거나  

자신 또는 확신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어떤 조건을 가진 누군가와는 쉽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상을 공유하거나

나의 이상적 개념적 바람들이 현실의 비루함을 자칫 비난하고 심지어 짓밟는 무엇으로

오해받을 여지가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누구도 현실에서 발을 떼어 이야기할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현실만을 이야기하거나 현실의 당위적 지침을 선언할 필요는 없다


어떤 취향이 왜 그렇게 치닿을 수밖에 없었는지,

그런 스탠스를 취했을 때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상상될 수 있는지,

어떤 이야기를 떠올리고, 어떤 논의들이 가능한지,

당장 현실의 재료들을 반드시 가져와야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스터리 범죄자의 관점에서 소설을 쓰면서

당장 이런 종류의 범죄자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고민할 필요는 없다

또는 그러한 이야기를 썼다고 해서,

글쓴이가 혹시 진짜 소시오패스는 아닐지 확인해봐야 한다는 추궁을 들을 필요도 없는 것이다


자유로운 글쓰기에는

자유로운 플랫폼이 필요하다

나를 연결하지 않은

결코 연결시킬 수 없는 어떤 새로운 플랫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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