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체될 수 있을까?

불분명해서 불안하고, 불안해서 다행이다

by Dear Yoor Day

안녕, 나의 벗 :)


불과 저번 주에 나는 반팔을 입고 돌아다녔는데, 오늘 아침 후드티에 반바지를 입고 산책을 나갔더니 다리가 무척 시렸어.

날씨 이야기는 참 흔한 인사인데 흔해진 이유가 있는 것 같아. 후덥지근했던 여름의 공기가 점차 습기를 잃고 선선해질 때에, 열어둔 창문으로 제법 시원한 바람이 들어올 때에, 그러다 밤새 내린 비가 아침 공기를 한껏 식혀놓아서 후드잠바를 꺼내 입어야 할 때에 나를 통과한 시간을 자연스레 피부로 느끼게 되잖아. 너와 나의 안부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역시 그간 변해온 날씨였어. 지금쯤 텍사스에도 가을이 도착했을까?


미국은 오죽 하겠냐만은 일본도 주황색 호박과 하얀 천을 뒤집어쓴 고스트, 까만 마녀의 모자가 여기저기 장식되어 있어. 10월의 말이 다가오고 있고, 할로윈을 치르고 나면 어느 새 라디오에서 크리스마스 캐롤이 나오겠지. 지독한 여름을 지내고 나니 성큼 다가오고 있는 겨울이 참 반갑네. 여름보다는 가을-겨울에 입는 옷을 더 좋아하거든. 스웨터에 따뜻한 스웨이드 바지를 입고 갈색 가죽신발을 꺼내 신을거야. 좋아하는 체크무늬 쟈켓을 꺼내 입다가 더 서늘해지면 밝은 카멜색의 코트도 꺼내입어야지.


매주 영화를 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니, 나도 동참하고 싶다! 보고 싶은 영화가 참 많은데 <인사이드아웃 2>도 그 중 하나였어. “불안” 이라는 감정이 나온다니, 그냥 완전 내 얘기 일 것 같은데? ㅋㅋㅋ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서운함이 불안으로 이어진다니, 내 불안의 기저도 비슷할까? 요즘 나의 불안은 확답할 수 없는 이 질문에서 비롯되는 거 같아. “나는 대체될 수 있을까?”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근래에 가장 많이 생각하는 질문이기도 할 것 같아. AI의 발전 속도가 내가 뭔가를 학습하고 생산하는 속도하고는 비교할 수 없이 나를 앞질러가고있는 상황이니까. 나를 나라는 존재로서 지키기 위해 어떤 것을 해야할까 하고 고민하다가 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너무 외주화 할 때에 나를 조금씩 잃는 게 아닌가 싶었어.


“우리 사회는 더 편안한 삶을 추구하는 일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더 오래 있어도 허리가 편안한 의자, 안락한 자동차, 편안한 침대를 비롯해 그 밖의 수많은 문명의 이기들을 떠올려보라. 우리는 불편함을 모두 다 외주화해버렸다.”

정희원, <저속노화 마인드셋>


불안, 서운함, 당황, 따분함.. 부정적인 이런 감정들을 외면하기 위해 “외주화”가 시작된 건 아닐까 생각해. 아주 빠르고 편안하게 도파민을 보상받는 방식으로 휴대폰 속 소셜미디어에서 헤엄치는거지. 저런 감정에 대해 곱씹으며 내 안에서 소화하는 시간을 갖는 대신에 곧 바로 몰두할 수 있는 무언가를 외부에서 가져올 수 있게된 세상이니까. 그렇게 불편한 것들을 외부화 하고 나면 내 안에는 불편하지 않은 것만 남길 바라는데, 너도 이미 답을 알테지. 그럴 수록 나의 내부에서 해결되지 않은 감정들이 서로 엉키고 커져만 간다는 걸.


아마도 AI가 나를 대체할 수 없는 부분은 이런 건지도 몰라. 어떤 일에 동력을 얻고 계기가 되기도 하는 불안이나 따분함 같은 감정이 AI는 애초에 필요하지 않을테니까. 그런 감정소모 없이도 일을 처리할 수 있다는 점이 인간인 나와 겹치지 않는 부분이잖아. 만일 내가 분노를 느꼈다면, 그건 내가 화를 내서 감정을 풀어야지 누가 대신 화내주는 것으로 완전히 누그러질 순 없겠지.

<2024 젊은 작가상 수상집> 에는 대상작으로 김멜라 작가의 <이응이응>이라는 작품이 실려있어. 인간의 성욕이 ‘이응’이라는 섹스토이로 대체된 사회 속에서 반려견 보리차차와 함께살던 할머니를 떠나보낸 주인공의 시점으로 그려지는 이 소설은 성욕의 완전한 외주화 라는 주제 가운데서 인간이기 때문에 전혀 대체할 수 없는 감각과 감정에 대해 이야기 하는 단편소설이야. ‘이응’은 아주 섬세한 설정으로 쾌락을 개인화 할 수 있어서 연애와 결혼은 물론 성범죄율까지 영향을 미친 기계로 등장해. 모두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부끄러움 없이 쾌락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즐기고 있지만 주인공은 달라.


“…어떤 사람은 식욕보다 강하다고 했지만, 이응이야말로 그런 맹목적인 욕구를 희석해주는 중화제이자 충돌 방지 쿠션이었다. 다만 나는 정해진 단계에 따라 쾌감을 체험하고 싶지 않았다. 내 몸의 감각에 몰두하고 싶지도 않았다. 오히려 나는 나를 잊게 해주는 누군가의 이야기에서 느리고 모호한 쾌감을 느꼈다. 내가 좋아하는 건 아무도 찾지 않는 도서실의 고전문학 서가에 앉아 책을 통해 누군가의 느낌이나 감정을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글로 쓰이고, 종이에 인쇄된 인간의 욕구가 나에게는 위협적이지 않을 만큼만 생생했고, 그렇기에 안전하게 나를 열 수 있었다.”

김멜라, <이응이응>


주인공이 떠나간 이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눈으로 보고 코로 맡고 귀로 듣은 것들, 그리고 살결로 느끼는 감촉과 온도를 통해 쌓여온 기억들로 만들어졌고 비록 어딘가 불분명해지는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이런 것들이 ‘이응’을 통해서 느끼는 강렬하고 확실한 쾌락으로 덮어둘 수 있는 건 아닐 거라는 걸 독자로서도 느끼게 돼. 상실이나 슬픔, 분노, 불안은 원래 그 자리에 있던 사랑과 기쁨, 애틋함이 사라지고 난 후에 오는 감정이니까 완전히 해소될 수 없는게 오히려 자연스럽겠지.


인간이 어디까지 대체될 수 있을까 묻고 있는 시대에 나는 어떻게 나로서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해 정해진 하나의 답이 있진 않을거야. 모두가 각자의 답을 찾을테지만, 우리는 감정을 느끼고 세계를 감각하는 주체로서 존재할 거야. 마냥 좋고 기쁘고 신나지만은 않은 많은 것들을 포함하겠지만 그런 걸 외면하지 않기로 했을 때 내 안에 대체될 수 없는 무언가가 남겠지.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순간들이 너의 하루를 채우면 좋겠다. 텍사스의 가을이 이곳보다는 더 길기를..!


도쿄에서,

y




매거진의 이전글Just the way you 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