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마지막 퍼즐 한 조각과 같았던 영화
제가 가장 잘하는 게 퍼즐인 것 같거든요.
편안한 색감과 눈부신 햇살을 너무나 잘 담아내고 있는 영화다. 그러나 그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도 강인한 메세지를 우리에게 전달한다. 영화가 시작하면 홀로 집안을 바쁘게 움직이는 아그네스의 모습이 비춰진다. 청소를 하고 파티 준비를 한다. 파티가 시작하고 나서도 그녀는 그릇 정리로 쉴 틈이 없다. 그리고 그녀는 누군가의 생일인 듯 케이크를 꺼내고 정성스레 초를 꽂아 들고 나오고, 사람들은 '생일 축하해, 아그네스!'라며 노래 부른다. 자기 생일 파티였다니! 마냥 기가 막히지만은 않다. 나에게도 가끔 이런 때가 있다. 어느 순간부터 나를 위한 일이 실은 다른 누군가를 위한 일이 되어버리고 마는.
그래서 초반부 몇몇 장면에서는 좁은 문 틀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는 모습으로 아그네스를 표현하곤 한다. 밝아 보이지만 그녀는 어쩐지 외롭게 똑같은 하루를 보낼 뿐이다. 아그네스는 매일 아침마다 알람이 울릴 타이밍을 '5, 4, 3, 2, 1' 세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질 남편의 말들을 그녀는 이미 예상하고 있다. '5분만 더. 제발.' 영화 속에서는 소소하고 사랑스러운 일상처럼 보였지만 사실 이러한 루틴을 꿰뚫고 있는 장면을 통해서 그녀가 얼마나 이러한 생활을 자주, 오랫동안 반복해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그런 그녀가 생일 선물로 우연히 받은 퍼즐을 맞춰나가면서 자신이 진정 잘 하는 게 무엇인지 깨닫게 되고, 로버트와 퍼즐 대회까지 출전하게 되면서 평온하기만 했던 그녀의 삶에도 변화가 시작된다.
허락을 구하는 게 아냐. 통보하는 거야.
사실 아그네스는 평소 남편과 큰 갈등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여느 평범한 부부들처럼 서로를 아끼고, 사랑했다. 하지만 변화(transformative)는 격하게 요동치는 파도 앞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문제는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바로 그곳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다. 아무 문제없어 보이던 아그네스 가족은 평소 뉴스를 잘 보지 않는다. 그녀의 남편의 영향 때문이었는데, 뉴스는 안 좋은 일들만 보도하기 때문에 굳이 찾아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남편은 온통 세상에 대한 비관적인 생각들로 꽉 막힌 사람이었다. 아무래도 과거 아버지와 있었던 상처 때문에 그 또한 스스로를 가둬두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고모를 돌봐야 한다는 핑계로 퍼즐 연습을 하러 가야 한다고 말하는 아그네스에게 그는 사람들이 그녀를 이용하려고 드는 것이라며 가지 말라고 한다. 아들 학비 문제로 휴가지로 종종 가곤 했던 펜션도 팔아야 할 상황이 오자 가족을 위해서라며 완강하게 반대한다. 하지만 가족을 위하는 것만 같은 그의 모든 말과 행동은 사실 그의 위안 때문이었다. 아내가 밖을 자주 나가는 게 불안해서, 땅을 팔면 그곳에서 자신의 취미인 낚시를 할 수 없어서. 대학을 가지 않고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을 하는 큰 아들의 꿈은 생각하지 않고, 셰프는 여자들이나 하는 거 아니냐며 나무란다.
사실 이러한 작은 문제들과 편협한 생각들의 충돌은 많은 가정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단순히 남녀 문제를 떠나서 총체적인 인간관계에서도 그러하다. 결국엔 당신이 아닌 나. 상대를 위한 나의 걱정과 배려가 진심으로 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닌 그렇게 해야 내 맘이 '편하기' 때문은 아니었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아그네스를 위한 생일 케이크가 실은 그 파티에 온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내기 위한 것으로 전락해버린 모습처럼.
남편은 우물 안 개구리였다. 물론 아그네스도 그런 남편 옆에서 그러한 삶에 익숙해져 버렸다. 현실을 보려 하지 않았다. 그게 아무리 재앙이라고 해도 그게 진짜 세상이라면 당당히 마주하고, 변화해야 한다.
아그네스가 퍼즐 파트너로 만난 로버트는 '다른'사람이었다. 그녀의 모든 똑같은 일상에서 마주한 유일한 '다른' 존재였다. 그는 그녀가 결혼하기 전 성인 '마타'로 그녀를 불러주었다. 오랜 세월 동안 가족과 가정에 메여 잊고 살았던 진짜 자신의 이름 '아그네스 마타'를 불러주고 그녀의 진짜 모습을 보게 한 고마운 사람이다.
가족과 함께 있을 때 행복을 느꼈던 아그네스. 정작 사랑하는 가족은 불안한 자신의 삶의 구원이 되지는 못했다. 가족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사이에서 불안해할 때, 로버트는 말했다. 퍼즐을 통해서 우리의 맘 속 혼란을 잠재우고 위로가 되는 그 작지만 큰 힘은 사실 사랑에서도 찾기 힘든 거라고.
그의 도움을 받아 아그네스는 사랑이 곧 구원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외면하고자 했었던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생기게 된다. 점점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더 이상 고해성사를 하거나 남편에게 모든 말들을 털어놓으려 하지 않는다. 무얼 말할지, 말하지 않을지를 결정하는 건 온전히 나의 몫이다. 다른 누구도, 어떤 힘도 강요할 수 없는 나의 영역이다. 비록 아그네스가 세계 퍼즐 대회로 나가는 길을 포기하게 되지만 더 이상 자신의 맘을 숨기지 않고, 자신이 무얼 말하고 싶은지 헷갈렸던 그녀가 로버트에게 자신의 진심을 고백한다. 그때, 아그네스는 영화 초반에 그녀를 답답하게 가두고 있던 프레임에서 벗어나 넓게 탁 트인, 외롭지만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로운 호수 한가운데 서서 진짜 '아그네스 마타'인 자신을 실감한다.
가야 할 곳이 있을 때는
갈 곳이 없는 것만 같았는데
가야 할 곳이 없으니
가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그리고 아그네스는 퍼즐을 처음 시작할 때 그녀가 손으로 찍어뒀던 몬트리올로 여행을 떠난다. 몬트리올로 시작하여 몬트리올로 끝을 맺는다. 가족을 떠나, 그리고 어쩌면 행복할지도 모를 새로운 사랑을 포기하고 그녀만의 마지막 퍼즐 조각을 맞추고 그녀의 길을 나아간다.
마음속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아그네스가 새로운 퍼즐을 사러 기차를 타려고 서 있는데 주변 사람들이 모두 스마트폰에 얼굴을 묻고 있는 장면이었다. 21세기에 들어와 많은 사람들은 방대한 정보들을 빠르게 얻는 것을 좋아하고, 그것에 익숙해져 있다. 물론 이러한 디지털 시대가 편리하기는 하지만 정작 '사람'과 함께 교류하는 인간적인 면모는 점점 사라지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기계가 모든 걸 해결해주고, 멀리 있는 사람과 연락하게 해주는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서 조금은 아날로그적이지만 직접 머리를 써서 내 손으로 퍼즐을 맞추고, 또 영화에서 처럼 연습을 하기 위해 멀리 있는 사람을 직접 만나러 가야 하는 모습에서 모든 게 빠르게 훅훅 지나가는 요즘 세상에서 잘 볼 수 없는 편안한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남들은 유치하다, 시간 낭비라고들 하는 퍼즐을 그들이 사랑했던 이유는 매일이 혼란스러운 나날들 속에서 무작위의 퍼즐 조각들을 맞추는 행위가 스스로에게 힘이 되기 때문이다. 남편이 그토록 우물 안 개구리로 살 수밖에 없었던 상처, 화산 폭발이니 홍수니 하는 우리의 맘을 공허하게 하는 현실들을 똑바로 마주한다는 것. 당연히 아픈 일이다. 그러나 더 이상 그 현실을 외면하지 말자. '이게 맞을까, 저게 맞을까.' 고민하게 하는 나를 불안하게 하는 모든 선택들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아름답게 완성된 퍼즐이 주는 위로처럼, 잘 맞지 않을 것 같은 모든 일들은 다 맞아 들어가고, 보이지 않던 한 조각도 결국엔 찾아낼 것이다. 그러니 이제 똑같은 일상 속에 나를 가둬두지 말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 새로움에 도전하는 일에 망설이지 말자.
'나'를 믿으니까.
평점: ★★★★★ 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