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하늘을 보게 하는 영화
위로 올라와요. 위에는 안전하니까.
하나, 어느 날, 헝가리로 국경을 넘다 총상을 입은 시리안 소년 아리안은 신비한 초능력이 생긴다. 바로 중력을 거슬러 공중부양을 할 수 있는 능력. 이를 본 부패한 의사 스턴은 그를 수용소에서 빼내고, 그의 능력을 이용해 돈을 벌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리안은 국경에서 헤어진 아버지를 찾기 위해 스턴의 도움을 받게 된다. 함께 있지만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아리안과 스턴. 과연 두 사람이 걸어갈 여정의 끝에는 무엇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까.
둘, SF 판타지 아트버스터라는 명칭에 걸맞게 영화 속에는 소름 돋을 만큼 황홀한 장면들을 엿볼 수 있다. 아리안의 초능력인 공중부양은 그저 캐릭터를 공중에 띄우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인물의 움직임에 따라 카메라가 자유롭게 움직이며 촬영을 하여 지금껏 다른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압도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영화 후반부에 이어지는 카체이싱 장면은 영화를 보고 있지만 직접 운전을 하며 따라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의 박진감 넘치는 연출이 관객의 몰입도를 극대화시킨다. 핸드헬드로 이루어진 카메라 워크와 현실감 넘치는 롱테이크 신 역시 <주피터스 문>을 계속 떠올리게 하는 매력이다.
셋,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조금은 불친절한 영화라는 점이다. 대충의 줄거리를 이해하고 가지 않으면 수 없이 사람들이 복잡하게 엮이는 상황들 속에서 다소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난민인 아리안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공감대 형성을 위해 화려한 연출이 한몫을 한 반면, 흐름을 놓쳐버린 관객에게는 당혹감을 안겨줄 수밖에 없었다.
넷, <주피터스 문>은 크게 난민 문제라는 소재를 신비한 능력을 가진 소년의 이야기에 접목하여 이에 대한 또 다른 '시선'을 제안하는 영화다. 실제 2011년 3월에 시리아 내전이 발발했고, 국민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500만 명 이상이 유럽 각지에서 난민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특히 유럽의 헝가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난민 문제로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제주도에서 난민 문제로 여론이 나뉘고 있는 만큼 이는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다섯, 지구의 위성은 달 하나뿐이다. 그러나 '주피터스 문(Jupiter's Moon)', 즉 목성의 위성은 총 67개다. 갈릴레이는 그 목성의 위성 중 얼음층 밑에 바다가 있다고 추정되는 위성을 발견한다. 그 위성의 이름은 바로 '유로파'. 난민 문제와 관련하여 현재까지 이슈가 되고 있는 유럽의 상황과 맞물리는 그 이름, 유로파. 수평만 바라보던 시선을 저 위로 들어 보일 때, 우리는 또 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사람들에게 하늘을 바라보길 권유한다. 문제에 대한 시선, 그리고 시선에 대한 확장. 그것이 해답을 내기에 앞서 우리가 시도해보아야 할 태도가 아닌가.
여섯, 아리안은 난민이라는 신분으로 형사에게 쫓기며 오갈 데 없는 상황에서 중력을 거스르는 초월적인 힘을 가진다. 밟을 수 있는 땅이라곤 아무 데도 없었던 그에게 주어진 신과 같은 능력은 그가 밟는 곳이 곧 땅이 되고, 그를 따라 움직이는 화면처럼 세상의 중심은 비로소 그가 된다. 간절히 살아갈 곳을 바라던 이에게 주어진 이 신비한 능력은 단지 초능력을 넘어서서 자신만의 세상을 일구어내고야 만 마는 고통의 끝에 얻은 '염원'이었다.
일곱, 과연 그는 천사인가, 악마인가. 아리안이 돈을 벌기 위해 사람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었을 때, 사람들은 정반대의 반응을 내보인다. 누군가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다 병이 저절로 낫게 되고, 누군가는 자살을 하기도 한다. 신에게 감사하지 말고 자신에게 감사하라던 스탠은 아리안을 보며 스스로의 가치관이 바뀌는 순간을 만나기도 한다. 단지 살고자 했던 아리안에 대해 세상은 그를 희망일까, 재앙일까 판단한다. 이는 난민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선들을 상징화한다. 사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아리안'일뿐이다.
여덟, 공중부양을 하며 위기의 순간을 빠져나오는 아리안. 그의 아래로 펼쳐진 광경은 생각보다 작아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멀리서 반짝이는 별처럼 말이다. 그렇게 발 내딛을 곳 하나 없었던 아리안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서성인다. 생명은 부지했지만 어쩐지 아리안의 상황이 마냥 희망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특별한 능력을 갖기 전이나 후에나 그는 여전히 정처 없이 헤매는 존재인 건 변함없으니까.
아홉, 난민 문제는 여전히 타오르는 불길처럼 식지 않는다. 그 속에서 이 영화는 현실감 있는 촬영기법과 함께 오늘날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끌고 왔다. 다만, 그 현실에 공중부양 능력 하나만을 부가하여 난민의 아픔을 세상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하늘 위로 올려다 주었을 뿐이다. 스턴은 말한다.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수평으로만 보기 시작했다고. 한 때는 하늘을 보며 명예와 이상을 바라보곤 했었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때론 작은 것 하나가 상황을 다르게 만들기도 한다. <주피터스 문>은 온전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영화는 아니다. 다만 기발한 상상력으로 우리의 시선을 돌린다. 수평만 바라보던 사람들이 아리안으로 하여금 위로 올려다보듯, <주피터스 문>이라는 영화도 우리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 준다. 영화의 마지막은 많은 사람들이 드디어 아리안이라는 존재를 알게 된다는 것에서 끝이 난다. 본격적인 움직임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결국 어떠한 방향으로 움직일지는 영화가 끝난 뒤에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손에 달려있다.
평점: ★★★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