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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고 May 03. 2021

나는 당신의 FAN입니다

웹툰 <애프터 커튼콜>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친구가 돌이 지난 아기를 데리고 집에 놀러 온 적이 있다. 자리에 모인 모든 어른이 눈으로 집안 구석구석 뛰어다니는 아기를 좇았고, 고개는 아기가 돌아다니는 방향으로 왔다갔다 움직였다. 넘치는 애정 속에 신나게 뛰어다니는 아기를 보면서 대뜸 내가 이렇게 말했다.


“야, 너는 좋겠다. 날씬해도 귀엽다 그러고 뚱뚱해도 귀엽다 그러고. 웃으면 예쁘다 그러고 울면 달래주고. 뛰어다녀도 칭찬받고 걸어다녀도 칭찬받고 기어다녀도 칭찬받으니.”


예전에 SNS에서 이런 글을 봤다. 사람은 어릴 때 뒤집기나 일어서기 등 무언가를 시도만 해도 응원과 격려, 칭찬이 뒤따르는데, 크면 클수록 응원, 격려, 칭찬은 줄어들고 그 자리를 야단, 비교, 무관심이 채운다는 내용이었다. 성인이 된 나는 친구네 아기와 달리 무언가를 ‘잘’ 해야 칭찬받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내게도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가족과 친구가 있다. 하지만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된 조건 없는 전폭적인 응원은 갈수록 받는 일이 드물다.


재이와 소영의 첫 만남 (<애프터 커튼콜> 1화 中)


<애프터 커튼콜>은 단 한 사람을 향한 아름다운 응원을 그린 작품이다. 연극과 뮤지컬을 사랑하는 덕후, 일명 연뮤덕인 소영은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컬 배우들이 매체 활동을 시작한 후 무대 활동을 그만두면서 연뮤덕 인생이 끝날 위기에 처한다. 오랜 연뮤덕 메이트가 기분전환 겸 데려간 연극에서 무명 연극 배우 재이를 만나기 전까지 말이다. 뮤지컬 덕후 외길 인생인 소영은 무대 위에서 재이가 내뿜는 존재감에 반해 그날로 본진을 갈아치우고 다음날부터 매일매일 연극을 보러 간다.


귀여운 덕후의 모습을 보여주는 소영>_< (<애프터 커튼콜> 3화 中)


한편 재이는 팬이 생긴 상황이 낯설다. 고등학생 때부터 누구보다 진지하게 열정을 가지고 연기에 임했지만 연기하는 삶에는 장애물이 많았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항상 따라다녔고 부모님은 오매불망 안정된 직업을 원한다. 차기작은 늘 불투명하고 설상가상으로 여성 연기자에게 배당된 배역은 너무 적고 제한되어 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연기를 지속하는 삶을 고민하는 찰나에 소영이 나타난다. 재이는 자신을 향한 소영의 팬심이 신기하고 가끔 멋쩍지만, 어느새 소영은 재이가 연기를 계속하는 원동력이 된다. 매일 자기 연기를 보러 오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진심을 담아 건네는 칭찬 덕분에 스스로 선택한 꿈을 계속 꾸고 싶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마케팅을 위해 오디션도 보지 않은 유명 연예인이 주연으로 캐스팅된 연극에 참여하고, 차기작 제안이 왔는데도 생계를 위해 포기하고 연기학원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재이가 자신감을 가진 이후에도 자신감을 떨어뜨리는 장애물은 길목마다 존재한다. 그때마다 소영은 전 회차 관람으로, 재이가 참여하는 연극에 식사를 보내는 서포트로, 극단보다 더 열성인 SNS 마케팅으로 재이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두 사람은 어색하기 짝이 없는 무명 배우와 팬의 관계에서 친구로, 더 나아가 서로의 일상을 지탱하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재이는 마침내 연극 첫 단독 주연을 맡게 된다.


작품의 눈물버튼 장면 중 하나. (<애프터 커튼콜> 51화 中)


단독 주연을 맡은 연극 첫 공연에서 기립 박수를 받고 울음을 터뜨린 재이가 마음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는 작품 내내 재이가 운 적이 없어서다. 가수나 배우처럼 봐주는 사람이 있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직업은 활동을 응원하는 팬의 존재가 무엇보다 소중하다. 팬은 무대를 보고 떠나는 사람이 아니라 무대를 보고 다음 무대가 열릴 때까지 기다려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본인도 기약하기 힘든 다음을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힘이고 자신감이고 희망이다. 팬 덕분에 누군가는 자기 재능을 의심하지 않고 계속 나아가고, 힘든 현실을 감내하면서도 꿈을 놓지 않는다. 재이가 소영을 떠올리며 매번 다시 힘을 내고 자신감 있게 공연을 마친 것처럼. 아마 재이는 기립 박수를 받은 순간 스스로 끊임없이 의심하고 포기한 지난날을 보상받는 기분이 아니었을까.

두 사람의 믿음은 아름답게 결실을 맺는다. (<애프터 커튼콜> 51화 中)


뛰어난 연기로 무대 한가운데에서 기립 박수를 받는 재이 뒤에는 항상 소영이 있다. 재이가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 세상 모든 사람이 재이의 뛰어난 연기력을 알아보지 못해 안타까운 사람. 덕후가 아닌 사람으로서 소영을 보면 신기한 구석이 있다. 맹목적인 애정과 끊임없이 응원하는 방법을 생각해내는 에너지는 어디에서 오는지.

작품을 보다 보면 소영의 에너지에 놀라는 마음보다 소영에게 응원을 받는 재이를 향한 부러움이 점점 커진다. 나 역시 소중한 사람들이 아픈 일 없이, 힘든 일 없이, 바라는 바를 성취하기를 진심으로 바라지만, 타인을 응원하고 걱정하는 마음으로 일상을 채우지 않는다. 내 일상은 대부분 나를 위한 마음으로 가득 차 있다. 내가 나아가야 할 길, 내가 바라는 일, 나를 가로막는 걱정,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오롯이 타인을 위해 마음을 쓰는 하루는 드물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일 테다.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은 어렵고 대단하고, 그만큼 따뜻하고 소중하고 귀하다.

어른이 될수록 한 사람을 위해 마음을 쓸 여유가 없어지는 걸까. 그렇다면 조금 슬퍼진다. 재이와 소영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부러움을 느끼지 않을 방법을 고민해봤다. 연예인이 아닌, 내 주변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덕질해 보면 어떨까? 온 정성을 다해서 상대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에너지가 많이 들겠지만 내가 에너지를 주는 만큼 누군가에게 에너지를 받는다면 우리는 모두 소영처럼 내면이 사랑으로 가득한, 진정한 행복을 만끽하는 하루하루를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


재이와 소영 두 사람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반짝이는 모습(<애프터 커튼콜> 49화 中)



작품명: <애프터 커튼콜>
작가: 아쌈(글)/지나(그림)
제작사: 키다리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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