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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 개근상

by DY

일주일 정도는 견딜만한 날씨였다가 다시 한여름의 무더위가 시작된 새벽, 금색 공항버스에 가벼운 마음과 무거운 캐리어를 싣는다. 10시간이 넘는 비행, 9시간의 시차가 있는 먼 곳으로 떠난다. 런던으로 떠난다. 비행기에서 잠이 오지 않을까 봐 뜬눈으로 밤을 보낸 터라 매우 피곤한 상태였으나 뉴스를 보고 깜짝 다. 헤비메탈의 창시자 ‘오지 오스본’, ‘오지옹’이 타계했다는 소식. 하필 런던으로 출발하는 날에 돌아가시다니, 안타까움과 감사한 마음을 갖고, 인천대교 위를 지나면서 ‘Goodbye to Romance’를 들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공연 관람이다. 성질머리 더러운 두 형제가 싸운 후 14년 만에 다시 모인 <OASIS>의 웸블리 공연을 위해서다. 출발 전 주말까지도 ‘갈까 말까?”, ‘말까 갈까?” 고민하다가 결론을 짓지 못했다. 그럼 가는 수밖에 없지! 하고 짐을 챙겨서 무더운 서울을 뒤로하고 떠났다.


두근거리는 마음에 히스로 공항에 도착하고, 숙소가 있는 패딩턴 역으로 향했다. 다양한 인종의 사람을 한 곳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다. 신축과 구축 건물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늘어서 있는 모습이 신기하다. 근처에 바다도 없는데 갈매기 소리가 들린다. 운하 탓인가? 지하철에서 인터넷이 터지지 않는 것도 신기하다. 런던의 첫인상은 신기함으로 가득했다.


여행 일정은 공연 관람 외에는 딱히 정하지 않았다. 솔로 여행이라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구글맵을 열어 땡기는 곳으로 가면 된다. 일단 아침 조깅부터 시작한다. 숙소 근처에 하이드 파크와 켄싱턴 가든이 있다. 둘이 합쳐 대충 여의도 1/4은 되는 것 같다. 넓고 환상적인 곳이었다. 오래된 숲과 동상, 호수, 작은 궁 등 볼거리가 넘쳐났다. 매일 아침 뛰었다. 정말 행복했다. 초록이 가득한 곳에서의 달리기는 헬스장 머신과는 차원이 달랐다. 체감 거리가 다르게 느껴졌다. 5km는 금방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달리기라니, 더 뛰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공원을 즐기기로 한다. 다시 런던 여행의 기회가 온다면 반드시 큰 공원 근처에 숙소를 잡겠다고 다짐한다.


달리기 후 5번의 아침 식사 중 1번은 가져온 컵라면을 끓여 먹었고, 4번은 3곳의 카페에서 브런치를 즐겼다. 첫날은 하이드 파크 입구에 있는 특색 없는 이름의 ‘The Italian Gardens Café’라는 곳이다. 딱딱한 바게트에 하몽과 무화과, 생크림이 올라간 토스트와 아이스 라테 한 잔을 시켰다. 공원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땀을 식히며 마시는 라테 한 모금, 눈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공원을 바라보는 이 상황이 꿈만 같다. 내가 유럽에 오다니, 런던에서 마저 운동하다니. 한국에 머물러 있는 고민을 끌고 오지 않고 멍하니 이 시간을 즐겼다.


두 번째 날에는 여유롭게 뛰었다. 주변 풍경과 현지인의 모습을 구경했다.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는 사람, 제대로 차려입고 자전거 페달을 밟는 사람, 나처럼 달리기하는 사람, 출근 전 공원에 들러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는 사람 그리고 말 타는 사람까지 다채로웠다. 평일 서울에서 내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라면 사람, 차, 사람, 차, 사람밖에 없었을 텐데, 이런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말 그대로 ‘힐링’이다.


달리기를 마치고 공원에서 멀지 않은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기로 한다. ‘Sheila's Café’라는 곳이다. 여기서는 베이컨, 달걀부침, 소시지, 콩, 해시브라운, 토스트가 포함된 ‘FULL Breakfast’와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영국에 왔으니 한 번은 먹어봐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파쉬앤칩스는 도전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큰 접시에 가득한 음식을 깨끗하게 다 비우기는 했지만, 짜고 느끼해서 아메리카노가 부족할 지경이었다. 탄산음료 한 캔을 비우고 숙소로 복귀했다.


네 번째와 마지막 날에는 같은 카페로 갔다. 첫 방문 후에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연어 토스트, 핫케이크를 주문했다. 브런치에 핫케이크는 필수다. 달콤한 시럽에 딸기와 블루베리까지 좋아하는 것들만 모아놓았다. 런던에서 먹은 가장 맛있는 식사였다. 사실 특별한 맛이 아니고, 운동 후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객관적인 사실은 모르겠다. 지금 맛있으면 맛있는 거다. 이 행복을 오랫동안 즐기기 위해 조금씩, 천천히 먹었다. 바깥쪽에 앉아 동네 구경, 사람 구경을 하면서 아침을 즐겼다. 오랜만에 즐겁고 행복한 기분을 느낄 수 있어서 세상 모든 것에 감사했다. 서울로 돌아가면 원래의 모습으로 원복 되겠지만, 이 순간의 기억이 지금을 견뎌낼 원동력이 될 것이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달리기 여행을 생각했다. 좋은 코스가 있는 곳에서 숙소를 잡고 아침에는 달리기를, 저녁에는 산책하는 여행 말이다. 생각난 김에 바로 실행한다. 추석 연휴에 신주쿠 공원 근처 호텔을 예약했다. 유튜브를 통해 어떤 코스가 있는지 미리 파악했다. 황궁 주변을 뛰는 코스도 있는데, <황거런>이라는 이름이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남들이 보면 정말 잘 달리는 것 같지만, 최대 10km가 한계다. 더 멀리 더 빠르게는 원하지 않는다. 부디 지금 수준의 건강을 유지하면서 가볍게 뛸 수 있기만 해도 좋다. 원하는 건 땀 뻘뻘 흘리며 달린 후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주는 것,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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