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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SIA Aug 24. 2018

<어거스트:가족의 초상>

세상에서 가장 아픈 건 가족이라는 것을 보여준 영화

가족이란 그저 세포를 나눈 사이야.
출처: 영화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한 가족이 초상(初喪)을 치르게 되고, 이를 통해 어쩌면 이 시대 모든 가족의 초상(肖像)을 그려내고 있는 영화다. 화려한 배우들의 캐스팅도 놀랍지만 각자의 사연에 빠져있는 각 인물들의 상황을 매우 리얼하게 표현해내는 연기력에는 더더욱 감탄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적지 않은 가족 구성원들이 장례를 위해 한 집으로 하나둘씩 찾아오면서 그들의 관계를 정리하면 보는 것도 이 영화의 재미있는 관람 포인트다.


모든 가족이 가장 더운 8월의 어느 날, 오세이지 카운티에 모인다. 이 날의 날씨는 서로가 서로에게 품고 있는 서운함과 원망의 감정들이 가지고 있는 열기를 대변하는 느낌을 주기도 하고, 앞으로 펼쳐질 이들의 난장판을 기대하게 하는 전조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또, 어떤 면에서는 이토록 더운 날씨는 초반부 바바라가 집에 도착하고 몇 분도 채 안되어서 버럭 화를 내기 시작하는 데에 한 몫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일반적이라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싶으면서도 짜증 나게 더운 날씨가 이들의 급격한 분위기 전환의 합리화로 작용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인생은 매우 길다.
출처: 영화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

이혼 위기의 바바라와 그런 언니의 어린 딸에게 접근하는 카렌의 나이 많은 약혼남, 사촌과 사랑에 빠진 아이비. 그리고 구강암 말기에, 약물 중독에 의존하고 있는 엄마까지. 겉보기엔 평범한 가족처럼 보여도 가족 개개인의 사연은 너무나도 다양하다. 그러한 이들이 한 식탁에 앉아서 식사를 한다. 서로를 헐뜯고 건조하게, 가끔은 격렬하게 독설을 날리는 그들의 모습과 중간에 코미디적인 요소까지 더해져 이 막장 드라마가 마냥 지루하지만은 않다. 나름의 리듬과 변주가 잘 어우러진 한 편의 교향곡과 같다. 특히 웃겼던 장면은 서로가 막 싸우다가 갑자기 찰리가 고통을 호소하는데, 이전에 바바라의 딸이 '고기를 먹으면 그 동물의 두려움까지 같이 먹는 거예요.'라고 했던 말을 인용하면서 '두려움을 먹었어...'라며 거짓 연기를 하는 모습이었다.


그저 웃긴 장면이면서도 그런 분위기의 전환이 바로 우리 가족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 끝까지 갈 것처럼 격렬하게 싸우다가도 언제 그랬나 싶을 정도로 웃고 떠드는 모습처럼 말이다. 


출처: 영화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

이 식탁에서의 대화 씬은 가족이란 공동체에 속하면서도 그만큼이나 각자만 생각하는 그들의 개성 있는 캐릭터들을 잘 구현해낸다. 특히나 소름 끼칠 정도로 모든 걸 알고 있는 우리 엄마를 떠올리게 할 만큼 이 영화 속 엄마의 말말말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태연하게 앉아서 딸들의 남자를 이리저리 공격하면서도 곧 그런 딸들에게도 쌓였던 감정들을 쏟아낸다. 특히나 기대가 컸던 첫째 딸이 가족을 떠나버린 것에 대한 서운함도 크다.


더 나아가 너희들의 아버지, 나의 남편을 욕하는 건 참을 수 없다. 생전에 재산을 가지고 계산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몇십 년을 더 오랜 세월을 함께 보낸, 그 사람에 대한 몰이해적 시선은 두고 볼 수 없다.

정처 없이 아무것도 없는 들판을 향해 뛰어가던 엄마의 모습처럼.

인생은 너무 길다는 말로 시작하는 아버지의 말처럼. 

무얼 향해 쫒아가는 지도 잊어버린 이 인생이 막막한 그 심정을 말은 안 해도 두 사람은 가장 잘 이해하지 않았을까. 

그저 강인해 보였던 나의 어머니, 아버지도 인생이란 처음이니까.


출처: 영화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한밤중에 야외에서 엄마와 딸들이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엄마는 어릴 적에 좋아하는 남자아이에게 잘 보이려 멋있는 부츠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달라고 당신의 엄마에게 졸랐더랬다. 사주겠다고 약속했던 엄마의 말에 그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엄마는 충격적이게도 실망스러웠던 선물을 받았고, 그 시절을 회상하며 엄마는 눈물을 흘린다. 


화를 부르다가도 웃음이 새어 나오고,

짜증 날 정도로 보기 싫다가도 이내 눈물이 흐르는 이 모순이, 

이 아이러니가 바로 모든 가족에게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고질적인 딜레마가 아닌가.

그렇기에 돌이켜 보면 우리의 기억 속, 가족이란 나에게 한 없이 세상에서 가장 큰 기쁨을 주는 존재이면서도 가장 큰 아픔을 남기고 떠나는 존재이기도 하다.


엄마는 늘 오세이지 카운티에서 커튼을 치고 어둠 속에서 가족을 생각하고 기다렸다. 한 순간 모였다가 다시 모두가 떠났다. 부모는 이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존재다. 아버지가 비록 먼저 세상을 떠났지만 초반부에 어린 가정부를 집에 들인 것은 혼자가 될 아내의 외로움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기에 그녀를 위한 마지막 배려이자 선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떠나는 자보다 떠나보내는 자의 외로움이 더 크다는 것.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다시금 떠올랐다. 사람이 머물렀던 그 빈자리의 공허함을 혼자서 모두 떠안아야 하니까. 

잘 들어. 넌 나 죽고 나면 죽어.
출처: 영화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

장례를 치르고 난 뒤 바바라는 딸에게 한 말이다. 그녀의 말이 가족이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를 한 번 더 생각해보게 한다. 가족은 내 생애를 통틀어 끊임없이 상처를 주는 존재이면서도 그 가족의 존재로 하여금 나를 버티게 한다.


나를 너무나도 아프게 하면서도 또 어느 순간 가슴 아프게 한다. 


미워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사랑하지만 사랑할 수 없는


그 이름, 가족.


평점: ★★☆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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