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곧 출시한다는 남성 피임약은 대체 언제 나오는겨...
'여자는 하체를 따뜻하게 하고, 남자는 차갑게 해야 한다'는 옛 으른들의 말이 있다. 과학적으로 옳은 이야기다. 여성의 경우 자궁 근처가 따뜻해야 신체 전반의 혈액순환이 잘 되기 때문이다. 남성의 경우 하체가 차가워야 정자의 생성이나 운동이 원활하게 돌아간다.
그런데...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은 한 중국의 연구진이 '그럼 고환을 뜨겁게 하면 피임 되는 거 아니야?'라는 다소 1차원적인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여기서 출발한 연구는 끝끝내 남성의 고환을 섭씨 40도까지 높여 정자의 생성을 막는 데 성공했다. (가끔 이런 터무니없는 생각이 좋은 연구 결과를 낳는 것을 보면, 사실 가장 창의적인 사고를 요하는 직업은 과학자가 아닌가 싶다.)
안전하면서도 약 한달간 지속되는 남성 피임법을 중국 연구진이 개발했다. 중국 난통대 연구진은 정자 수를 감소시키는 생분해성 나노물질을 개발해 국제학술지 ‘나노레터스’ 7월호에 발표했다. 이 나노물질은 자성을 띠고 있어, 자석을 통해 물질의 위치를 제어할 수 있다.
연구진은 ‘하체의 온도가 높아지면 정자 수가 감소한다’는 사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고환 근처에 작은 나노물질을 주입해 온도를 높이고자 한 것이다. 연구진은 논문을 통해 “부위에 직접 주사하는 것은 큰 고통을 수반하고, 직접 가열은 피부를 손상시킬 수 있기 때문에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면서도 안전한 물질을 찾았다”고 밝혔다.
이들이 찾은 물질은 자성을 띠는 산화철 나노입자였다. 자성을 띠는 입자는 교류 자기장을 이용해 가열시킬 수 있다. 또 자석을 이용해 원하는 부위로 이동시킬 수 있기 때문에 표적 부위에 직접 투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도 있다.
연구진은 산화철 나노입자에 각각 폴리에틸렌글리콜(PEG), 시트르산을 얇게 코팅했다. 실험실 조건에서 두 물질을 실험해본 결과, PEG로 코팅된 입자는 더 높은 온도까지 가열될 수 있지만, 자석을 이용한 제어가 쉽지 않았다. 연구진은 시트르산을 코팅한 나노입자를 정맥주사로 쥐에 주입했다. 이틀간 쥐의 혈류에 입자를 반복적으로 주입한 뒤, 자석으로 나노입자를 고환 부위로 유도했다. 이후 외부에서 15분간 교류 자기장을 흘려주자 입자의 온도가 섭씨 40도까지 올라가는 것을 확인했다. 안전성에도 큰 문제가 없었다. 연구진은 “가열 이후 길게는 60일까지 정자 생성이 억제됐다”고 말했다.
이번에 개발된 나노입자가 생분해성 물질이라는 것도 의미가 있다. 여성의 경우 경구 피임약이나 물리적인 장치를 이용한 가역적인 피임법이 많이 개발돼 있다. 즉 피임을 하더라도 언제든 다시 원래 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는 의미다.
반면 남성은 아직 승인받은 피임약이 없어, 콘돔과 같은 일회성 피임법을 제외하면 정관 수술이 유일한 피임법이다. 정관 수술은 다시 되돌리기 어려운 비가역적인 방법이기 때문에 꺼려하는 이들이 많았다. 페이 순 난통대 의대 교수는 “우리가 개발한 물질은 길어도 60일 이후에는 체내에서 분해되기 때문에 언제든 금방 생식 능력을 되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3월에도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가역적인 남성 피임약이 소개된 바 있다. 미국 룬드퀴스트 연구소 연구진은 ‘트립토나이드’라는 물질이 정자의 운동성을 떨어뜨린다고 밝혔다. 트립토나이드는 중국, 대만, 일본 등에서 서식하는 ‘미역줄나무’에서 추출할 수 있는 물질이다. 연구진은 전임상 결과 쥐에게 트립토나이드를 경구 투여하자 정자의 움직임이 현저히 떨어졌고, 4~6주 후에 정상적으로 돌아왔다고 밝혔다. 비호르몬 계열의 물질인 데다 난통대가 개발한 나노입자와 마찬가지로 생분해성 물질이라 일시적이고 안전하다. 구조가 복잡하지 않아 화학적으로도 합성이 가능하다는 점도 생산의 측면에서 큰 장점이다. 연구를 주도한 웨이 얀 룬드퀴스트 연구소 연구책임자는 “수십 년간의 연구를 통해 정자를 생산하는 기관이나 세포를 공격하지 않으면서, 정자의 기능만 떨어뜨릴 수 있는 물질을 발견하게 됐다”고 말했다.
덧붙이기
처음 외신에서 이 기사를 접했을 때는 '내가 잘 이해한 거 맞아?'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차근차근 살펴보니 꽤 장점이 많은 - 가역적이고, 안전성에도 문제가 없다고 하고, 한번 주사를 맞으면 60일이나 지속된다고 하니 - 피임법이었다.
이 연구를 기사화한 것은 '재미'있어서였지만, 한편으로는 '남성 피임약'의 필요성에 대해 꾸준히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약 5년간 남성 피임 연구, 개발 중인 피임약에 대한 글을 많이 써왔지만, 여전히 출시된 남성 피임약은 없다(출시를 앞둔 약도 없다).
가장 출시 가능성이 높은 남성 피임약은 테스토스테론과 같은 남성 호르몬의 분비를 억제하는 호르몬제다(현재 미국 워싱턴대 연구진이 임상 2상을 진행 중이다(NCT03455075). 하지만 'clinicaltrial' 사이트에서 확인해보니 여전히 진행 상황은 '환자 모집중(Recruiting)'이다. clinicaltrial에 올라온 정보에 따르면 2018년에 임상2상을 시작했으니, 3년째 100명의 지원자조차 모집을 못했다는 이야기다.
남성 피임약이 처음 연구된 것은 1950년대. -그조차 의지를 가지고 시작한 것이 아니라 '스털링 드러그'라는 미국 제약사가 구충제를 개발하던 중 일부 동물에게서 일시적인 불임이 부작용으로 나타나며 시작됐다.- 60년간, 여성 피임약 수십, 수백 개가 출시될 동안 남성 피임약은 출시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투자가 안 되기' 때문이다. 가장 유력한 남성 피임약 역시 여성 경구 피임약과 마찬가지로 호르몬제다. 호르몬제는 필수불가결하게 부작용을 낳는다. 여성 피임약을 한 번이라도 먹어본 사람은 정도의 차이일 뿐 소화불량, 두통, 기분장애 등의 부작용을 경험한다. 남성 호르몬제의 부작용으로 언급되는 것은 성욕 감소 등이다. -임상 시험 중 일부 참여자에게서 발견된 부작용이다.-
제약사들의 입장은 '지금껏 피임약을 먹지 않고도 잘 살아온 남성들이 부작용을 감수하고 피임약을 먹겠냐는 것'이다.
사실 부작용이 적은 비호르몬계 약물을 개발하기에는 여성보다는 남성의 신체 구조가 더 용이하다. 여성은 태어날 때부터 평생 쓸 난자(정확하게는 제1 난모세포)를 가지고 태어난다. 즉 난자의 생성을 막을 방법은 없다(시중의 경구 피임약은 호르몬을 이용해 난자의 성숙을 막는 것이다).
반면 남성은 그때그때 정자를 생산해내기 때문에, 정자의 생성을 막을 수 있다. 또 난자와 다르게 정자는 (스스로 운동할 수 있는) 운동성을 갖기 때문에, 운동성을 떨어뜨리는 방법도 있다. 좀 더 다양한 '옵션'이 있는 셈이다. 그만큼 비호르몬계 약물을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도 크다.
제약을 포함한 모든 산업은 돈의 논리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거대 제약사들이 '사회적 책임'을 가지고 다소 수요가 적어보이는 약들도 개발해주면 좋겠지만, 그들의 양심에 기대기에는(양심이 있는 회사도 많지 않지만) 약을 개발하는 데 드는 돈이 너무 어마무시하다. 즉 정책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희귀질환 치료제를 지원할 돈도 없는데, 웬 남성 피임약이냐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원래 사회가 응당해야 할 일에 우선수위를 매기는 것은 쉽지 않을 뿐더러, 옳지도 않다. 지금껏 많은 여성 인권이 '일단 급한 것부터 해결하고 보자'는 논리로 얼마나 보장받지 못해 왔는가. 이 역시 마찬가지라고 본다.
남성 피임은 오랫동안 관심있게 지켜본 주제인 터라, 덧붙이는 말이 기사 보다도 길어졌다. 많은 이들이 이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반드시 필요한 일임에 공감해주길 바라서다. 혹시 덧붙일 의견이 있거나 공유하고자 하는 또 다른 연구가 있는 분들은 댓글로 꼭 달아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