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나라는 사람의 고유한 박자

매일 반복하기에 단단해지는 마음

by sunny

안녕! 나의 벗

안녕히 잘 지냈는가. 텍사스의 가을은 이제야 찾아왔는데 곧 겨울이 올 것 같은 기분이야.

어릴 적엔 봄과 가을을 느낄 시간이 많았던 것 같은데, 미국이나 한국이나 사계절 중 봄과 가을의 절기가 짧아지는 듯해. 아쉽게 지나가야 또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긴 하지만.


추위를 유난히 못 견디는 나인데 겨울이 싫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 여긴 한국의 겨울만큼의 추위를 느끼긴 어렵지만 그 추위가 그립기도 하다. 아마도 내가 기억하는 한국의 겨울의 추위가 그립다기보다는 코트 하나만 걸쳐 입고도 추위를 거뜬히 이겨내며 즐겁게 서울구경 나가던 그 시절의 내가 그리운 것 같네. 도쿄는 한국과 비슷한 겨울 날씨겠구나!


네가 지난번 편지에서 말한 감정의 외주화. 부정적인 감정을 외면하기 위해 쉽고 빠르게 도피할 수 있는 도파민에 중독되는 세상에 살고 있는 나 자신을 또 한 번 돌아봤네. 도파민에 관련해 편지글을 쓰면 엄청 길어질 텐데... ㅎㅎ 도파민 중독은 한 때 아니, 지금도 나에게 중요한 관심사야. 특히 싸이월드, 페이스북을 지나 인스타그램의 시대와 함께 성장해 온 나로서는 내가 빠져있는 소셜미디어 를 하는 행위가 중독이라고 인지하는데도 (부끄럽지만) 꽤나 시간이 지난 후 알았어. 끊임없는 콘텐츠의 소비로 가득찬 가상세계에서 지금도 중독은 진행형일지도 몰라.



우리 중 다수는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고도의 도파민 물질과 행동에 기댄다. 그러나 중독 대상에서 탈피하려고 도파민 사용을 멈추면 처음엔 고통스러운 생각, 감정, 감각들이 몰려든다. 이때 고통스러운 감정에서 벗어나려 하지 말고 이를 인내하고 받아들이라는 것이 마음 챙김의 가르침이다.

-에나 렘케《 도파민네이션 》



가끔 해가 뜨기 전 눈을 떠서 가만히 누워있을 때가 있어. 5분 10분 핸드폰을 켜지 않은 채로 고요하게 그 시간을 인내하며 온전히 느끼는 순간들. 그 땐 머릿속에 오만가지의 생각들이 떠돌아다녀서 몸은 가만있는데 머릿속은 혼돈 그 자체가 되는 기분이 들어. 너의 지난 편지 속 "인간이 어디까지 대체될 수 있을까" "나는 어떻게 나로서 존재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문득 생각나더라.

머릿속이 복잡해질 땐! 나의 강아지와 바로 아침산책을 나가기 위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지. 생각을 하기 위해서 말이야.


따뜻한 이불속에서 복작복작 쉴 새 없이 떠들던 내 머릿속이 바깥 찬바람을 쐬며 나의 강아지의 빠른 발걸음에 맞추어 걷다 보니 잠잠해지며 조금은 정돈된 생각의 시간을 갖게 해. 매번 그 순간들이 너무 좋다. 우리 집 강아지가 나에게 온 이후로, 아침 산책은 나에게 의무이자 하나의 즐거운 루틴으로 자리 잡았어. 산책을 하면서 생각해 보니 우주 속 수없이 떠다니는 별들 같은 나의 머릿속을 잠재우기 위해서 평소에 하는 나의 루틴을 조금 다듬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간단하지만 반복되는 루틴이 나의 아침 시간을 통한 안정감을 줄테니 말이야.

나의 강아지랑 아침 인사- 물 한잔- 스트레칭 - 아침 건강주스 만들어 마시기- 강아지 산책 - 커피/마차- 모닝페이지- (3일정도)운동- 그리고 하루를 시작.


unnamed (1).jpg 모닝 루틴!




농부는 손과 발에 익힌 두터운 습관 속에서 밭일에 완전히 적응해 있다. 습관이란 말은 원래 소유하다는 말에서 왔다. 농부는 습관 속에서 환경에 단순히 적응할 뿐만 아니라 편안하게 거주한다. (..) 습관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고유한 자신의 영역, 고유한 자신의 속성, 고유한 실체적 중량을 얻게 된다. 이는 습관이 있고서야 비로소 '나'라고 말하는 고유한 자기가 있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자기감정이나 자기의식은 습관의 선물이다.

김상환' 사유란 무엇인가' <예술과 삶에 대한 물음> 믿음사


(..) 한 사람의 습관이 그 사람의 고유성을 드러내는 지표가 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다. 내가 살고 싶은 인생, 되고 싶은 사람을 떠올릴 때 그것은 정지된 화면 속의 풍경이나 인물이 아니다. 그 사람이 매일, 혹은 절기나 계절마다 반복하고 싸아가는 것이 곧 그 사람의 인생일 것이기 때문이다.

-무루《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라는 책 속에 김상환 작가님의 글과 그에 대한 무루작가의 생각을 적은 문구가 떠올라서 산책 후 집에 오자마자 책을 펼쳐 들었어. 이 책은 어린아이들의 그림책을 어른의 시점으로 담은 무루작가님의 에세이집이야. 어떤 할머니로 나이들어가고 싶은가를 아이들의 그림책을 통해 어른의 시점으로 삶의 태도에 관한 내용들을 읽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져.


IMG_4156.jpeg 너와 함께 했던 아티스트웨이 모임이 생각나던 부분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싶어>


무루작가님의 할머니의 이상향처럼 나도 백발 성한 노인이 되었을 때 삶의 습관들 가운데 많은 것들이 노동과 생산에 관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올해는 물건들을 많이 정리하며 조금은 단조롭게 나의 환경을 바꾸려 노력했듯이. 다음 해가 오기 전까지, 나만의 단조로운 루틴으로 나의 시간들을 정돈하는 것 부터 시작하려 해.


AI 시대에 들어서면서, 우리 일상의 많은 부분들이 언젠가 로봇에 의해 대체되겠지?

그럴수록 '나'는 누구인가 '나다움'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한 것 같아.

나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매일 반복되는 나의 루틴에 몸을 맡기며, 나다운 삶의 리듬을 찾아가며 다져진 단단한 나의 마음이 곧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힘이 되어 줄 거라 믿으며 :) 나의 편지를 마칠게.


곧 네가 좋아하는 밝은 카멜색 코트를 꺼내놔야겠다. 언제쯤 스웨이드바지를 입고 좋아하는 밝은 카멜색의 코트를 꺼내 입은 너와 따뜻한 차 한잔하면서 소소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ㅎㅎ

보고싶어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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