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칼럼] ② 소토라십, KRAS의 벽을 부수다

비소세포폐암 환자들에게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by DYONI

KRAS G12C 억제제의 선두 주자였던 암젠의 ‘소토라십(제품명 루마크라스)’이 지난 5월 28일(현지 시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판매 승인을 받았습니다. KRAS 저해제로는 최초입니다.


소토라십.jpg 암젠이 개발한 KRAS 저해제 '루마크라스(성분명 소토라십)'. 지난 5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아 일부 비소세포폐암 환자들에게 투여될 예정이다. (출처: 암젠)




항암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라스(Ras) 단백질’ 을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세포 분열의 신호 탄과 같은 단백질로, Ras 단백질이 일으키는 인산 화 연쇄반응은 ‘Ras 신호전달경로’로 잘 알려져 있 습니다. 이 경로는 1000페이지에 달하는 일반생물학 전공서적에서도 가장 복잡한 신호전달 경로로 악명이 높죠.


복잡한 경로이기는 하지만 세포를 증식시키는 가장 확실한 경로였기 때문에 30년 이상 제약계에서 탐내던 항암제 타깃이었습니다. Ras 단백질 중에서도 KRAS는 가장 눈독을 들이는 표적이었죠. Ras 단백질에는 KRAS, NRAS, HRAS가 있는 데, Ras 단백질 변이로 발생한 종양 중 무려 85%가 KRAS가 원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암젠, 30년간 정복하지 못한 악명의 KRAS에 도전

30년이 넘게 과학자들이 KRAS에 매달렸음에도 신약 개발에 진척이 없었던 건 이 단백질이 너무 ‘매끈’ 했기 때문입니다. 레고를 떠올려보면 간단합니다. 레고 블록이 쓰러지지 않고 모양을 유지하는 건 블록마다 홈이 있기 때문입니다. 블록 표면이 매끈하다면 금방 쓰러지고 말겠죠. KRAS는 홈(포켓)이 없는 블록인 셈입니다. 약물이 KRAS의 활성을 억제하려면 일단 가서 붙어야 하는데 붙을 곳이 없는 겁니다. 그래 서 제약업계에서 KRAS는 ‘약물로 만드는 것이 불가능한(undruggable)’ 존재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다국적 제약사 암젠이 미국 식품의 약국(FDA)에 KRAS 저해제인 ‘소토라십(AMG510)’ 에 대한 허가 신청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FDA가 항암제의 신속한 허가를 위해 마련한 ‘실시간 항암 심사(RTOR·Real-Time Oncology Review) 파일럿 프로그램을 통해 가속심사를 신청한 것입니다. 이 심사는 신속 승인의 일종으로, 임상완료 전에 데이터 일부를 먼저 검토해 빠르게 승인을 내주는 제도입니다.


암젠은 지난해 10월 ‘유럽종양학회(ESMO)’에서 임상 1상의 전체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 결과 비소세포 폐암 환자 59명 중 종양의 크기가 줄어든 비율(객관 적반응률·ORR)은 32.2%였고, 더 이상 질병이 진행 하지 않는 비율(질병통제율·DCR)은 88.1%였습니 다. 암젠은 임상 2상에서도 긍정적인 결과를 얻었으며 구체적인 수치는 올해 1월 ‘세계폐암학회(IASLC)’ 에서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여러 돌연변이 중 KRAS(G12C)를 선택한 이유

암젠은 2019년 10월 항암 후보물질인 AMG510에 대 한 정보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임상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논문에 따르면 AMG510은 KRAS의 G12C 돌연변이를 표적해 활성을 억제합니다. KRAS 돌연변이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중 G12D가 41%, G12V가 28%, G12C가 14%를 차지했습니다. 암젠은 왜 좀 더 변이 비율이 높은 G12D나 G12V를 선택하지 않았을까요. 그 이유는 암젠 연구진이 발표한 <네이처> 논문 초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KRAS는 가장 빈번하게 변이가 일어나는 종양 유발 유전자이며, 종양에서 핵심 신호전달 단백질 정보를 가지고 있다. KRAS(G12C) 돌연변이는 공유결합 억 제제(Covalent inhibitor)가 잘 결합할 수 있는 시스 테인 잔기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새로운 결합 상호작 용을 통해 효능과 선택성을 높이도록 억제제를 최적 화했다. 우리의 노력은 최초의 KRAS(G12C) 억제제 인 AMG 510을 발견하도록 이끌었다.

눈치가 빠른 독자는 이미 눈치를 챘겠지만, 암젠이 G12C 돌연변이를 선택한 건 ‘ 시스테인 잔기’ 때문이었 습니다. 시스테인 단백질을 이루는 기본 단위인 아미노산 중 하나입니다. 시스테인은 반응성이 큰 아미노산에 속하기 때문에 이를 공략하면 될 것이라고 판단한 거죠.


G12C 돌연변이는 글리신이라는 아미노산이 시스테인으로 바뀐 돌연변입니다. 시스테인은 암을 유발한 ‘문제아’인 동시에 약물이 결합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 ‘ 은인’인 셈입니다.


이 논문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KRAS G12D 돌연변이에 대해서도 AMG510이 어느 정도 효 과를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마우스 모델을 대상으로 한 전임상 결과이기는 하지만, AMG510은 KRAS (G12D)의 종양 성장을 억제했습니다ㅇ.


amg510.png 암젠이 공개한 소토라십(AMG510)의 구조.


면역항암제 이후 새로운 항암제 패러다임 될까

암젠이 성공적인 결과를 얻어서 다행이지만, 아마 임상 중에는 연구진도 많이 마음을 졸였을 겁니다. 1990년대 후반 여러 제약사들이 Ras 단백질을 타 깃으로 한 신약 개발에서 처참하게 참패한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암젠이 Ras 단백질에 도전을 한 건 2013 년 케반 쇼캇 미국 캘리포니아대 교수가 <네이처> 에 발표한 논문 때문이었습니다. 쇼캇 교수가 처음으로 KRAS(G12C)의 시스테인 잔기에 달라붙는 물질을 발견한 것입니다.


쇼캇 교수는 특정 구조를 가진 물질이 KRAS (G12C)의 시스테인에 결합하자 알 수 없는 홈(포켓) 이 생기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드디어 약물이 붙을 곳을 발견한 거죠. 이 발견을 통해 KRAS 억제제의 개발 가능성을 엿본 여러 제약사들은 신약 개발에 뛰어들었습니다.


암젠은 현재 FDA에 허가 심사를 신청했고, 650명의 고형암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3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빠르게 암젠을 쫓고 있는 미라티테라퓨틱스는 임상 2상을 진행 중으로 올해 하반기 FDA 신청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모더나와 머크는 G12C, G12D, G12V 등 다양한 돌연변이를 표적으로 하는 mRNA 암백신 을 개발 중입니다. 프로탁(PROTAC) 기술을 이용 한 KRAS 타깃의 항암제 개발도 연구 단계에서 진 행되고 있습니다.


암젠의 AMG510이 허가 심사가 나고, 환자들에게 뛰어난 항암 효과를 보인다면 면역항암제 이후 다 소 침체돼 있던 항암제 신약 개발이 다시 활성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함께 볼 자료

국제학술지 <네이처>와 미국의 바이오텍 '리액션 바이올로지'가 제작한 KRAS 포스터다. RAS 단백질의 변이체 종류와 약물로 개발되고 있는 RAS 단백질의 활성부위, 개발약물의 메커니즘 및 임상현황이 보기좋게 한 장에 정리돼 있다.


덧붙이기

제약업계 소식을 둘러보다 보면 개발이 불가능한, undruggable 타깃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KRAS처럼 뜻밖의 돌파구를 찾는 경우도 있지만, '프로탁(PROTAC)'으로 대표되는 '단백질 디그레이더(Protein Degrader)'와 같은 새로운 모달리티도 등장했기 때문이다.

특히 프로탁은 큰 관심이 가는 모달리티다. 물론 아직까지 연구 초기 단계이고 한계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잠재성이 대단히 큰 모달리티가 아닌가 싶다. 기회가 된다면 프로탁에 대한 글도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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