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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Y Nov 07. 2023

출발을 했고 도착했다. 첫 10k 마라톤 완주

매년 12월이 되면 올해도 아무것도 한 것 없이 지나가는 허무한 느낌에 둘러 싸여 마무리하고 내년에는 제대로 해보겠다며 텅 빈 다짐을 한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여러 가지 일에 도전을 했고 꾸준히 하고 있다. 그중 최소 2가지는 달성했다. 하나는 지난 4월 한라산 등반과 며칠 전 10k 마라톤이다.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운동신경은 없다. 아니 키우지 않았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주말마다 야구를 했고, 중학생부터는 농구를 좋아했지만 발이 빠르지 않아 인원 채우는 정도의 역할이었다. 운동회나 체력장이 되면 달리기 때문에 스트레스였다. 단거리 경주를 위해 출발선에 서면 심장이 두근거렸고 출발 신호에 즉각 반응하지 못해 처음부터 끝까지 꼴찌로 달린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장거리에는 자신이 있었다. 몇 십 미터 달리지 않았음에도 숨이 턱밑까지 쫓아 올라왔지만 포기한 적은 없었다. 


성인이 되면서 운동의 열망은 높아만 갔다.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달리거나, 식사 후 산책 혹은 매일 만보 걷기를 했지만 꾸준히 하지 않았기에 체력은 여전히 바닥을 기었다. 이런 내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지난여름 JTBC 서울 마라톤 10k에 신청했다. 


신청 후 나의 모습은 달라지지 않았다. 여름이라 너무 더우니 달리지 않았고,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달리지 않았다. 간혹 뛰기도 했지만 기껏해야 3~5km 정도였고, 10월 초 여행을 다녀온 이후로는 이마저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대회 일주일 전 토요일 아침 부랴부랴 안양천으로 나가 달리기 시작했다. 10k가 목표였지만 무리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맑은 날의 토요일 아침 안양천은 아름다웠다. 따스한 햇살이 비치고 많은 이들이 트랙을 달리고 있었다. 5k쯤 지났을까? 힘들어서 포기하려 했다. 이 정도면 10k도 충분할 것이라 생각하고 멈추려고 했다. 


문득 지금까지 살면서 끝까지 해낸 일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주 대회날을 생각하지 않았다. 여기서 멈추면 5km를 달린 놈이 될 테고, 역시 스스로 한계를 깨지 못하는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힘들어도 포기했던 지난날의 나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10k를 달렸다. 




경기 당일, 새벽 4시에 기상했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다 멈췄다. 잠시 망설였지만 오전에도 잠깐 그친다는 예보를 믿고 집을 나섰다. 6시에 상암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쏟아지기 시작한다. 지붕 밑으로 들어가 달릴 준비를 하고 짐을 맡긴 후 출발할 때까지 몸을 풀며 기다렸다. 






학창 시절 이후 출발선에 서 본적은 처음이었다.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였지만 약간의 긴장감은 빨리 달리고 싶은 욕구로 전환되었다. 달리기 시작했다. 


상암-망원-합정-양화대교-여의도공원으로 향하는 코스는 아름다웠다. 날은 흐리고 중반으로 넘아가는 시점부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지만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달렸다.


지난주에 10k를 달렸던 탓인지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그날의 달리기가 아니었다면 오늘 완주하리라는 확신도 얻지 못했을 것이고 달리는 행위에 아무런 의미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말기.



고작 10km지만 많은 생각을 하며 달렸다. 지나간 여러 상황과 나와 함께한 사람들의 모습이 스쳐 갔다. 하지만 항상 그래 왔듯이 오롯이 지금의 나에게 집중한다. 달리고 있는 나, 지금을 살고 있는 나에게. 


혼자 왔다 혼자 가는 게 우리의 삶이지만 그 사이 알게 모르게 수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는다. 반대 차선에서 신호 대기하는 운전자들의 응원, 함께 달리는 우리 자신에게 외치는 파이팅 덕분에 나를 포함해 많은 이들이 끝까지 달릴 수 있지 않았을까?





마포대교 남단에서 우회전하니 결승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지막 남은 모든 힘을 끌어모아 질주했다. 최선을 다해 마무리하고 싶었다. 힘이 다 빠져 걸으면서 결승점을 통과하고 싶지 않았다. 이것만으로 만족스러운 첫 10k 완주였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 결과물의 성공, 실패 여부는 다양한 요인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 실패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 했다냐는 것이다. 오늘의 나는 최선을 다했다. 이전처럼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달린 나를 칭찬한다.���



뛰면서 마사요시 타카나카의 온기타 앨범을 들었다. 마지막 트랙인 we're all alone를 아주 좋아한다. 위로받고 싶을 때 듣는다. 달리면서 들어도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났다. 이유는 알지만 오늘은 마음속에 묻어둔다.


https://youtu.be/dvGWx80XA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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