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세상이 변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하는 영화
사람이 사람을 혐오할 수 있는가.
몇 년 전에 오사카 시장이 일본의 한 극우주의자와 일대일 토론을 벌이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한인 차별 시위를 그만두라는 시장과 민주주의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라는 사쿠라이 마코토. 그 당시에는 그들의 분쟁이나 댓글로 사쿠라이를 욕하는 사람들의 분노가 마음에 잘 와 닿지 않았다. 표현의 자유라고 하는 그의 입장도 납득이 가니까. 그런 두 입장을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언젠가는 해결되겠지 생각하며 멀리서 지켜보는 일뿐이었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 그들의 이야기가 내 맘에 들리기 시작했다.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처럼 느껴지는 건 그만큼 우리 한국 사회에서도 인간에 대한 혐오가 만연해졌다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영화의 배경이 되는 2013년 일본 도쿄에서는 혐한 시위를 펼쳤던 재특회(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와 '함께 살아요'라는 팻말을 들고 대항 시위를 펼치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이 바로 카운터스다. 사실 카운터스는 하나의 단체가 아니라 혐오에 반대하는 여러 개인들이 함께하는 군중에 가깝다. 그들은 다양한 플랫폼으로 세상의 혐오에 대항한다. 음악을 하거나, 사진을 전시하는 사람들이 있고, 비폭력과 함께 훈계를 담당하는 사람들도 있다. 변호사는 법적인 영역에서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누군가는 강연, 또 누군가는 책을 쓰며 사람들에게 혐오는 그만두어야 한다고 호소한다. 그렇게 사람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같은 목소리를 낸다. 그야말로 현실판 어벤져스다. 그중에서도 영화는 시위 현장의 최전선에 서서 무력으로 재특회를 제압하는 '오토코구미' 집단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재일 코리안, 성소수자, 난민, 여성.
사회적으로 소수에 놓여있는 자들은 차별을 하며 인간 취급하지 않는 다수의 상대를 두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대적으로 두려움과 위압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런 카운터스에게 전직 야쿠자인 다카하시를 비롯한 '오토코구미'가 앞에 있다는 것은 그 존재만으로도 든든하고 힘이 된다. 어쩌면 다카하시가 쓰는 물리적인 폭력에 대해서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방법을 권유하는 것도 아니고 최선이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카운터스 사람들도 다카하시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과격한 태도에 당황하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그 사람을 통해서 말하고 싶은 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이다. 다른 이들에게 할 수 있다는 용기를 몸소 보여주는 정신이다. 당연히 경찰에 맞서다가 여러 번 수감생활을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다카하시는 후회하지 않는다. 자신이 수감되는 희생을 자처하며 오히려 매스컴에 카운터스의 이름이 오르고, 그들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며 더 나아가 일본 최초로 '혐오표현금지법'이 제정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카운터스>를 제작한 이일하 감독은 세상에는 세 가지의 폭력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 국가의 폭력.
둘, 사람이 물리적으로 가하는 폭력.
셋, 사람의 말로 사람의 마음에 비수를 꽂는 폭력.
표현의 자유를 논하기 이전에,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사람에게 내뱉는 혐오 발언 또한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또 하나의 폭력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이 곳이 아니면 안 되는 사람들에게 무심코 내뱉는 말들이 주는 상처는 그 사람들이 되어보지 않으면 절대로 모른다.
더 나아가, <카운터스>가 보여준 혐오의 역사는 한국의 상황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 이주노동자와 난민에 대한 모욕적인 발언, 여성 혐오, 남성 혐오 등을 아무렇지 않게 일삼았던 우리나라도 재특회가 보여준 혐오와 마냥 다르지 않다. 이곳에서는 혐오의 피해자가 되면서도 저곳에서는 또 다른 혐오의 가해자가 되는 오늘날의 현실이 참담하다. 인종, 성별, 성소수자, 장애, 빈부의 문제를 떠나 사람을 '사람'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은 올 수 있을까.
사람은 사람을 혐오할 수 있는가.
정의란 건 복잡한 게 아니다. 이 단순하면서도 거창하지 않은 생각 자체가 어쩌면 우리를 행동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이 땅을 밟고 살아가는 사람은 모두 다르다. 다른 게 정상이다. 그래서 더불어 산다는 게 조금은 불편할 수 있지만 서로가 배려하고, 문제점이 있다면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타협점을 찾아보는 게 어떠한가. 몇 년 전에 봤다고 했던 그 토론 영상에서 오사카 시장은 사쿠라이에게 말한다.
'자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착각하는 거 아니야?'
적어도 이 카운터스를 보면 세상을 바꿀 수 있으리라는 착각을 하고 싶어 진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은 사쿠라이에게도 있고, 다카하시에게도 있으며 우리의 손에도 있다. 중요한 건 우리 손에 쥐어진 힘으로 어떤 세상을 꿈꾸냐는 것이다. 몽상가라 해도 좋다. 하지만 지금이 바로 그런 시대를 꿈꿔야 할 때인 것 같다. 혐오 문제는 이제 나의 이야기이고, 당신의 이야기다.
우리에겐 카운터스가 필요하다. 세상이 이기심에 들끓어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을 때 다른 길도 있음을 알려줄 수 있는 이들이 필요하다. 혐오 시위대를 가로지르며 그들의 존재감을 세상에 알렸던 '그 날'의 카운터스처럼.
평점: ★★★★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