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 때는 내 고집을 갖기 위해 악착같이 선을 그을 때가 있었다.
나만이 가진 취향과 나의 독창적 입장 표명이,
나라는 존재를 두 발로 딛고 서게 하고
나를 나답게 만드는, 남들과 나를 구분해주는 나만의 본질적 자존의 정체라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너무도 나약했던 나의 과거를 짧은 시간 내에 수복하기 위한 노력이었는지 모른다.
발가벗은 내가 오로지 걸친 거라고는 안경 하나뿐이었는데,
반팔이든 반바지든 뭐라도 일단 걸쳐보고,
그 옷을 좀 더 내 몸에 맞게 수선하는 방법을 택하는 수밖에 없었다.
오랜 시간 찬찬히 쌓아온 취향과 주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역사와 전통이라고는 있을 리 없었다.
투박하고 무모했으며,
때로는 폭력적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상처를 주는 일이 많았다.
변명을 하자면,
그때는 남들을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지켜내기 위해서, 타인과 싸웠다.
나의 논리를 강화하고 나의 세계를 탄탄하게 만들기 위해,
그 싸움에서 지는 것이 상대로부터 졌다는 느낌이 아니라, 나만의 세계를 견고히 하는데 실패했다는 두려움을 주었기 때문에 나는 완고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때 나와 싸웠던 사람들은 그때의 내가 얼마나 고집스럽고 완고 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2.
나는 그로부터 오랜 시행착오와 실패들을 반복하며,
불필요한 싸움을 하지 않았다.
의식적으로 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나의 세계가 충분히 외부의 자잘한 공격들은 크게 애쓰지 않고도 견뎌낼 만큼 구축되었다는 것을 인지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그 뒤로는 나의 장벽을 낮추는데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 간 쌓아왔던 내 안의 장벽들이 어느 순간부터 나를 울타리 안에 한정 짓는 방해물로 기능하고 있음을 깨닫고 나서부터는 더욱.
내가 얼마나 특정 기준을 고수하지 않고도 나를 쉽게 지켜낼 수 있음을 알고 나서는,
나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기준들에 대해 너그러워졌다.
대외적으로도 그러한 입장을 널리 알릴 필요가 있었다. 그동안 나의 완고함이 불필요하게 관계에 미쳤던 악영향들에 대한 오해를 풀거나, 또는 상처를 준 것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상대를 경청하고, 상대의 기준을 존중해 주기 위해 노력했다.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나, 불편할 수 있는 타인의 의견에 대해서도 가급적 존중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조언을 하지 않는 연습을 했다.
타인의 경험이 나의 과거의 무엇과 유사한 모습을 띄었거나, 나의 실패를 반복할 위기(?)에 처했다 하더라도.
함부로 아는 체 하거나, 회의적인 태도로 그 결말을 예단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러든지 말든지' 식으로 관심을 끊거나,
상대를 '진짜 이상한 사람'이라며 쉽게 폄하하고 치부하는 방식을 택하지도 않았다.
나는 늘 그래 왔듯 정면 승부를 하려고 했다.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취향과 주장들이 존재하고 각자가 처한 상황과, 각자가 가지고 있는 경험의 누적에 대해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기 위해 노력했다.
쉽지 않은 경우에도 우선 존중을 먼저 하고, 목 끝까지 튀어나오려던 말을 참는 연습을 했다.
그리고 만약 이해가 더 필요하거나 그의 입장과 사정을 좀 더 알기 위해서
가능한 예의를 갖추고 추가적인 질문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가급적 마무리 말은 '그럴 수 있지' 또는
가장 견디기 힘든 경우에 '오, 되게 특이하다' 정도로 끝이 날 수 있도록 했다.
'아니 난 이해가 안 돼' 라거나 '왜 그러는 거야 대체', '진짜 병신같아'라고 말하는 옵션도 있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3.
나의 노력들이 상대에게 얼마나 닿았는지 모르겠다.
아니, 나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혹시 여전히 상처를 받거나
나를 완고해서 어떤 공감을 나누기 어려운 감정을 느끼지는 않았는지 염려된다.
나는 여전히 노력 중이다.
가벼운 독서 모임에서조차 나는 너무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모임장을 자처하며 '진행'이라는 미션 아래, 스스로에게 Disadvantage를 걸기도 하고
듣기 힘든 의견이나 정리되지 않은 발언들을 참고 듣는 연습도 한다.
그리고 상대가 내놓은 답변이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의미를 찾거나,
채 표현되지 못한 동기와 취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노력해본다.
나는 많이 고집스럽지만, 노력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