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녹을 먹은 분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발견
시간의 녹을 먹은 노인들이야말로 가장 지혜로울 수 있는 자들임에 틀림없다.
- 버티는 삶에 관하여 '허지웅' -
2020년 5월의 기록을 꺼내어 본다. 메모장에 적혀있는 기록이 오늘 아침 나의 마음 안을 비집고 들어왔다.
2020년 5월 어느 즈음.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문득 일주일 전에 있었던 기사님과의 대화가 생각났다. 그날도 비가 내렸다. 나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반겨주는 기사님의 인사와 함께 택시를 탔다.
나는 택시 기사님들과 대화하는 걸 좋아한다. 기사님들과의 대화를 통해 나의 삶을 되돌아볼 때도 있다. 더불어 기사님들도 넋두리를 하며 조금이나마 힘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건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다 : )
그래서인지 나는 내 얘기를 하기보다 먼저 질문을 한다. 상대방의 얘기를 듣는 것으로부터 내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밥은 드셨는지, 운전 힘드시진 않은지, 하루의 마무리 끝에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등
가벼운 것부터 다소 무거운 주제까지 스펙트럼을 넓혀본다. 대부분의 기사님들이 친절히 답해주시고, 자신의 이야기도 해주신다.
근데 유독 이 기사님은 내게 질문을 많이 하셨다.
그분은 37년생 택시기사님이셨다.
'학생, 시급 42원 받고 일하면 어떨 것 같어?' '나 때는 산속에 호랑이가 살았어~' '내가 이 동네 토박이인데, 예전과 너무 달라진 것 같아' 등
처음엔 음..? 하고 생각했다.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러다 어..? 하는 질문을 받았다.
'악착같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노력한 적 있어?'
'옛날처럼 지금 땅굴 파고 악착같이 일해서 돈 벌라고 하면 할 거야?' 나는 대답했다.
'기사님 시대는 변했어요~, 가질 수 있는 무기들도 많아졌고요. 저는 그 부분을 키우고 저만의 색을 찾지 않을까 싶어요. 땅굴을 파기엔 조금...'
나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기사님이 말씀하셨다.
'시대는 변했어도, 정신은 변하면 안 돼,
나는 그걸 말하려고 한 거야.'
벙쪘다. 나의 편견에 날아온 화살이 내 머릿속을 뒤집어놨다. '아...'라는 깨달음의 탄식은 꽤나 지속됐다. 그 후 나는 도착지까지 말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도착지에 이르렀고, 나는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하차했다.
삶의 지혜를 고스란히 가진 노인들도 많다. 만연한 배척의 대상이 아니다. 무조건 적인 라떼는 말이야가 아닌 분들도 많다. 그분들에겐 알 수 없는 지혜와 힘이 있다. 하차 후 택시의 문을 닫으며 생각했다.
맞다. 시간의 녹을 먹은 노인이야 말로 지혜로운 사람일 수 있겠구나.
그날 나는 좋은 어른을 만났고,
알 수 없는 지혜를 만났다.
배움과 성찰의 시간을 허락해준 기사님께
감사를 전하며 지금의 나를 바라본다.
나의 정신은 변했는가?
그렇다. 편협한 생각들이 조금은 자리 잡은 듯싶다. 그날을 회상하고, 그 말을 기억하며 오늘 아침 나는 다시 다짐한다.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자는 것,
정신을 방해하는 것이 다가와도 다시 붙잡을 것.
그날의 기록이 오늘 아침 내게 다가와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