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그런 영화

<나이트비치>

구속과 숭배 사이의 어느 지점을 맹렬히 좇는 그녀들의 초월적 사랑

by FREESIA

본 리뷰는 1ROW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소정의 활동비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내가 개로 변하는 것 같아요.
common.jpg 영화 <나이트비치>

이 영화에 대해서 글을 쓰려고 한 순간 나는 뒤늦게 깨닫고 말았다.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육아에 매진하는 어느 지쳐버린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이 영화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우리에게 한 번도 그녀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군가의 엄마로 살아간다는 건 이렇듯 자신의 이름이 세상으로부터 점점 잊힐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일까. 괜히 씁쓸한 마음이 들기는 하지만 이상하게도 절망적이지는 않다.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이 떳떳한 '자신'으로 살아가길 포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족과의 사랑 역시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 멋진, 이름 없는 여성의 이야기가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의 이야기임을 대변해주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영화 속 주인공인 엄마는 한 때는 유망한 설치미술가였지만 육아에 전념하게 되면서 자신의 삶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를 키우다 보면 지겹게 반복되는 삶에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지쳐가기 마련이었다. 그녀는 지인이나 남편에게 일순간 거친 말들을 표출하고 싶고, 날 것의 속내를 토해내고 싶어 잠시간의 발칙한 상상을 해보기도 하지만 끝내 여러 번 속으로 삼키고 만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몸에는 어떤 변화가 조금씩 일어나기 시작한다. 털이 자라고 치아가 뾰족해졌다. 후각은 예민해지고 주변에는 개들이 몰려들었다. 이러한 진화의 과정 끝에서 그녀는 대체 무엇이 되려는 것일까.

다운로드 (2).jpg 영화 <나이트비치>

그러나 막상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이러한 판타지적 상황의 규명보다는 이 기묘한 일들에 대한 주인공의 태도에 더 주목하게 된다. 나였다면 깜짝 놀라서 당장 병원에 찾아갔을 법한데 이 영화 속 주인공은 초반까지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은 태도를 보인다. 그 모습이 오히려 더 공포스러웠다. 자신의 몸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현상을 호르몬 변화라고 짐작하거나 그저 괜찮겠지, 하고 넘기는 모습은 그녀가 그동안 얼마나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감각에 둔화되어 왔는지를 반증하는 듯하다. 그리고 이 이상한 정체성의 총체적인 변화가 그녀에게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 순간인지도.

다운로드.jpg 영화 <나이트비치>

영화 <나이트비치>가 여성의 삶, 특히 엄마로서의 여성을 다룬 여느 영화와의 차별화된 지점은 이러한 독특한 소재에만 그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주인공이 이 엄청난 사건을 계기로 어떤 삶을 향해 가느냐에 있다. 인간이 한낱 들짐승이 된다는 것은 진화학적으로는 다소 퇴보한 것으로 보일 수 있으나 자신을 가두는 구애나 틀에 얽매이지 않고 동물적인 감각을 따름으로써 자유로움을 만끽하게 되었으니 이는 그녀 스스로에게 있어서는 진보한 것에 가깝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는 이 여성이 기존의 가족의 틀에서 벗어나 마음껏 이상적인 행보를 나아가는 것이 최종적인 목적지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즉,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이래야 해, 와 같은 책임감으로 주인공을 몰아세우지도 않고 또 엄마를 히어로처럼 초현실적인 능력이 있는 존재로 막연히 숭상하며 일반 사람들과 다른 경지에 올려놓으려 하지도 않는 것이다. 그녀들은 엄마로서 소중한 아이들을 한없이 사랑으로 보살피고도 싶지만 사실 누군가의 무엇이 아니라 그녀 스스로가 되고 싶은, 여전히 꿈과 열망을 가진 존재이기도 하다. 그런 지점에서 이 영화는 그저 엄마가 된 여성들이 가진 양가적인 감정을 지극히 응시하고 그들의 시행착오들을 묵묵히 응원할 뿐이다.

다운로드 (1).jpg 영화 <나이트비치>

어쩌면 그토록 찾고 싶었던 인생의 균형이란 것은 이 어렵고 막막한 상황을 돌파하여 어딘가로 떠나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과 열망을 따라갈 때 저절로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한 때 꿈을 접어두고 가족을 택한 과거의 선택을 원망할 필요도 없고, 여전히 마음에 솟구치는 꿈을 감히 억누를 필요도 없다. 사랑하는 것을 멈추지 않기 위해 고민하는 그녀들의 밤은 어떤 모습으로든 여전히 아름답다.


#현실적인 #기발한 #블랙코미디 #판타지 #여성영화 #영화리뷰 #원로우 #1ROW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리얼 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