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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듀군 Nov 15. 2023

할머니가 내어 주신 계란과 귤 한 개

모든 걸 주신 할머니의 온기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발견

할머니가 주신 맥반석 계란과 귤 한 개. 


그것은 단언컨대 그날 가장 아름답고 맛있는 일용한 양식이었다.


자신의 것을 다 내어주며 유유히 떠나시는 할머니의 뒷모습. 


그건 마치 길을 잃은 내 삶의 방향성을 잡아주시는 그분의 손과도 같았다.


일주일 전이다. 내가 찜질방을 방문한 것이.


나는 누적된 피로로 반전이 필요했고 평소에 자주 가던 찜질방이 생각났다.


별생각 없이 일련의 루틴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입구부터 심상치 않았다.


'엘리베이터 앞까지 늘어선 대기줄은 어디서 온 것이며, 지금 이 시간에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은지.'


호기심을 참을 수 없어 결제와 동시에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이 시간에 왜 이렇게 사람이 많아요~? 무슨 일 있나요?'

'아~ 저희가 기획도 바꾸고 SNS로 홍보하다 보니 서울에서도 찾아와 주시더라구요.'


두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아뿔싸, 오늘은 편하게 이용하기 어렵겠구나'


'그래도 우리 지역이 이렇게 소문이 많이 나다니 좋군'


가타부타 생각은 접어두고 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입장했다.


나는 몇 번의 찜질 후 잠시 몸을 식히러 비좁은 한 평 남짓한 공간에 자리 잡았다.


찜질방 시그니처인 매실과 식혜를 자연스레 주문했고 세상 제일 맛있는 표정으로 음미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옆자리 할머니가 눈에 띄었다. 


백발에 허리가 굽으신 것을 보니 마음이 아프면서도 인상이 되게 선해 보이셨다.


처음엔 그렇게만 생각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몇 분 후 할머니가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자세히 보니 토마토 주스를 쳐다보시고 고개를 갸우뚱거리시는 게 아닌가.


'무언가 문제라도 있나? 유통기한이 지났나?' 등 오만가지 생각과 동시에 다시 고개를 돌렸다.


오지랖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 휴식에 집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내 성격 어디 가겠는가, 궁금증이 생겨 할머니를 다시 쳐다봤다.


결국 할머니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할머니는 내게 방긋한 미소와 함께 말을 건네셨다.


자그마한 목소리로 시작된 우리의 대화는 아래와 같다.


"토마토 주스 뚜껑 좀 따줘~힘이 없어"

"아유~ 그럼요~ 제가 잘 따드릴게요. 이것 때문에 그러셨구나~"

(주스 뚜껑을 따면 들리는 경쾌한 펑~소리와 함께)

"맛있게 드세요~ 다른 거 필요하신 건 없으시고요?"

(절레절레)

"할머니의 눈빛을 보고 더 일찍 따드릴 걸 제가 눈치가 없었네요 허허"

할머니는 아무 말씀 없이 주스를 한 잔 들이켜셨다.

우리의 대화는 다시 이어졌다.

(내 어깨를 툭툭 치시는 할머니)

"이거 먹어~ 소금도 있어."

"아유~할머니 제가 사 먹으면 되죠 할머님 많이 드세요 진짜 괜찮아요~"

"받아 그냥~"

"정말 괜찮다니까요~제가 계란 까드릴게요 주세요~"

"정말 괜찮으니 먹어~"

"아고 네 알겠습니다~ 감사히 먹을게요~"

(나는 이때 잦은 거절도 할머니가 기분 나빠하셨을 수 있겠음을 직감한다)

할머니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나머지 봉투 안을 찾으셨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에게 다시 음식 하나를 건네주셨다.

"귤도 먹어~ 얼른 받아"

"너무 감사해요. 친구랑 같이 잘 먹을게요. 다른 거 필요하시거나 드시고 싶은 거 없으세요? 제가 사드릴게요~?"

"됐어~ 집 갈 거야~ 청년이 돈이 어디 있다고!"


우리 둘은 호탕한 웃음과 함께 감사의 인사를 건넨 후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이후 할머니는 가지고 있던 봉지를 버리고 일어나 집으로 향하셨고 우린 그 뒷모습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더 이상 할머니는 가진 것이 없었다.


자신이 준비해 온 모든 것 중 마지막을 우리에게 주셨다.


할머니가 건네 주신 두 개의 양식은 그녀의 호흡이자 삶이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했던 나의 행동에 할머니는 자신의 양식 모두를 주셨다.


요즘 사회에서 자신의 것을 타인에게 내어주는 일은 흔치 않다.


기다란 버스 줄이 어떤 버스의 번호를 의미하는지 물어봐도 묵묵부답인 사람들을 보며 느낀다. 매스컴은 연이어 마약, 사기, 범죄, 칼부림 등 자극적이고 악한 것들을 조명한다.


하지만, 할머니의 마음씨는 그것들과는 대조된다.


도움을 감사로 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씨, 자신의 것을 내어 유유히 떠나시는 발걸음. 모든 걸 주고 굽은 허리를 부여잡고 제자리로 돌아가시는 할머니의 모습에 우리를 되돌아보게 된다.


피해를 끼치진 않을까 염려하는 사회 속, 작은 선행도 특별함으로 다가오는 시대다. 물론, 특별함은 맞다. 


그러나, 따스함의 온도가 지금보다 높았던 수년 전의 시기가 그리워지는 것은 기분 탓일까?


나는 감사할 수 있게 작은 기회를 내어주신 할머니에게 또다시 감사를 표한다.


일상의 온도를 따스하게 올려주신 할머니의 몸과 마음이 나의 일상 저변에도 가닿길 바란다.


그 온도와 정냄새 풀풀 나는 향기를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는 건 어떨까?




잠시나마 따뜻했던 그때의 일상이 자리를 찾아가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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