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플스테이에서 유일하게 대화할 수 있는 시간, 스님과의 차담이다. 묵언수행은 아니지만, 충남 금산의 신안사에서는 대화할 일도, 일부러 입을 열 필요도 없다. 먼저 찾아와 방문을 노크하거나, 나처럼 이 첫 만남에 할 말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개인 신상을 물어보지 않는다.
크지 않은 경내에는 잘 가꾸어진 잔디가 카펫처럼 깔려있다. 강력한 태양 아래에서 예초기를 돌리는 수고가 있었기에 가능하다. 천천히 걸어도 10분이면 다 돌아볼 정도이지만, 천천히, 반복해서 잔디를 밟고, 그늘에서 바람과 함께 쉼을 즐긴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어둠이 다가올 때쯤 남자 스님과의 차담을 함께 했다. 이번에는 모두 남자라서 부담 없이 질문하고 대화를 할 수 있다는 말씀에 웃음과 안쓰러움이 생겨갔다. 스님에게 안쓰럽다는 감정이 느껴진다니, 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특별한 대화가 오고 가지는 않았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면 으레 하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한 주간 긴장했던 몸이 스르르 풀리기 시작했다. 향긋한 국화차 한 잔은 차가웠던 마음을 녹여주었다.
새벽 3시에 절의 하루를 시작하는 108배를 위해 불교식 절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절할 기회가 거의 없다. 명절에 부모님께 하는 것 정도? 벌초나 친척 어르신을 뵙지 않은 게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날 기회가 있어도 피하려고 발버둥 치겠지만, 가끔은 그리움이 두둥실 떠다니기도 한다.
초록의 잔디를 밟고, 올려다본 하늘은 너무나 파랗다. 아직 뜨거운 여름이지만 하늘은 가을의 옷을 입은 듯, 풍성한 뭉게구름이 하늘을 수놓고 있다.
"아름답다, 아름다워.”
나도 모르게 한마디 불쑥 튀어나온다. 그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다. 귀한 오늘을 정지된 장면 저장하고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기 때문이다. 런던에 다녀온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도 여행 병 걸렸는지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이제 남은 휴가는 1일 뿐이니 주말을 이용해야 한다. 대안으로 템플스테이를 선택했고, 결정은 탁월했다.
새소리, 바람에 부딧히는 나뭇잎 소리, 가끔 들려오는 강아지와 고양이 울음만이 이 곳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다. 정성들여 지어주신 쌀밥과 각종 채소로 만들어진 반찬은 이 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이곳에서 밖에 먹을 수 없는 식사다. 좋은 날씨 덕에 절 안밖의 풍경을 가리는 것 없이 온전히 눈으로 취하고, 마음으로 품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자연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건, 복잡한 도시 속,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던져지는 정보가 사라졌기 때문이 아닐까. 고요함 속의 침묵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입력되지 않은 정보 탓에 생각의 주머니가 넓어져 오히려 복잡해 질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모든 것이 비어버린 듯 앉아 있을 힘만으로 몸을 지탱한 체,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무언가를 바라본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상태가 되어버린다.
이런 모습이 가장 나다운 것이다. 불편한 마음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치우려고 일부러 재미난 영상을 찾아 재생해 보지만, 큰 함박웃음은커녕 입꼬리도 올라가지 않는다. 불안함을 해소하고, 불편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동을 드디어 찾았다. 나다운 곳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떠나자. 주변의 눈치를 보고 구글을 열어 검색한다.
“템플스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