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만난 우연

얼룩덜룩한 순간이 쌓여 만들어낸 균일함

by sunny

안녕!

사랑스러운 너의 강아지 너무 반갑다. 나는 오늘 강아지 목욕 시키고 뭉쳐있는 털들을 다듬어주었어. 예민보스인 아이를 목욕시키는 것도 털을 다듬는 것도 여전히... 너무 어렵다. 그래도 예전에 비해서는 조금씩 조금씩 익숙해지는 것 같기도 해. 이 것도 나의 강아지에겐.. 일종의 루틴이 될 것이라 믿으며 오늘도 힘을 내보았어.


최근 시작해 보는 루틴은 간단하게 내가 진짜로 평소에 쉽게 할 수 있고 강아지 산책, 스트레칭, 물 한 컵 마시기 그리고 모닝페이지 쓰기. 이렇게 간단한 모닝루틴을 만들어가고 있어. 몇 년 전 아티스트웨이 모임을 통해 모닝페이지를 쓰는 아침 습관을 가지려 했는데 습관을 만들고 싶은 이유는 '이 과정을 통해 나를 믿는 힘'을 기르는 것이었었는데, 지난 편지에서 네가 말했듯 루틴을 통해 나를 지키고 싶다는 생각이 었었던 것 같아.


아직 나는 완벽하게 지켜나가는 루틴이 있는 건 아니야. 어느 날은 물 마시기 정도까지만, 그러다 어느 날은 물 마시고 조금 더 힘이 나는 날에는 그다음 순서 루틴을 따라가도 괜찮다고 하더라.

어느 순간 내가 무너지는 날이 있을 때 루틴 중 하나라도 해내가면서 마음을 기댈 곳을 찾는 행위가 되기도해. 루틴도 완벽할 이유는 없잖아. 하루하루를 시작하는 하나의 장치이고, 오늘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로 만들어가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루틴 중 빼먹지 않고 꼭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건 명상이야. 5분이든 10분이든 무리 없이 말이야. 명상이라고 한다면 눈 감고 양쪽 두 손가락으로 원을 그리며 생각에 집중하는 거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이 짧은 5분 10분도 부담스럽게 다가올 때가 있더라고.


안 그래도 얼마 전 아는 언니를 만났는데, 불안도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나에게 명상을 추천해 줬어. 내가 가지고 있는 명상이라는 선입견을 깨지듯 언니는 그저 네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에 집중하는 것도 하나의 명상이 될 수 있다고 하더라고. 신발을 신는 행위, 산책을 하면서 나의 발자취에 집중해 걷는 행위와 같이. 한 가지에 몰두하는 것도 명상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일상의 작은 행위가 마음을 다스리는 하나의 방법이 된 다는 것을 깨닫자 명상이 어렵게 다가오지 않더라.


몇 해 전 뉴욕에서 잠시 머물 일 이 있었는데 그때 마치 영화 속에 있는 것 같았어. 나의 짝꿍이랑 센트럴파크를 산책하러 나갔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오는 거야. 그래서 부랴부랴 근처 피할 수 있는 건물입구를 찾아서 비가 그칠 대까지 기다린 적이 있어. 개인 미술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였는데 갤러리 큐레이터분이 한국분 이셨고, 대학교에서 민화를 가르치시는 멋진 여성이었어. 아직도 잊지 못해. 그분이 가지신 아우라를.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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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피해 잠시 들어갔던 갤러리에서 작품들을 보며 그 분과 잠깐의 담소를 나눴어. 그러면서 뉴욕 센트럴파크 근처 갤러리에서 한국 전통화, 민화를 배우게 되는 기회를 얻게 되었지!

뉴욕은 정말 멋진 사람들이 사는 멋진 도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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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는 한국판 컬러링북 같은 느낌이었어. 밑그림을 아교칠을 한 한지에 모사를 하고, 그 그림에 한 겹 한 겹 채색과 바림을 하는 것이었어. 민화는 19-20세기 우리나라에서 백성들의 염원과 꿈을 담고 있는 그림들이 많아. 내가 채색했던 건 부귀와 행복한 삶을 소망하며 그렸던 모란도.


꽃 전체 바탕색을 칠하고 그 후 꽃 잎 하나하나 옅은 분홍색으로 바림을 해. 바림은 밑색으로 칠했던 색 위에 색을 덧칠하는 것과 같아. 한 겹 한 겹 덧칠을 하면서 색의 진하기를 표현하며 명함을 주는 거지. 바림을 하는 동안은 정말 그 순간에만 집중할 수 있었어. 옛날 사람들은 색을 한 겹 한 겹 쌓아가며 어떤 소망을 가지고 있었을까. 모란도를 채색하고 바림하는 것도 곧 명상과 같은 결인 것 같아. 우리가 이야기한 것처럼 매 순간순간을 집중하고 조금 더 괜찮은 내가 되는 순간들이 겹겹이 쌓여가는 과정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잘하고 있는 건가 싶은 그 과정들을 조급해하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하지.


바림을 하고 마르는 동안에는 그 부분이 앞의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얼룩덜룩하게 보여 제대로 잘 칠했는지 아리송하겠지만 다 마른 뒤에 보면 훨씬 균일하게 표현되기 때문에 중간과정에서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다.

-서하나 《 모던민화 수업 》


민화를 배우게 된 건 정말 행운이었어. 그 당시에도 개인적인 고민이 많았는데, 복잡한 머리 속을 정리하고 나의 정신을 집중할 수 있는 시간들이 있었기에 잘 이겨냈던 것 같아.


민화 채색과 얼마전에 만난 지인 언니가 추천해준 명상처럼, 그 순간에 집중할 수 있는 것들을 주변에 많이 두어야겠다 생각이 들었어. 흩어진 생각들과 시간들을 정돈하는 기분으로 말이야.

가끔 불안감이 덮쳐올 때가 있는데 나는 그 불안감을 시각화해서 생각해. 내 짝꿍이 알려준 팁이라 아주 유용하게 쓰고 있어. 얼마전 내가 언급했었던 인사이드아웃2 영화에서 불안 캐릭터를 상상하며 '아 내가 마음속 지금 불안한 물체가 있구나.' 라고 인지하고 제 3자의 입장에서 바라봐. 그 후에 민화에서 바림으로 색을 만들어가듯, 불안이를 한 겹 한 겹 다른 모양으로 다른 색으로 변형시켜 가는 거지. '나의 불안이 다른 감정으로 변화하고 있다.' 라는 걸 시각화 하면서 말이야.


그 순간엔 나의 감정과 상황들이 얼룩덜룩하게 보이겠지만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 되돌아보면, 그 순간을 인지하고 집중한 결과는 결국엔 더 균일한 안정감을 내게 줄 수 있으니까.

명상에 대해서는 지금 공부 중이야. 모르는게 아직 너무 많다. 너도 명상하는 것을 자주 하고 있지? 나중에 시간이 될 때 명상에 대한 너의 생각도 궁금해. 너의 도자기를 만들었을 때는 어땠는지도!

늘 새로운 시선으로 나아가기 위해 경험해보는 내친구 멋있다 :)


앞으로도 어떤 루틴을 더 추가하면 좋을까 고민해 보려고! 너의 일상 속 루틴은 어땠을까.

날이 추워지니 감기 조심하고, 답장 기다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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