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그런 영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REESIA Nov 24. 2018

<원 네이션 원 킹>

담담하게 풀어내는 역사의 순간을 통해 오늘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영화

난 혼란이 두렵지 않소.
혼란은 위대함을 가져다줄 것이니까.
출처: 영화 <원 네이션 원 킹>

프랑스혁명에 관한 역사적 연대기를 다루는 <원 네이션 원 킹>은 극한으로 치닫는 감정의 과잉 없이, 격동의 순간들을 묵묵하게 읊어낸다. 1789년 7월 14일. 그 날은 바스티유 감옥이 함락된 날이었다. 감옥이 무너짐과 함께 그 벽이 가리고 있던 눈부신 햇빛이 민중을 향해 쏟아져내린다. 프랑수아즈는 믿기지 않는 듯 햇살을 두 손에 담아본다.


'빵과 자유'를 외치는 시민들은 왕이 당장 베르사유 궁전에서 나와 파리에 올 것을 요구한다. 한 때, 태양왕(루이 14세)이라 불리울 정도의 전성기 온통 화려한 빛으로 들어차 있던 왕들의 궁전은 루이 16세를 뒤로 그 문을 하나씩 닫으며 어둠을 맞이한다.


빛과 어둠이 비로소 교차하던 그 시간.

바로 이 나라의 운명의 기로에 서 있던 '그들의 시간들'이었다.

출처: 영화 <원 네이션 원 킹>

권리장전 제정과 라파예트가 중심이 된 계엄령, 그리고 공화정과 왕정을 두고 긴 밤을 새우며 열띤 토론을 펼쳤던 의회의 모습과 루이 16세의 처형의 순간까지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와 같았던 영화였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프랑수아즈를 비롯해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웠던 이들의 강인함을 주목하고 있다. 그들은 여성도 시민이 될 수 있다며 당당하게 의견을 제시하고, 어떤 때는 남자들보다 먼저 앞장서서 싸우기도 한다. 그들은 의회에 쳐들어가 빵과 자유를 달라, '우리 뱃속에 돌이 들어있다'며 호소하기도 한다. 의회장에서 울분을 토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울릴 때, 영화는 어떠한 배경음악도, 특별한 연출도 부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 목소리가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건 그들이 하는 말이야말로 간절하고, 진정성 있으며 진짜 현실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일 테다.

출처: 영화 <원 네이션 원 킹>

바질이라는 순진한 청년도 등장한다. 세상을 잘 모르고, 하루 살기 바빠 나쁜 짓도 일삼던 그가 우연히 이 격변의 시기에 왕의 손길을 받는다. 분명 세상이 변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왕이라는 자를 같은 눈높이로 볼 수 있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을 테니. 그렇게 바질은 우연히 프랑수아즈라는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일도 배우고, 혁명에 참여하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세상에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곧바로 아는 사람은 없다. 어쩌면 바질처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잘 모르는 사람이 태반일 수 있다. 하지만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를 알고, 나의 권리와 행복을 위해 용기 내어 싸울 수 있게 하는 힘은 이 나라를 함께 살아가는 이들과의 소통이 있을 때에 생겨난다. 매일 밤 한 테이블에 모여 울고, 웃고, 분노했던 순간과 날이 꼬박 새도록 한 사람의 목소리에도 경청하는 의회에서의 시간들이 있었기에 내가 우리가 되고, 한 목소리를 내는 원동력이 생기는 것이다.

출처: 영화 <원 네이션 원 킹>

피에르 쉘레르 감독은 긴 역사의 기록을 풀어내는 중간에 수차례 감각적인 이미지들을 보여주며 여러 상징적인 요소들을 강조해 표현한다. 그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마을에서 유리공이 일하는 모습이었다. 영화 후반부 즈음에 다다르면 의회는 왕당파와 공화파로 나뉘어 논쟁을 펼친다. 막상 혁명을 시작하기는 했지만 공화정을 선뜻 받아들이기엔 분명 어려움이 있다. 이 시기의 모습은 유리공이 뜨거운 불에서 달구는 유리의 이미지와 겹쳐진다. 유리란 매우 약하고 깨지기 쉬운 물체다. 하지만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그 뜨거움을 인내할 때에 유리는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다. 유리처럼 다루기 조심스러운 게 통치이고, 나라의 운명이다. 하지만 깨질까 두려워서 망설인다면 영영 그 나라는 불안하게 흔들리고 만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온 세상을 뒤엎을 만큼의 뜨거운 불이 있어야만 한다.


왕정과 공화정 문제와 함께 논의되었던 것은 루이 16세의 처형 문제였다. 이때, 영화는 모든 의원들이 한 명씩 나와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장면과 함께 바질이 유리공예법을 전수받는 모습을 교차하며 보여준다. 공예를 할 때와 마찬가지로 나라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는 뜨거운 불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새롭게 모양을 바꾸기 위해서는 급하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정교하게 만들어져야만 한다. 긴 시간을 들여서, 다소 지루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의원들과 민중들이 이야기하는 장면을 만든 것에 비해 영화는 루이 16세가 처형되는 결정적인 순간은 어떤 격정적인 감정의 동요도 일어나지 않을 만큼 허무하게 끝내버리고 만다. 이렇게 극명하게 드러나는 두 시퀀스의 스피드의 차이는 우리가 무엇에 집중해야 할지를 말한다. 역사를 뒤바꾸는 가장 중요한 순간은 단순히 죄를 벌하고, 책임을 묻는 것에 국한되지 않아야 한다. 보다 나은 나라를 위하여 함께 고민하고, 때론 엇갈린 입장에 부딪히기도 하고, 또 신중하고 긴 시간을 들여 최선의 합의점을 찾아내었을 때 우리가 기다리던 바로 그 순간이 오는 것이다.


프랑스혁명, 그리고 열심히 싸웠던 민중의 이야기를 실감 나게 다룬 <원 네이션 원 킹>을 보면 자연스레 우리나라의 역사가 떠오른다. 수차례의 혁명과 비단 2년 전에 있었던 촛불 혁명까지.

우리는 지금 어떤 길을 걷고 있는가.

우리는 이 아픈 운명을 바꿀 만큼 충분히 뜨거웠던가.


보다 분명하게 우리 손에 쥐어진 건,

바로 지금이 이 나라의 앞날을 공고히 만들기 위해 마주해야 할 긴 시간이라는 사실이다.


평점: ★★★☆ 3.5




매거진의 이전글 <영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