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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고 Sep 21. 2021

우리가 몰랐던 혹은 모른 척했던 군대의 진실

<D.P - 개의 날>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넷플릭스 화제작 <D.P>를 보았다. <D.P>는 김보통 작가의 작품 <D.P 개의 날>을 원작으로 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로, 탈영병을 잡는 군무 이탈 체포조의 에피소드를 통해 군대 내 어두운 면모를 다루는 작품이다.

화제가 된 지 한참이 지났지만 이제야 본 이유는, 작품소개만으로 내 안에 남은 인류애가 바닥나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재생을 누르기만 하면 앞다투어 튀어나올 추악한 면모를 볼 자신이 없었다. 미루고 또 미뤘지만 작품을 향해 쏟아지는 호평과 “<D.P> 봤어?” 라는 주변 사람들의 질문에 결국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앉은 자리에서 하루 만에 전체 회차를 전부 봐 버렸다.


<D.P>는 화제성에 걸맞은 수작이었다. 예상한 대로 남은 한 점의 인류애까지 날아갈 만큼 무겁고 불편한 내용이었지만, 군더더기 없는 연출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이 만들어낸 흡입력이 대단했다. 그러나 마지막 회차의 크레딧이 올라갈 때, 쉽게 ‘재밌다’는 말을 꺼내기 힘들었다. 지금 군대에 있는 남동생부터 스치듯이 고충을 흘렸던 대학 동기, 못된 선임을 만나 힘든 군대 생활을 견딘 아빠까지. ‘너무하다’ ‘힘들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어쩌면 그들이 느낀 공포나 고충을 가늠하기보다 신기하고 생소한 에피소드로 소비한 주변 군필 남성이 모두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에게 ‘군대’ 이야기는 해가 갈수록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소재였다. 머리로는 군대 생활에 고충이 있고 폐쇄적인 시스템 속에 곪은 심각한 문제가 산더미라는 점을 아는데도, 내가 여성으로서 직면하는 수많은 문제에 비해 군대 문제가 사회적으로 자주 다뤄진다는 점만으로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남녀 갈등을 불러일으키기 쉬운 소재라는 이유도 한몫 했다. 군대는 내가 평생 경험할 일이 없는 공간이기에 항상 호기심을 가지고 경청했지만, 내가 변하고 사회가 변하면서 점점 알고 싶지 않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소재가 되었다.


하지만 <D.P>를 보고, 내가 군대 이야기를 편견 없이 경청한 순간에도 군필 남성이 느끼고 겪은 공포

, 낯섦, 압박과 자유박탈을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D.P>에는 총 4명의 탈영병이 등장한다. 탈영 이후 동선이나 행보는 모두 다르지만, 무려 4명 중 3명이 탈영 이유가 동일하다. 다름 아닌 군대 내 괴롭힘이다. ‘괴롭힘’이라는 단어가 너무 순해 보여 ‘폭력’ 등이 알맞겠다. 폭행과 괴롭힘은 고문에 가까울 정도로 강도가 세지만 이유는 너무 단순해서 상식 밖을 벗어난다. 재미있어서, 아니꼬워서, 그래도 될 것 같아서.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누군가는 생을 포기하고, 목숨 걸고 도망가고, 인생이 망가진다.


특히 조석봉을 주인공으로 한 4~6화 에피소드는 <D.P>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보여준다. 조석봉은 순하고 선한 인물이지만 단지 만화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오타쿠’로 불리며 선임들에게 수시로 치욕과 폭행을 당한다. 시청자는 조석봉이라는 인물을 통해 선한 사람이 어떤 임계점을 넘었을 때 인성이 달라지고 더불어 인생이 망가진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체험한다. 조석봉이 폭행을 당한다는 사실은 부대 내 모두가 알고 있지만, 조석봉을 괴롭히는 사람이나 조석봉을 좋은 선임으로 생각하는 사람 모두 사태를 방관한다. 어이없게도, 조석봉이 지속되는 물리적, 정신적 폭행을 참지 못하고 폭주했을 때 총구가 겨누는 상대는 가해자인 황장수가 아닌 피해자 조석봉이다. 방관자는 더 넓은 범위로 피해자의 일상을 압박한다는 점에서 가해자와 동일한, 때로는 가해자보다 더한 가해자가 된다.


군대는 철저한 상명하복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아래에서 위로 어떤 의견을 건의하기 어려운 환경임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방관자에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개인적으로 <D.P>에서 중점을 둔 부분은 ‘방관자들’이라고 생각하지만, 방관자를 다루는 에피소드에서 방관자 개개인이 가진 비겁함이 덜 다뤄진 듯해 아쉬움이 남았다. 가해자의 악함에 비해 방관자는 너무 뭉뚱그려지고 방관자이기도 한 주연 캐릭터들은 좋은 면이 더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이 분명 있지만, 잘 만든 작품이라는 점에는 여전히 이견이 없다.





드라마를 보고 원작을 찾아보았다. 드라마가 실제 인물로 군대 생활을 재현한 작품이어서 그런지 웹툰은 일상툰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림체가 비교적 간단하고 산뜻해(?)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처음에는 드라마가 주는 공포감이 반감되는 기분까지 들었지만 웹툰의 담담한 분위기가 주는 서늘함과 허망함이 또 달랐다. 웹툰을 원작으로 제작되는 드라마나 영화가 자주 범하는 실수가 웹툰의 진행을 그대로 따라가는 문제인데, <D.P>는 매체가 달라짐에 따라 분위기와 전개를 달리 한, 훌륭한 미디어 믹스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군대에서 겪고 느끼는 부분을 전부 이해하지 못하는 일에 죄책감을 가지지는 않는다.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라도 느낀 바가 다른데, 경험도 하지 못한 사람이 이해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남성이 평생 임신과 출산에 따른 신체 변화와 고충을 못 느끼는 것과 동일할 테니까.


다만 때때로 모르면서 너무 쉽게 말한 것들이 가슴에 남는다. 인구의 절반이 의무적으로 수행한다는 이유로 힘듦을 이야기할 때 지나친 순간이나 때로는 재미로 소비하고 때로는 은근히 무시하기도 한 순간이. <D.P>를 보고 난 이후에도 군필자에게 100% 이입하는 일은 힘들겠지만, 작품을 보고 나서 군대라는 폐쇄적인 시스템이 주는 공포와 압박감, 군대에서 발생하는 사건에 문제의식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지금 군대는 명백히 <D.P>에서 그리는 상황보다 훨씬 나아졌다. 그럼에도 <D.P>를 향해 언짢음을 표한 국방부의 성명이 씨알도 안 먹히는 이유는 군대의 근간을 이루는 상명하복 시스템이 군대 내 폭력의 근본적인 원인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런 성명을 발표한다는 자체가 군대가 아직도 폐쇄적이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는 아닐지. 부디 앞으로 군대에서 <D.P> 속 에피소드와 같은 일이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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