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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듀군 Feb 15. 2022

1% 배터리 덕에 아버지를 만났다

by pexels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발견


휴대폰 배터리 1%는 누구에게나 초조하다.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요즘 시대적인 이야기로 풀어보자면, 휴대폰 배터리는 곧 나의 출입증과도 같다. 휴대폰이 없으면 소속될 수 없다는 불안감마저 나를 휘두르고 있다. 1등, 1위, 1번 등과는 다르게 1이 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내겐 1% 배터리가 전해준 아찔하면서도 따뜻했던 추억이 있다.


어느 한 회사의 면접이 끝났다. 끝나고 보니 점심시간이었다. 나는 면접을 핑계로 아버지와의 식사 약속을 잡았다. 아버지의 직장이 면접 장소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면접은 핑계고 아버지와 밖에서 단 둘이 식사한 적이 드물었다. 내 주위 친구들의 경우엔 종종 밖에서 식사를 하거나 카페를 가기도 하더라. 허나, 우리 집은 철저히 홈플레이 스타일이다. 집안에서 온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한다. 3교대 근무를 하는 어머니의 스케줄이 변칙적일 경우엔 내가 아버지의 저녁을 챙겨드린다. 그렇게 세 남자는 남자 냄새 훌훌 풍기는 식사를 한다. 


그래서 용기를 냈다. 나의 인생 가운데 아버지와 단둘이 밖에서 식사를 해본 적이 딱 한번 있다. 그마저도 얼떨결에 하게 된 것이다. 그때 우리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칼국수의 맛이 너무 훌륭해서 그랬다고 이야기하고 싶을 정도로 어색했던 나와 아버지 사이엔 무엇이 있었을까. 온 식구가 모여 이야기할 때와 단 둘이 있을 때의 느낌이 이렇게 다를까도 싶었다. 그 이후 몇 년이 지났다. 우린 서로 나이를 먹어갔다. 


아버지는 나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주셨고 점심에 시간을 내어 우린 만나기로 했다.

한 시간 남짓한 면접이 끝이 났다. 비행기 모드였던 휴대폰을 꺼내 들어 데이터 모드로 바꿨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휴대폰 배터리가 1%였다. 급격히 추워진 날씨 속 휴대폰 배터리도 겨울잠을 자고 싶었나 보다. 당황해진 나는 할 수 없이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배터리가 1%라 어디 식당도 들어가지 못할 것 같아요. 다음에 먹어요!'

그러자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아고메, 그냥 빨리 만나보자 어떻게든 되겠지, 현대백화점 지하 1층으로 와!'


나는 다시 비행기 모드로 바꾼 채 재빠르게 뛰어갔다. 제발 배터리가 닳질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드디어 입구에 다다랐다. 사람들은 또 왜 이렇게 줄을 서있을까. 이 기다림도 야속했다. 그 시간만큼은 오늘 하루 중 가장 느린 시간으로 기억될게 불 보듯 뻔했다. 하지만, 결과는 입장 성공. 여유를 가질 마음도 없었다.

음식점을 입장하기 위해 한번 더 나의 배터리가 힘을 써줘야 하기 때문이다. 내 머릿속의 생각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중 나는 드디어 아버지와 만났다.


아버지는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밖에서 보니 더 반가웠다. 집에서 속옷 입고, 반바지 입으며 고추장에 멸치를 찍어 드시는 아버지만 보다가 말끔히 차려입은 아버지의 모습은 내 눈엔 가장 성공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리고 깨달았다. 지난번 아버지와의 식사에서 부족했던 건 다름 아닌 내 마음속 여유의 여백의 부재리라.

우린 어느 한정식 집에 도착했고, 배터리는 다행히 우리 부자지간의 시간의 끈을 연결해주었다.

5년 넘은 휴대폰이 이토록 고마웠던 적이 처음인 것 같다. 버텨줘서 고맙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우리는 삼겹살 정식을 시켰고, 아버지는 사진까지 찍었다. 가족 단톡방에 올렸고 어머니와 동생도 답장했다. 동생은 둘째 두고 둘이 뭐하냐며 장난스러운 새침데기가 되기도 했다.

이 광경이 낯설었지만, 낯섦 속에 오는 따뜻함이 더욱 컸다. 서로 다른 곳에 있지만, 서로의 점심을 공유하며 하나 된 가족을 바라셨던 걸까. 아버지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없지만,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임에는 틀림없었다. 아버지의 말이 트였다. 면접 이야기, 아버지 회사, 동료 이야기 등 대화의 스펙트럼을 조금씩 넓혔다. 마르지 않는 아버지의 미소에 면접은 잊혀 갔다. 아니, 줄행랑친 게 맞다. 우리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말이다. 밥을 다 먹고 일어나 카페로 향했다. 글을 쓰는 아직도 신기하다. 1%의 배터리는 여전히 우리 둘을 지켜보고 있었고, 그 시간을 아름답게 만들어주기 위해 마지막 힘을 쥐어짜고 있었다.


우리의 대화는 카페에서 이어졌다. 덕담과 응원, 공감과 이견 등 아버지와의 대화가 좋았다. 다른 수식어가 생각이 나질 않았다. 좋았다. 2시간 남짓한 시간은 우리 사이를 좀 더 가깝게 만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집에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나의 배터리는 방전됐다.


숭고한 희생이었다. 연결의 매개체였다. 눈치 있는 배터리의 태도는 주인에게 헌신을 다했다. 

배터리는 우리의 시간을 이어주었고, 추억을 저장하도록 도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꺼진 나의 휴대폰은 아버지와의 추억이 휘발되지 않고 온전히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리고 붙잡아 온 추억의 끈을 이곳에 묶을 수 있게 되었다.


고마워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가족에게 힘써주어 고맙다.

너는 지쳐 결국 방전됐지만, 돌아가는 발걸음 속 아버지의 마음을 더 온전히 생각할 수 있게 도와줘서 고맙다.


악착같이 버텨준 배터리의 모습은 마치 우리 아버지를 이야기하는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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