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

한 겹씩 나를 완성하는 일

by Dear Yoor Day

안녕? 넌 오늘도 너의 강아지와 산책을 했겠지? 나도야 ㅎㅎ

얼마 전 올라온 여둘톡 에피소드에서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이 자신이 아닌 멍멍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면서 되려 자신을 돌보게 된다는 말이 나왔었는데 너의 편지가 떠오르기도 하면서 새삼 참 공감이 많이 되었었어. 포틀랜드에 처음 도착해서 참 외롭고 춥고 어두웠던 시기에도 비가오나 눈이오나 나는 우리집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었으니까. 그 때 우울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참 많은 것들을 했었는데 생각해보면 어느 한 가지가 마법의 특효약처럼 효과가 있었다기 보다는 그 여러 가지 일들이 반복되면서 나는 조금씩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거 같아. 그러니까 루틴이 있었던 거지.

아주 작고 어렸던 나의 강아지

우선 아침에 눈을 뜨면 옷을 챙겨입고 강아지를 데리고 나가서 동네 공원을 걸었어. 우리집 근처 공원 기억나는지 모르겠는데 커다란 나무가 참 많은 공원이었거든. 특히 10월즈음엔 비가 자주 내리니까 공원에 도착하면 젖은 흙냄새와 고목냄새, 낙엽냄새 같은 게 아침 공기 속에 스며있었어. 공원을 걷고 집에 오면 강아지 발바닥이랑 배에 묻은 흙과 낙엽을 씻겨줘야했지. 공원을 걸을 때나, 집안일을 할 때면 늘 팟캐스트 아니면 오디오북을 들었어. 나의 정신건강 상태를 알기 위한 컨텐츠를 듣기도 했고 전혀 관계 없는 컨텐츠도 들었지만 어느 쪽이든 새로운 관점을 갖기 위한 노력이었던 거 같아. 무엇이든 내 손으로 만들어보는 경험을 늘리려고 음식을 하고, 도자기수업도 듣고, 그러다 머리 속에 생각이 너무 엉키면 글을 쓰기도 했어. 처음에는 노트에만 쓰다가 나름 생산적이고 다듬어진 글을 쓰겠다는 마음으로 거의 아무도 안 보는 곳에 글을 올리기도 했었지.


dyd1.png 춥고 얼어붙은 풍경 속 내 강아지. 서툴게 만들어본 첫 도자기들.


그 때엔 이런게 루틴인지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거의 매일 비슷한 하루가 겹겹이 쌓이고 있었고 어느 날 보니 내가 시커먼 밑바닥이 아닌 수면 위에 둥둥 떠올라있었지. 사실 난 천성이 루틴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야. 같은 것에 쉽게 싫증이 나거든. 의지도 약하고. 하지만 그 때의 경험을 몸이 기억하는 건지, 아니면 순수히 내가 잘 못하는 것에 대한 동경인지 모르겠지만 루틴을 가지고 싶어하는 마음이 아주 굴뚝같아졌어. 요즘 들어 더욱더. 특히 루틴의 한 부분에 ‘기록’ 이 있었던 저 경우에는 그 때 썼던 글들이 내 한 켠에 고스란히 남아있게 되었는데, 그 글들 속에 내가 통과한 시간이 담겨있다는 게 나름의 자산이 되있다는 생각도 들고 말야. ‘나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는 과거의 나를 비추는 거울이랄까. 매일 나의 일부가 분해되고 재생되며 과거의 나는 조금씩 그 흔적을 잃고 있는데 적어도 기록 속에서 내가 잃은 나를 기억할 수 있으니까.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을 모토로 사는 사람이라면 주변이 아니라 자기 자신부터 고요해야 하는 법이다. (...) 일상의 관성과 항상성은 별일 없이 사는 잔잔함에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


김교석 <아무튼, 계속>


별일 없이 사는 잔잔함.. 로또 당첨이나 쇼핑같은 단발성 쾌락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게 아니라 그냥 오늘 하루 무사히 살았다는 작은 안도감. 이전엔 그런 매일을 떠올리면 지루하다고 생각했을텐데, 이제는 아닌 거 같아. 어제랑 오늘 참 비슷했고, 내일도 별반 다르지 않겠지만 그걸로 참 다행인 나날들. 얼마 전 집근처 공원을 강아지와 걸으며 그런 생각을 했었어. 매일매일이 이대로면 좋겠다고.

DSCF7879.JPG 날씨가 좋아서 의자와 음료수, 모자, 수건, 책을 챙겨서 나온 어느 마을 주민 아저씨의 자리
DSCF7893.JPG 저 할아버지와 멍멍이는 어제도 이 길을 걸었을까.
DSCF7906.JPG 할머니의 휠체어를 밀어 함께 걸어온 할아버지. 앉을 때엔 마주 앉아 있었다.
DSCF7919.JPG 늘 걷고 뛰는 길이겠지만 지금은 코스모스가 피어있지


루틴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은 어쩌면 나를 지키고 싶다는 생각인지도 모르겠어. 그게 과거가 되어가는 현재의 나를 보존하기 위한 것이든, 미래의 나를 대비하는 것이든 어떤 목표를 가지고 반복하는 일상이 쌓이면 나다움 혹은 내가 되고픔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믿어. 다른 사람들이 심어놓는 욕망 말고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을 원하기 위한 일상을 되찾는 거지.


나를 나답게, 내가 되고싶은 사람으로 만들어줄 루틴. 이 다음 편지를 쓸 때까지 실천해보고 시행착오를 공유할게. 너도 너다워지는, 너가 되고픈 사람으로 이끌어줄 루틴이 생긴다면 알려줘.


그럼 또 쓸게!

도쿄에서,


- 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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