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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SIA 9시간전

<아노라>

이 세상 그 어떤 언어로도 부정할 수 없는 그녀의 이름, 아노라

난 아노라란 이름이 더 좋아.
영화 <아노라>

션 베이커 감독이 많은 관객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작품인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암울한 현실을 딛고 자기만의 디즈니 랜드로 향하는 6살 '무니'의 이야기였다면 제77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그의 신작 <아노라>는 러시아 재벌 2세 '이반'을 만나 신데렐라 같은 신분 상승의 꿈을 그리는 뉴욕 스트리퍼 '아노라'의 이야기다. 두 영화에서 모두 디즈니 랜드가 언급될 만큼 '무니'와 '아노라'에게 있어서 놀이동산은 마치 현실 세계로부터 떠나고 싶은 꿈과 환상의 나라인 것처럼 그려진다. 특히 <아노라>에서는 아노라가 '이반'을 통해 만나는 새로운 세상에서, 수도 없이 이루어지는 술과 섹스와 파티의 광경을 많은 수의 컷과 화려한 앵글, 신나는 배경음악으로 묘사하는데 그것이야말로 일종의 어른들의 타락한 놀이동산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노라>는 롤러코스터 같은 영화다. 두 사람이 베가스에서 충동적인 결혼을 올리고 거리를 뛰어다니며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혼인을 자랑하는 장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들뜨게 만든다. 재벌과 스트리퍼. 보통의 연인들에게 결혼이란 그들 사랑의 종착지일 테지만 이들에게는 시작점이다. 서로의 위치에 있어서 고용자와 피고용자 사이의 애매한 관계에서 벗어나 법적 관계인 혼인을 통해 남편과 아내라는 동일선상에서 비로소 마주 서게 되었을 때의 그 해방감과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마치 허영으로 둘러싸인 이 세상에서 '진짜'를 만난 것처럼. 

영화 <아노라>

그러나 롤러코스터는 한번 정상 위에 올라서게 된 다음부터는 멈출 새도 없이 이리저리 곤두박질치며 하강과 상승을 반복한다. 아노라와 이반의 비밀 결혼 소식을 알게 된 이반의 부모가 하수인 3명을 시켜서 그 결혼을 무효화하려 하는데 평소 부모에 대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고 있던 이반은 아노라를 혼자 내버려 두고 줄행랑치고 만다. 이때부터 하수인 3명과 아노라는 각자의 입장을 공고히 하기 위해 격렬한 몸싸움도 벌이고 서로를 향해 고함을 치기도 하다가 결국에는 이반을 잡으러 함께 돌아다니며 수색하기 시작한다. 화려한 환상으로부터 그녀를 끌어내리려는 세상으로부터 아노라는 끝까지 이반과의 사랑이 그 누구에게도 증명해 보일 수 있는 '진짜'라고 믿으며 희망의 끈을 내려놓지 않으려 한다. 


궁극적으로 <아노라>는 한 사람의 삶을 정의하는 '언어'라는 것에 대해 말한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듯 미국인 아노라와 러시아인 이반의 언어 차이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언어는 이를 구사하는 사람이 살아온 사회 관습적인 체계의 반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즉, 영화는 저마다의 환경과 계급, 세대 그리고 사랑 앞에서의 서로 다른 '몸과 마음의 언어'를 보여주는 듯하다.


예를 들어 초반에 아노라와 이반이 사랑을 나누는 일은 사실 '진짜' 사랑이 기반이 된 행위가 아니라 엄밀히 '금전'으로 거래되는 섹스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 두 사람은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다음을 기약할 때에도 어느 한쪽이 자연스레 돈 액수를 묻고 상대도 이에 치욕스러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건 아노라와 이반이 공유하고 있는 언어이자 일종의 세계관인 것이다. 한편, 그 뒤에 펼쳐지는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아노라가 자신에게 가해지는 육체적인 위협에 대해 저항하는 모습이나 그와 정반대로 타인이 주는 순수한 선의를 대하는 방식을 볼 때 일관되게 그것을 성적인 의미와 연결시키는 태도는 그녀가 이러한 몸의 언어에 얼마나 익숙해져 있는 사람인지를 짐작케 한다.

영화 <아노라>

 더 나아가 이 영화는 단순하게 보면 아노라와 이반의 불 같은 사랑과 갈등을 내보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아노라의 주변을 둘러싼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의 그림자가 있다. 신분 사회는 아니지만 도처에 존재하고 있는 경제적 측면에서의 계급 사회를 무시할 수가 없다. 애초에 이반의 부모가 아들의 결혼을 반대하는 이유도 그것에 있다. 젊은 나이의 재벌 2세가 친구들과 놀러 다니는 장면이나 중년의 남성 하수인이 이반을 찾아다니는 과정에서 겪는 문제들은 코미디스럽지만 그 안에 있는 만연한 세대차이의 현실까지 꼬집고 있다. 

영화 <아노라>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어린 소녀가 디즈니 랜드로 나아가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면, 이번 영화 <아노라>의 경우에는 어쩌면 그녀가 그토록 꿈꾸던 환상의 디즈니 랜드는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이 온통 좌절과 돌이킬 수 없는 몰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앞서 아노라가 일생토록 사용해 온 '언어'는 곧 그녀의 세계관과도 같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언어만이 그녀의 전부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영화에서도 그녀의 이름을 타이틀로 내걸고 있을 만큼 남들에게 불리는 이름인 '애니'와 달리 '아노라'라는 '진짜' 이름은 그녀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녀가 비록 스스로에게 떳떳하다고 자부할 수 있을 만한 멋진 삶을 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녀 삶에 가장 처음 주어진 언어라고도 볼 수 있는 그녀의 이름 '아노라'는 그녀를 얼마든지 다시 꿈꾸고 희망하게 하고 다시 내일을 그려볼 수 있도록 지켜주는 빛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디즈니 랜드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이 불안한 삶에서 우리를 지켜주는 버팀목은 의외로 정말 가까이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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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1ROW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소정의 활동비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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