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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Sunny Day: 네 번째 편지

불완전하고 투박한 아름다움

by Dear Yoor Day


안녕! 잘지냈어? 작년 영상편지를 마지막으로 벌써 2025년이 시작하고도 절기상 입춘이 되었어.

일본에서의 생활은 많이 적응해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매년 새해가 올 때마다 아무것도 채워져 있지 않은 백지에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곤해. 아직 여백이 많은 지난해 다이어리보다는 새로운 백지로 채워져 있는 다이어리를 사다보면 올해는 이 빈 종이를 꽉꽉 채워나갈 수 있을 것 같은 뿌듯함이 밀려오거든.

그런 내마음을 아는지 작년에 머나먼 일본에서 반갑게 날라온 선물, 다이어리로 올 한해를 시작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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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질감이 가벼워서 어디든 들고 다닐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좋아.

미루지않고 2025년을 가득 나의 이야기로 채워볼께. 너무너무 고마워 :)


올해는 반강제적 반자의적으로 나의 주거지를 옮기며 비우고 채울 수 있는 기회가 생겼어. 작년 말부터 누수문제로 인해 거실 대부분의 바닥을 다시 깔아야 했어서, 생활하는 곳의 반 정도는 공사 중인 것과 같은 환경에서 지냈거든.


이사 하기 전 어수선한 공사장과 같은 나의 삶의 공간에서 몇 주의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내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건가.'하는 질문이 들면서 머리를 쾅하고 맞은 기분이 들었어. 그 시간동안은 나 홀로 집에 있었는데, 만약 우리 강아지가 나와 함께 생활하고 있었더라면 이라는 가정을 하니까, 나는 당장 아파트 관리실로 뛰어갔을꺼야. 근데 나 홀로는 왜 아무렇치 않은 척하며 괜찮은 척 나의 공간을 그렇게 쓰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러면서 그 질문으로로 여전히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은채 안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내가 보이기 시작했어.

나는 지금의 내가 정말 괜찮은 걸까? 반복되는 고민들을 지니고 살면서, 결이 비슷한 불안 속에 나를 우두커니 세워 두고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가는 나의 하루들은 괜찮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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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질문들 속에 이사준비를 시작했어.

나는 나름 많은 물건을 소유하며 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지만서도, 막상 이사준비를 시작하면 내게 쓸모없는 물건들은 어디서 계속 나오는지.


옷 정리를 하면서 내게 제일 어려운 건 뭔지알아?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버릴지 말지에 대해 결정하는 것. 이건 충분히 집에서 더 입을 수 있겠는데? 후드티 안에 입으면 되지않을까? 라는 미련을 버리는 것이 왜이리 쉽지가 않네 ㅋㅋ

그러다 보니 외출 시 입을 수 있는 것보다 입지 못하는 하얀 티셔츠가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어.


이번엔 정말 눈 딱감고 필요한 몇 장만 남기고 처분했어.

아. 후련하다 후련해.

늘어난 티셔츠를 처분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인데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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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세를 내고 쟁여두는 물건건들을 정리하고 나니 잃어버린 공간을 되찾은 느낌이라 기분은 좋다. 필요하지 않은 것을 버리는 과정을 하다보니 나에게 남은 것들은 나에게 필요한 것, 중요한 것들만 남아있었어. 오히려 간단해지니 지금 나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더 선명해진다.

채우기 위해서 버려야할 것들을 버리고 나니 마음이 가볍고 좋아. 약간의 자유로운 느낌이라고나 할까.



"일본어에 '와비사비'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불완전하고 투박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일본 특유의 미학을 말한다. 이 개념은 세상의 잣대와는 무관하게 자신의 선택대로 살아가는 개인의 경험적이고 실증적인 미학적 가치에 근거하고 있다. 일상생활의 사소하고 세세한 부분들을 보다 잘 음미하고, 이로써 세상이 보잘것없다고 말하는 불완전하고 불충분한 것에서 숨겨진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다."

- 도미니크 로로 《심플하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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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나는, 나의 불완전함을 인지하기 시작한 건, 이미 오래전 부터 스스로 알고 있었던 것 같아. 그 불완전한 나를 인정하기까지의 시간이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온 것 뿐. 시시각각 느껴지는 나의 행동들과 생각들을 다른 관점의 단어로 바꾸어 생각의 전환을 하려 노력하니 또 순간 순간 느끼는 불안한 감정들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게 되기도 하더라. 신기하게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들을 받아들이게 됨으로써 아이러니하게도 변화할 수 있을 것 같아. 어쩌면 그 누구보다 나 스스로를 이해해주고 싶었던 마음이, 스스로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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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하고 불충분하지만 그 안에 숨겨진 나만의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에 다시 용기를 내어 한발자국 한발자국. 걸어보려고. 오늘도 걷자.

이제는 버리고 싶은 것들만 생각하기 보단 어떤 것을 채워갈 것인지, 내가 애정하는 나의 모습들을 찾아 다시 채워 가보려고. 소확행을 확실히 느끼는 것도 나의 장점 중 하나이긴 하지. 오늘 하루를 기록하려고 다이어리를 폈는데 문득 너의 선물이 다시금 감사하다. 일기 쓸 때 꼭 감사일기는 잊지않고 써야겠어. 올한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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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얼마 전 읽은 책에서 좋아하는 글 공유하며 이 편지를 마칠께.



"얘, 너 늙으면 젤루 억울한 게 뭔지아냐? 나는 할머니를 동그랗게 쳐다봤다.

"주름? 아냐. 돈? 그거 좋지. 근데 그것도 아냐. 할미가 젤루 억울한건 나는 언제 한번 놀아보나 그것만 보고 살았는데, 이제 좀 놀아볼라치니 다 늙어버렸다. 야야, 나는 마지막에 웃는 놈이 좋은 인생인 줄 알았다.

근데 자주 웃는 놈이 좋은 인생이었어. 그러니 인생 너무 아끼고 살진 말어. 꽃놀이도 꼬박꼬박 댕기고. 이제 보니 웃음이란 것은 미루면 돈처럼 쌓이는 게 아니라 더 사라지더라."

(..) 어른들이란 자신을 가장 먼저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기 자신에게까지 선물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 태수 어른들의 행복은 조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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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아끼지 말고 비워내야하지 말아야할 것. 많이 웃자. 올한해도 잘부탁해 친구!

포틀랜드에서,


https://youtu.be/_TCtLkwHhR8?si=JgYNPpT2foxjjH0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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