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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듀군 Feb 27. 2022

새벽 4시에 면접을 보게 된 이야기

pexels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발견


내 인생 처음으로 새벽 4시에 면접을 보았다. 적막했고, 고요했고, 서로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의 허락이었다. 허락을 받아 방 안에 앉아있는 내 모습을 보자니 처량하지 않았고, 도전과 자신감 넘치는 예전의 내 모습을 본 것 같아 뿌듯했다. 두려움과 긴장으로 시작된 면접의 끝엔, 격려와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려는 또 다른 내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면접시간이 왜 새벽 4시였을까?

우선, 이 면접은 외국계 회사의 최종면접이었다. 면접관은 외국인이었고 아시아 지역 매니저였다. 면접은 전부 영어로 진행되었다. 화상면접이었고,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면접관과 면접을 보기로 했기에, 시차를 고려한 면접일자를 선택해야 했다. 이메일로 일정을 주고받던 중 나는 PST(태평양 시간) 기준으로 오전 11시를 선택했다. 이는 KST(한국시간) 기준 다음날 새벽 4시였다.


면접관이 답신을 보냈다. 너에게 굉장히 불편한 시간일 듯싶다며, 잘못 선택한 것이 아니냐며 한국시간 기준 토요일 아침 8시로 변경해도 괜찮겠냐고 보내왔다. 나는 꽤나 고민했다. 나의 첫 선택을 번복하고 싶지 않은 마음과 새벽 4시에 면접을 본다는 일이 앞으로 얼마나 더 있을까 싶어서였다. 새로운 경험을 마주할 수 있다는 설렘과 그 시간에도 깨어 당당하게 면접 볼 수 있다는 나를 응원해주고 싶었다. 그간 자존감이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답신을 보냈다. 그 시간은 내게 귀중한 시간일 것이고, 당신만 괜찮다면 그 시간에 보고 싶다고 말이다. 결국, 면접은 새벽 4시로 결정되었다. 


12월 중순부터 진행되어온 채용이었다. 약 두 달이 넘도록 진행된 채용 과정 중 마지막 관문이라는 사실에 밤잠 줄여가며 노력했다. 스피킹은 물론, 외국인 친구와 핸드폰을 붙잡고 연습을 지독하게 반복했다. 회화 왕초보가 계란으로 바위 치는 꼴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외국인 친구의 진심 어린 격려와 메시지 덕에 다시 또 오기를 품고 준비했다. 5장이 넘어가는 영어 스크립트를 준비하고, 체화시키려 노력했다. 방 안에서 홀로 영어를 연습하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본 어머니는 신문물을 접한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야 너 언제 그렇게 영어로 쌸롸쌸롸 했냐?' 꽤나 놀란 듯한 어머니의 말투였다. 많이 부족하고 자랑스럽지 못한 아들이었기에 내가 노력하는 모습을 어머니가 조금은 알아주셨음 했다. 물론, 누가 알아주던 말던  스스로에게 부끄럼 없이 준비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기온은 높고 낮음의 반복으로 요동치는 와중에 면접을 대하는 나의 자세만큼은 요지부동이었다. 마지막 기회라 생각했고, 학부 시절 미련하고도 막무가내로 엉덩이에 고름이 터질 때까지 공부했던 마음가짐을 오래간만에 느꼈다.


드디어 면접 당일이 되었다. 새벽 3시에 기상하여 기도를 드리고, 샤워를 했다. 멀끔한 옷으로 갈아입고 화면 앞에 앉았다. 예상과 다르게 떨리진 않았다. 하지만 목이 좀 따가웠다. 2주간 불규칙적인 수면과 기상 리듬을 맞추기 위해 신체에게 무리한 요구를 했나 싶었다. 면접 전날에도 저녁 8시에 누워 잠을 청하려 했지만, 불면증은 심했고 결국 자정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뭐 어쩌겠나, 컨디션 관리도 내가 해야 할 몫인 거다. 나는 다시 자세를 고쳐 잡고 로그인 버튼을 눌렀다. 마침내 외국인을 마주했고, 인사를 시작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복장을 갖추고 있는 나의 모습에 자신감과 자존감은 넘쳤다. 처음까진 나의 뜻대로 잘 흘러갔던 듯싶다. 면접관의 리액션도 좋았고, 다소 완벽한 문장은 아니었지만 진심을 담아 전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중반부터 꼬였다. 빠르게 새어나가는 질문의 요지를 잘 파악하지 못했고, 2-3번 계속해서 되물었다. 면접 말미가 돼서야 'that's cool(그거 멋지다~)'이라는 말을 딱 한 번 들을 수 있었다. 


화면이 꺼졌다. 2주간의 나의 준비와 면접이 끝이 났다. 그간 면접의 경우 아쉬움이 많이 남았을 텐데 후회가 없었다. 이 마음은 아마도 이랬을 것이다. 

'열심히 준비했고, 설사 내가 준비한 만큼을 보여주지 못했더라도 그간의 노력과 과정을 통해 나라는 사람도 무언가를 다시 할 수 있구나라는 마음이었다.' 

부모님에게 잠시나마 자랑스럽고, 몰두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 뿌듯했다. 그래서 아쉬움 대신 모든 것에 감사가 먼저 튀어나왔다. 피곤하지도 않았다. 면접이 끝나고 그 감정을 그대로 메모장에 기록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던, 나의 다음을 준비할 수 있는 초석이 되었음엔 틀림없다. 그것을 일깨워준 과정에 감사할 뿐이다. 내가 원하고 바라는 대로, 갈망하는 대로만 삶이 이루어진다면 나는 이미 성공했겠지.

악착같이 준비하다 보면 초연에도 의연해질 수 있다는 마음을 배웠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값진 새벽의 경험이 되기에 충분했다.


면접이 끝난 당일 오후, 미열이 발생했다. 진단키트를 사용해보니, 양성이었다. 컨디션 관리로 인해 떨어진 면역력에 코로나가 침투했다. 앞서 목이 따갑고, 집중력이 좀 떨어진 이유가 코로나였음을 그때 실감했다.


세상은 득과 실을 따지며 돌아간다고 하더라. 그래서 코로나로 인해 내 건강을 잃었다. 미각, 후각, 무기력함.

하지만 완전히 잃지만은 않았다. 분명, 기쁘고도 울컥했다.

'이만큼 열심히 준비를 해보니 질병도 찾아오는구나. 병이 찾아올 만큼 나 노력했구나..'

긍정과 감사가 섞인 나의 바보(?) 같은 마음은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지금은 격리 중이다. 4일째 까진 오한과 발열로 꽤나 고통스러웠지만, 

이렇게 다시 활자를 타이핑하고 마주할 수 있게 되어 반갑기도 하다.


새벽 4시의 면접은 내게 다음을 도전할 수 있게 해 준 기회를 주었다.

자기소개 밖에 할 줄 모르던 아이는, 1시간 동안이나 외국인과 면접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의 허들을 또 한 번 넘으며, 새로운 허들에 맞설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다.


병과 맞바꾼 미련한 노력이었다. 그 뒤엔 수많은 배움과 희망이 있었다.

절대 미련한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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