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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고 May 03. 2021

서사로 완성된 다이어트 바이블

웹툰 <다이어터>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난 여름이 정말 싫다. 추울 때는 껴입으면 되는데 이놈의 더위는 옷을 아무리 얇게 입어도 가시질 않는다. 여름은 샤워를 마친 순간부터 땀이 나고, 자고 일어났는데 등이 축축하고, 의자에 엉덩이 모양대로 땀 자국이 남는 계절이다. 무엇보다 싫은 건 옷이 얇아진다는 사실이다. 몸을 가리기 위해 더운 날씨에도 긴 팔 긴 바지를 입고 다니기 때문이다. 그렇다. 여름은 필연적으로 몸을 드러내야 하는 계절이다.

10년이 넘게 다이어트와 함께 하는 삶을 살았다. 성공한 적도 있지만 대부분은 철저한 계획과 쉬운 포기를 반복했다. 새해가 되면 야심차게 계획을 세웠다가 ‘진짜 한 해의 시작은 음력 1월 1일부터지!’ 라며 구정으로 미뤘고, 시작은 다시 계절이 바뀌는 3월로 미뤘다. 핑곗거리가 소진되면 그때부터는 매달 1일, 매주 월요일, 하다못해 24절기까지 끌고 와 날짜만 고르고 고르다 연말을 맞이하기 일쑤였다. 다이어트 방법도 마찬가지. 먹는 양을, 먹는 시간을, 먹는 음식의 종류를 제한하다가 결국에는 아무것도 제한하지 않는 행복한 돼지 라이프를 즐겼다.

하지만 매년 새해는 돌아오고 새로운 다이어트 방법은 쏟아지는 법. 그럴 때마다 이 방법에 혹하고 저 방법에 넘어가는 나였지만, 수많은 다이어트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홀리듯이 정기적으로 찾게 되는 다이어트 콘텐츠가 있으니 바로 웹툰 <다이어터>다.


언제봐도 죄책감을 자극하는 대사다. (<다이어터> 85화 中)


 <다이어터>의 줄거리는 매우 단순하다. 어려서부터 꾸준히 뚱뚱한 고도비만인 주인공 수지가 어딘가 수상한(?) 헬스 트레이너 찬희를 만나 인생 마지막 다이어트를 하고 건강한 몸을 되찾아가는 이야기. 2011년에 나온 단순한 이야기가 각종 다이어트 콘텐츠가 범람하는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뭘까.


다이어트를 해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경험해봤을 장면(<다이어터> 32화 中)


답은 ‘서사’에 있다. 세상에는 수많은 다이어트 콘텐츠가 있지만 대부분은 운동 방법과 식단 꿀팁 등 단편적인 지식을 전달해주는 데 그친다. <다이어터>는 다이어트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직면할 법한 모든 상황을 하나의 서사로 엮어내 독자를 감정이입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취향과 무관하게 체형을 가릴 수 있는 벙벙한 디자인의 무채색 옷만 가득한 옷장, 호기롭게 구매했지만 일주일도 못 가 방치된 요가매트, 한번 터진 식탐에 다 망했다면서 이성을 잃고 폭식하는 모습… 내가 일상적으로 경험한 내용이 모두 유사한 형태로 주인공 수지의 서사 안에 녹아 있다. 

수지의 서사로 엮어내지 못하는 상황은 주변 캐릭터를 통해 드러난다. 말로만 다이어트하는 아가리 다이어터, 마른 몸이 고민인 다이어터, 의지는 충만하지만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다이어터. 더 많은 유형의 독자가 공감할 수 있도록 작가는 이들을 건빵 속 빛나는 별사탕처럼 활용한다.


유산소 운동의 효과를 표현한 장면 (<다이어터> 32화 中)


서사의 힘은 다이어트 지식에서도 빛을 발한다. <다이어터>는 우리가 건강한 몸을 가지기 위해 하는 행동이 몸 안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각 과정을 마치 이야기처럼 풀어낸다. 건강 전문 서적에 나올 법한 내용은 만화적인 표현을 입고 아주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바뀐다. 작가의 연출과 스토리 덕분에 독자는 어떤 어려움 없이 몸 속 흐름을 따라가게 된다. 이는 <다이어터>에서 가장 감탄하게 되는 지점이다. 


<다이어터> 95화 中


아쉬운 점도 있다. 대부분은 너무 이른 연재 시기에서 기인하는 단점인데, 일단 폰트가 너무 작다. 더 나이 들면 폰트 크기 때문에 못 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여성을 향한 낡은 시각이 드러나는 점도 단점이다. ‘게으른 여자는 있어도 못생긴 여자는 없다’고 말하는 헬스 트레이너와 트레이너의 말을 듣고 시간을 쪼개 꾸밈노동을 시도하는 고등학생의 모습은 시대착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여전히 현실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상황이지만, 칼럼니스트 위근우 님의 말을 빌리자면 '창작에 있어 동시대에 대한 민감성이란, 단순히 지금 이곳의 풍경을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숨어있는 여러 구조적 모순과 부조리까지 인식하는 능력이다.' 해당 장면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작지만 최근 작품이었다면 분명 논란이 될 만한 부분이다. 주인공인 수지를 통해 뚱뚱한 사람을 향한 사회의 비뚤어진 시각도 다루는 작품이기에 더욱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었다.




30대에 접어든 나는 여전히 다이어트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약간의 변화는 생겼다. 이제는 미용보다 건강을 우선순위에 두게 됐다. 회사를 다니고 온종일 좌식 생활을 하면서 눈, 목, 어깨, 허리가 순식간에 망가진 탓이다. 마음가짐이 바뀌고 오랜만에 다시 접한 <다이어터>는 내게 어떤 다이어트 콘텐츠보다 건강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수지가 좌절할 때 내가 좌절하던 때를 떠올리고, 수지의 다이어트를 응원하면서 나 자신을 응원했다. 10년 동안 대체로 다이어트를 실패했지만 늘 실패하다가 결국엔 성공한 수지처럼 나도 성공할 수 있다고.

마인드를 바꾸니 행동이 변화했다. 난 현재 한 달 넘게 주 6일간 7천보 이상 걷고, 2주째 매일 취침 전에 마사지볼로 다리를 마사지하고, 아침에 일어나 출근 전에 15분 정도 스트레칭한다. 그동안 미용 목적의 단기 다이어트 방법만 섭렵한 나에게 정석의 스텝을 따르는 모습은 스스로도 고취될 정도로 놀라운 변화다.

‘다이어트’는 원래가 살을 빼는 행위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건강을 지킨다’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건강을 지키기 위한 식단’을 뜻하는 말이다. 나처럼 다이어트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 또는 신체를 이해하면서 건강한 몸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다이어터>로 진정한 다이어트 세계에 입문해 보길 바란다. 만화 한 편으로 작게나마 몸과 마음이 건강한 방향으로 변화하는 놀라운 경험을 공유하고 싶다. 이 경험을 함께하고자 <다이어터>를 읽게 된다면, 왜 아직도 <다이어터>에 대적할 만한 다이어트 만화가 없는지 알게 될 것이다.


<다이어터> 90화 中

 


작품명: <다이어터>
작가: 네온비/캐러멜
플랫폼: 다음웹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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