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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런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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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SIA Jan 31. 2021

<살아남은 사람들>

꼭 끌어안아 주고 싶은 영화

날 안아줄래요?
출처: 영화 <살아남은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앞에서 멀쩡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이별은 아프고 그래서 그 아픔의 크기를 온전히 잴 수야 없겠지만 이 영화를 보면 유난히 클라라의 한 대사가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우리는 더 힘들죠. 떠난 사람들보다.’ 떠나간 사람들의 이별보다 남아있는 사람들의 이별이 더 힘들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남아있는 자들은 떠나간 자들이 머물러 있던 그 공허한 빈자리까지 끌어안고 살아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 헝가리 영화 <살아남은 사람들>은 1948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랑하는 가족들을 떠나보낸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삶을 조명하며 사랑을 잃어버린 외로운 이들의 삶을 지탱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찾아보고자 한다.


고통스런 전쟁의 잔상을 다룬 영화들이 반복해서 나오는 이유는, 그만큼 지난 역사를 기억하고 더 이상 그런 전쟁의 과오을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다. 우리는 제2차 세계 대전과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의 삶을 다룬 훌륭한 작품들을 많이 만나왔다. 그 사연 있는 주인공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그 인물들과 하나가 되어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곤 한다. <피아니스트>는 유대계 피아니스트인 ‘스필만’의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통해 무한한 생의 의지와 인류에 대한 일말의 희망을 담아내었다. <사울의 아들>의 ‘사울’이라는 인물을 통해서는 살아남기 위해서 아우슈비츠 소각장에서 동족들의 시체를 처리해야만 했던 희생자들의 현실을 보여주었고, <쉰들러 리스트>에서는 약 천백여 명의 유태인을 구한 독일인 사업가 ‘오스카 쉰들러’의 삶을 따라가며 시대에 저항하는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사랑과 연대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작품들이 그 당시 전쟁이 일어났던 현장의 생생함과 격동 같은 삶을 살아왔던 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영화였다면, 모든 것이 지나간 이후 적막 같은 삶을 비추는 영화는 <살아남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를 감독한 버르너바시 토트는 클라라와 알도 두 사람이 겪었던 기억을 억지로 플래시백 하려 하지 않고 구체적인 사실 묘사는 생략한 채 그들의 상처와 쓸쓸한 감정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데에 집중한다. 아픈 기억을 무심코 들추려 하는 것은 당사자들을 한 번 더 무너뜨릴 뿐이다. 그는 진정한 위로가 무엇인지를 안다. 그저 옆에서 지켜보고, 배려하고, 기다린다.


“선생님은 왜 살아요?”
“사는데 이유가 있니?”
출처: 영화 <살아남은 사람들>

헝가리는 나치 독일에 의해 56만 명이 학살당한 슬픔의 땅이다. 그리고 1948년 그곳엔 여전히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었다. 홀로코스트에서 생존해 할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16세 소녀, 클라라. 그녀는 그곳에서 가족과 헤어지게 되었지만 그들이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밤마다 가족에게 부치지 못하는 편지를 적으며 자신의 슬픔을 달랜다. 그러던 어느 날, 진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찾아갔던 클라라는 그곳에서 산부인과 의사인 42세 남자, 알도를 만난다. 그 역시 그녀와 같은 상처를 안고 있다. 수용소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는 홀로 병원과 집, 그리고 고아원을 오가며 조용히 삶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서로 다른 색을 지녔지만 채도가 비슷한 두 사람이었다. 여느 10대처럼 호기심 많고 자유분방한 클라라와 묵묵하지만 따뜻함을 지닌 알도는 함께 대화를 나누고 곁을 지켜주며 삶의 생기를 조금씩 되찾기 시작한다. 때론 듣기 좋은 잔소리도 해줄 수 있는 아빠와 딸처럼, 함께 춤을 출 수 있는 친구처럼, 악몽에서 깨어난 새벽을 함께 지새워줄 수 있는 연인처럼. 특정한 관계성을 초월한 두 사람의 유대는 이렇게 서로를 밝은 빛으로 인도했다. 그러나 그들의 일상은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들의 관계를 의심의 눈초리로 지켜보았다. 헝가리는 스탈린의 지배하에 있던 소련의 통제와 감시를 받아왔고 이로 인해 하룻밤 사이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두 체제의 독재를 경험한 이 두 사람은 이별이 어떤 것인지 알기에 더욱더 서로를 잃지 않기 위해 간절해진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살아남는 만큼 힘든 게 살아가는 임을 보여준다. 정작 이 세상의 관심은 이미 무너져 내린 삶을 다시 이어 붙이는 방법은 가르쳐주지 않은 채 종전 그리고 해방과 함께 홀연히 떠나버렸다. 어쩌면 클라라와 알도와 같은 인물들은 이 세상 변두리에서 조금씩 잊혀지는 존재이기도 한 셈이다. 안으로는 걷잡을 수 없는 여러 감정들이 뒤섞여있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 홀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이 모든 현실에 대한 원망. 이런 현실에서 두 인물이 자꾸만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인 것이다.


평화가 없는 시대에 평온한 사랑을 갈구했던 클라라와 알도. 영화에 전반적으로 깔린 우울한 배경은 어느 순간부터 ‘이보다 행복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고요하고 따스해지는 변화를 느낄 수 있다. 그들이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을 보면서 모든 것을 잃고 삶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어딘가 결핍된 서로가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줌으로써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한 번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진정한 행복이란 끝에서 오는 게 아니라 과정에서 오는 법이다.


아우슈비츠 유대인 포로수용소가 해방된 지 어느덧 76년이 흘렀다. 그 오랜 시간을 대변하는 클라라와 알도의 이야기는 단지 홀로코스트 희생자들과 가족들을 위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손길을 조금 더 뻗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로 내민다. 따뜻하게 안아줄 수는 없지만 당신은 괜찮을 것이라 다독여주는 것만 같다. 이 불안한 시대에서 우리는 그저 살아남는 것이 아닌 살아가기 위한 물음을 던져야 한다.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조금만 더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다면 이 시련도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여전히 강인하게 살아있다는 존재만으로도 빛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은, 희망이다.



2021년 2월 10일 개봉 예정.


덧. 이 영화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곡을 하나 찾았다. 관심 있는 분들은 이 음악도 함께 들어보시길 바란다.

Can’t Help Falling In Love​ by Pentatonix

Wise men say only fools rush in
But I can’t help falling in love with you
Shall I stay?
Would it be a sin?
If I can’t help falling in love with
현명한 사람들이 그러기를 바보들이나 서두르는 거래요
그렇지만 저는 사랑에 빠져버렸어요
제가 머물러도 될까요?
혹시나 제가 당신을 사랑하는  멈출  없다면 그게 죄가 될까요?

Like a river flows
Surely to the sea
Darling, so it goes
Some things are meant to be
마치 강물이 흐르면
당연히 바다로 이어지듯
그래요, 그런 거예요
어떤 일들은 그렇게 되라고 있잖아요

Take my hand
Take my whole life too
For I can’t help falling in love with you
 손을 잡아요
 인생도 모두  받아주세요
저는 당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으니

번역 출처: 네이버 블로그 Trust, but verify by Jo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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