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그런 영화

<9월 5일: 위험한 특종>

빠르게 전진하는 시간 속에서 지나치지 말아야 할 머뭇거림의 메시지

by FREESIA

본 리뷰는 1ROW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소정의 활동비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정치 얘기가 아니야. 감정에 관한 거지.
common (5).jpg 영화 <9월 5일: 위험한 특종>

1972년, 그 해 열린 뮌헨 올림픽을 바라보는 마음은 저마다 달랐을 것이다. 오랜 시간 자신의 능력을 갈고닦은 선수들에게는 꿈의 기회였을 것이고,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이었던 독일에게 있어서는 나치즘의 역사에서 벗어나 새롭게 도약하는 토대였을 것이다. 그리고 오랜 전쟁의 상흔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의 사람들이 곳곳에서 올림픽을 기대하고 응원했던 것은 이 스포츠 축제가 가진 남다른 의미를 조금이나마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깊은 참회와 더 나은 날을 향한 모든 이들의 바람이 무너지는 건 하룻밤 사이 일이었다.


올림픽 선수촌에서 들려온 정체불명의 총성은 그 날밤 근처에 자체 스튜디오를 두고 전 세계 최초로 올림픽 생중계 방송을 진행했던 ABC 방송국까지 닿았다. 급히 상황을 조사해 보니 검은9월단이라는 단체가 이스라엘 선수들과 코치를 인질로 삼아 테러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스라엘에 억류된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을 석방하라는 조건을 내걸면서 말이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ABC 방송의 스포츠팀은 이 위험천만한 사태를 무사히 방송할 수 있을까.

common (4).jpg
common (1).jpg
common (6).jpg
common (2).jpg
영화 <9월 5일: 위험한 특종>

뮌헨 올림픽에서 발생했던 실제 테러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 <9월 5일: 위험한 특종>은 긴박했던 현장 상황을 이를 보도하는 언론의 시선에서 중점적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영화 내에서도 주인공들이 직접 스튜디오 밖을 나가는 장면은 손에 꼽을 정도로 많지 않고 대부분의 장면들이 여러 개의 방송 송출 화면을 앞에 둔 좁은 부조정실 내에서 이루어진다. 특히나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생중계 시스템을 이용해 이 테러 사건을 보도하기로 한 스포츠팀은 전문 보도국이 아니었으므로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방송사 내부와 언쟁을 벌이기도 하고 타 방송국과 인공위성을 쓰는 타임라인을 조정하기 위해 숨 가쁘게 협상을 하기도 한다.


제한된 시간 내에 인력과 장비를 끌어 모으기 위해 직접 발로 뛰어다니는 직원들의 모습도 눈에 띈다. 1970년대의 방송 기술은 생중계까지 가능해졌으니 당연히 과거보다는 훨씬 발전해 있었지만 현대 기술에 비하면 과도기였다. 그러니 외부인과의 통화 내용을 방송에 직접 내보내기 위해서는 전화선을 일일이 작업해서 연결해야 했고, 그도 안되면 직접 수화기를 마이크에 갖다 대면서 다자통화를 하는 식으로 각자의 상황을 공유했다. 특정 사진을 확대하기 위해서 프로그램으로 손쉽게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일일이 사진을 찍어 현상을 하는 작업을 거쳐야 했고 잠입해서 녹화한 영상의 필름은 본부에 전달하기 위해 여러 번 왔다 갔다 오가기를 반복해야 했다. 이렇게 영화는 이 ‘위험한 특종’을 보도하기 위해 그 뒤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 지를 낱낱이 보여주는데 그 방식들이 상당히 아날로그적이라 연출면에 있어서는 가시적으로 그 긴박함과 간절함을 엿볼 수 있어 스릴러라는 장르에 걸맞았던 것 같다. 더 나아가 손쉽고 빠르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오늘날과는 달리 이 영화 속에서 보여준 일련의 보도 과정은 말 그대로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쳐 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언론이 세상에 내보내는 간결하고 정돈된 메시지 안에 담겨있는 무거움을 새삼 느끼게 된다.

common (3).jpg 영화 <9월 5일: 위험한 특종>

스포츠 경기를 중심으로 전 세계 사람들이 모여든 올림픽처럼 이를 중계하는 방송국을 구성하는 사람들 역시도 사실은 여러 출신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영화는 전 세계를 올림픽으로, 그리고 방송국 안으로 차츰 범주를 좁혀 이야기의 주제를 심도 있게 파헤쳐 나가는 셈이 된다. 즉, 마냥 언론인으로서 직업적 사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시점에 다다르면 조국의 한 사람이라는 감정으로 이 테러사건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그들은 여러 선택과 갈등의 국면 마주한다. 만약 자신들의 보도로 누군가의 끔찍한 죽음이 곧바로 생중계된다면 그것이 전 세계의 트라우마가 되지는 않을지, 상식적으로 극비에 부쳐야 할 테러 협상을 보도하는 것이 일을 도리어 그르치게 만드는 것은 아닐지, 다른 방송사에 속보를 뺏기기 전에 100% 확실하지 않은 정보를 내보내도 될지 말이다. 이런 질문들을 통해 그들은 언론인의 윤리의식과 경쟁심리 사이를 오가기도 하고, 종국에는 그 어떤 분주함 속에서도 ‘사람’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한다.

common (7).jpg
common.jpg
영화 <9월 5일: 위험한 특종>

<9월 5일: 위험한 특종>은 시대를 막론하고 언론이 가진 힘과 그 영향력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던 영화였다.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테러 사건과 같이 대내외적으로 혼란한 상황 속에서는 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것이 바로 언론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언론인의 일은 그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이 역시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맥락으로 쓰느냐에 따라서 그들의 말들은 총만큼이나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인류의 기술은 발전하게 되었으니 현대의 언론은 더 다양한 방식으로 현장성을 살리는 보도가 가능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먼 곳이어도 그곳의 정보를 신속하게 전달할 수 있게 된 것이 진정성과 책임 있는 보도로 이어지는지는 의문이 든다. 이를 경계하기 위해서는 영화 속 인물들이 보여줬던 것처럼 단정 짓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들이 가진 메시지의 무게를 가늠해 보는 머뭇거림의 순간들이 필요하다.


#실화모티브 #언론 #휘몰아치는 #긴장감넘치는 #스릴러영화 #여운이남는 #영화리뷰 #원로우 #1ROW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이트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