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피아니스트의 손, 아래는 반영된 그들의 얼굴이 비친다. 손민수와 임윤찬의 공연 포스터다. 오랜만에 클래식 공연 관람차 롯데콘서트홀을 방문했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한다. 롯데콘서트홀을 좋아한다.
19년 전 일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 2006>를 통해 러시아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라흐마니노프를 알게 되었고, 마음에 들어 꾸준히 들었다. 록, 메탈 음악에 심취하기 시작할 무렵에는 더 좋은 음악을 듣기 위해 디깅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클래식의 첫사랑 라흐마니노프를 만난 후에는 더 이상 뻗어나가지 않았다. 단지 ‘라흐마니노프’의 곡이 좋았다.
2015년쯤부터 재즈를 들기 시작했고, 점차 클래식으로 관심사가 옮겨졌다. 처음에는 마냥 어렵고, 공연도 편안하게 보기는 힘들 거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그때 서울시립교향악단을 알게 되었다. 다양한 형태의 공연이 있었고, 티켓값도 저렴했다. 무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좌석은 1만 원에 불과했다. 프로그램도 확인하지 않고 오케스트라 공연이라는 이유로 고민 없이 예매했다.
첫 클래식 공연장은잠실의 롯데콘서트홀이었다. 개관한 지 오래되지 않은 곳이라 궁금하기도 했다. 입장했을 때의 첫 느낌은 ‘이 가격에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나?”’ 라는 생각이었다. 곡선 위주로 디자인된 내부는 편안했고, 무대를 둘러싼 관객석은 어디에 앉아도 좋은 소리를 들려줄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반대편에 보이는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의 위용은 엄청났다.
무대 측면, 멀리 떨어진 좌석이지만 오케스트라의 수많은 악기가 조화롭게 내 귀로 흘러 들어왔다. 악기의 종류와 연주자의 수만큼 여러 갈래의 소리였지만, 결국 하나의 곡으로 완성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클래식 공연 관람은 1년에 두세 번 정도 꾸준히 경험하게 되었다.
2015년 조성진의 쇼팽 콩쿠르 1위, 2022년 임윤찬의 반 클라이번 콩쿠르 1위 이후로 이 둘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뉴스를 통해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아니 월드클래스다. 그만큼 두 피아니스트의 공연 예매는 치열하다. 조성진 공연은 실패를 거듭하고 있고, 임윤찬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최근 ‘손민수와 임윤찬’의 협연 소식을 듣게 되었고 운 좋게 좋은(비싼) 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공연장 무대 위에는 두 대의 피아노가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설치되어있었다. 하지만 연주자는 서로를 마주 볼 수 있는 위치였다. 다른 악기 없이 두 대의 피아노, 두 명의 피아니스트, 20개의 손가락, 178개의 건반이 만들어내는 소리는 마치 와호장룡에서 주윤발과 장쯔이가 펼치는 대나무 숲의 결투 같았다. 결투지만 서로의 실력을 최대한 뽐내면서 멋진 장면을 연출하는 아름다운 연기였다.
각자의 연주에 집중하다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이어가는 협연은 오케스트라에 버금가는 스케일을 보여주었다. 음악은 귀로 듣지만, 온몸으로 느껴야 하는 예술임을 새삼 느꼈다. 브람스로 전반부를, 인터미션 후 라흐마니노프와 슈트라우트로 둘의 협연은 마무리되었다. 기립박수가 터져 나와 공연장 가득히 매우고 무대 위의 두 피아니스트를 향해 쏟아졌다.
공연히 끝난 후 여운을 느끼기 위해 다른 음악이나 영상을 보지 않았다. 백색소음을 배경으로 공연의 잔향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 중간휴식으로 빈 무대가 떠올랐다. 두 피아니스트가 떠나고 무대에 집중된 조명이 어두워진 그때 정갈한 정장 차림의 노신사분이 들어왔다. 바닥에 가방을 조심스레 내려놓고 비어 있는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조율사였다.
록 음악 공연을 가면 곡 하나가 끝날 때마다 기타리스트는 다음 곡에 맞게 기타 줄을 조절한다. 한 곡을 연주하면서 줄이 늘어났을 수도 있기 때문에 헤드머신(줄감개)를 조이고, 다음 곡에 맞게 튜닝한다. 피아노도 마찬가지다. 건반악기이지만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건반을 통해 해머가 현을 친다. 그 진동은 브릿지를 거쳐 공명판으로 전해져 공기를 울리고 우리의 귀로 들어온다. 격렬한 연주가 끝나면 현을 조율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조율사의 가방에는 수많은 도구가 있었고, 각 연주자의 스타일에 맞게 짧은 시간 동안 조율을 끝낸다.
작업이 마무리된 후 두 피아노의 모습을 잠깐 바라본 후 조율사는 용히 무대 밖으로 퇴장했다. 마음 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공연이 시작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의 노력이 들어간다. 그날은 특히 조율사분이 기억에 남았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인정을 받지 못 하지만,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직업관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거나 리드하지 않더라도 뒤에서 그들을 위해 일 하는 것. 타인의 인정보다 자기만족을 더 큰 가치로 생각하는 내게 동기부여가 되었다. 매너리즘에 빠진 내게 좋은 자극이 되었다. 이번 공연은 예술적 감동과 직업적 동기부여 두 가지를 얻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