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의해 실패하고 깨질 준비
오겡끼데스까? お元気ですか
매년 새해로 맞이하는 숫자들은 늘 나를 두고 앞서가는 기분이 들어.
너에게 선물로 보낸 “마이북” 일기장, 잘 쓰고 있니? 날짜가 이미 적혀져 있어서 그 날짜에 쓰지 않으면 그냥 비어버리는데, 내 건 이미 빈 페이지가 많아져버렸어 ^^ 일기를 꾸준히 쓴다는 건 뭘까? 예전에는 빽빽하게 채워진 일기장 만이 의미있는 거 같아서 듬성듬성 채워진 내 일기장이 부끄럽고 제대로 살지 않았다는 의구심도 들었거든? 근데 이제는 그냥 듬성듬성 쓰면 된다라는 생각하려고. 그냥 비운채로 두거나 가끔 복기하고 싶을 때에지난 일을 떠올리면서 써내려가보기도 할거야.
지나간 일로 지금의 나를 괴롭히지 않아야지.
그나저나 이사 하느라 고생이 많았어! 나도 비슷한 문제를 겪어봐서 얼마나 고생했을지 눈에 선하네. 생활공간이 어수선한데 혼자여서 그걸 감당해버렸다니.. 힘들 때 혼자 힘들면 더 참게되는 건 왜일까? 내가 아끼는 존재에게는 절대 안 하고 싶은 것들이 왜 나에게는 괜찮을까? 나도 혼자 있을 때 그런 생각을 많이 해. 나만 먹는 밥은 같이 먹을 밥보다 대충하게 되고 말야. 그게 나 자신을 덜 아껴서일까?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책임지는 일에 지쳐서가 아닐까 생각했어. 그걸 내려놓을 수 있을 때 내려놓는 거지. 타인에 대한 책임감은 조금 무거울 수 있는데, 나한테는 조금 느슨할 수 있잖아. 그게 편한 선택이니까. 그래도 매번 편한 선택으로 나를 등한시 하면 안되겠지. 나의 희생이 당연한 게 되지 않도록 말야.
요즘 북클럽에 가입해서 책을 읽고 인증을 하는데, 가장 최근에 완독한 책은 <악마와 함께 춤을> (원제: <Dancing with the Devil>) 부정적인 감정이 왜 우리에게 필요한가 라는 주제로 쓰인 철학책이야.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 가지고 있던 죄책감으로 부터 해방시켜주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어. 분노하고, 시기하고, 앙심을 품고, 경멸하는 감정은 내가 인간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고 이야기 해주거든. 흔히들 누군가를 “감정적이다” 라고 할 때 암시하는 부정적인 뉘앙스는 수양이 부족한 사람이 감정에 휘둘려 미성숙한 판단이나 행동을 하는 것을 가르키곤 하는데 이 책에서 작가 조지 오웰이 간디에 관해 쓴 구절을 저자가 인용한 부분이 있어.
하지만 오웰은 묻는다. 왜 인간 삶의 최고 형태가 성인이라고 가정해야 하는가? 성인은 사실 그렇게 감탄할 만한 게 아닐 수도 있지 않은가? 오웰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성의 본질은 완벽을 추구하지 않고, 때로는 충성을 위해 기꺼이 죄를 지으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까지 고행을 강요하지 않고, 개인의 사랑을 다른 개인에게 종속시키는 행위의 필연적인 대가로, 결국 삶에 의해 패배하고 깨질 준비를 하는 것이다.”
- 크리스타 K. 토마슨, <악마와 함께 춤을: 시기, 질투, 분노는 어떻게 삶의 거름이 되는가> George Orwell, “Reflections on Gandhi,” in A Collection of Essays (New York: Doubleday Press, 1954), p. 182
“삶에 의해 패배하고 깨질 준비” 라는 부분, 정말 강렬하지 않아?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내가 그토록 조금이라도 완벽해지고 싶던 욕구가 “삶에 의해 패배하고 깨질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서가 아니었나 싶었어. 우리 인간은 경험의 동물인데, 감정에 휘둘리는 것 또한 그런 감정이 든 경험을 되짚어보며 감정 너머에 내가 정말 바라는 무언가를 깨닫게 해줄 수 있는 계기일 수 있잖아. 그런데 ‘아 나는 왜 이렇게 감정적일까’ 하고는 단순히 부족한 나를 탓하며 “덜 감정적인 나”가 되기위해 애써왔어.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지.
우리는 내면의 악마를 물리칠 때 자신에게 만족한다. 그로 인해 스스로가 강하다는 느낌과 승리감을 얻기 때문에, 내면에서 계속해서 더 많은 전투를 벌이게 된다. 요컨대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최악의 적이 되는 것이다.
- 크리스타 K. 토마슨《악마와 함께 춤을: 시기, 질투, 분노는 어떻게 삶의 거름이 되는가》
내가 “부족한 나”를 탓해온 이유는 그게 쉬운 선택이어여 같아. 속사정을 잘 모르는 남을 탓하는 것보다 무엇이 부족하고 못났는지 속속들이 알고있는 나 자신을 탓하는 게 쉬우니까. 그런 쉬운 선택들이 때로는 너가 버리지 못한 티셔츠들 처럼 내 안 어딘가에 쌓이고 있진 않을까 생각했어.
편하게 아무 생각없이 입을 수 있는 티셔츠도 물론 몇 벌 필요하겠지만 그런 옷들만 쌓아두면 그런 옷만 입는 환경에 나를 가둬버리겠지. 패배하고 깨지지 않는 곳에만 머무르는 내가 되버릴 지도 몰라. 그런 곳에서 나 스스로 걸어나오다보면 그게 "성장" 아닐까?
자아는 뚱뚱하고 집요한 존재가 아니다. 연약하고 불안정한 존재다. 자아를 사랑한다는 건 항상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존재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존재를 사랑하는 법은 알기 어렵다. 우리가 직면한 진정한 도전은 그런 존재를 솔직하게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변명하지도 옹호하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우리는 불완전하고 위태로운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자기애야말로 나쁜 감정과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한 열쇠다.
- 크리스타 K. 토마슨《악마와 함께 춤을: 시기, 질투, 분노는 어떻게 삶의 거름이 되는가》
일상에서 간소하고 수수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는다는 와비사비(侘び寂び)의 의미처럼 완벽하고 최고의 수준으로 꾸며지고 갖춰진 내가 아니라, 불완전하고 투박한 나. 인간이기 때문에 화를 내고 부러워하고 되갚아주고 싶고 싫어하는 감정을 느끼는 나. 그런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하루 아침에 되지 않겠지만, 습관적으로 이런 감정자체를 부정하거나 회피하고 싶을 때에 숨지않는 날들이 조금씩 쌓이길.
미완성에서 완성이라는 목적지로 내달리는 사람이 아니라 완성되지 않아서 살아갈 의미가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도쿄에서,
- 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