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갖자 프로당근러가 되었다

by 문맥


아기가 생기면 엄마들은 둘 중 하나가 된다. 아기에게 좋은 거라면 뭐든지 새것으로 사주는 플렉스맘이 되거나, 프로당근러가 되거나.




“쌍둥이네요. 축하드려요!“

담당 선생님이 말했다. 나는 초음파 의자에서 다리를 벌리고 누운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머릿속이 캄캄했다. 쌍둥이라고? 지난주만 해도 아기집이 하나만 보였었는데?

믿기지 않았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쌍둥이는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서른에 결혼해 서른 중반에 임신 준비를 하고 후반에 출산한다. 아이는 외동일 것.’ 이것이 내 가족계획이었다.

물론 계획이란 게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임신 준비를 시작했지만 생각처럼 아이가 찾아오지 않았고, 난임병원까지 오게 됐으니.

손을 덜덜 떨면서 아랫배에 주삿바늘을 꽂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을 오가는 생활을 했다. 만 35세 이상인 나는 배아 두 개를 이식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두 배아가 모두 착상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1년 동안 자연임신이 되지 않았고, 이후에 인공수정도 모두 실패했기 때문에 나는 정말 난임여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나만 착상돼도 대성공이었다. 그런데 첫 시험관 시술에 2개 모두 착상된 것이다.

쌍둥이를 확인한 날, 나는 진료실에서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굳은 얼굴로 네네, 하고 대답하고서 병원을 나왔다.

*

남편은 아이를 둘 낳고 싶어 했기 때문에 좋아했지만, 나는 그렇지가 않았다. 우리 상황에 정말 두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우선 집이 좁았다. 애초에 세 가족을 계획했기 때문에 집 구조와 평수도 그에 맞춰 매매했다. 그 다음 문제는 두 아이를 키우는데 드는 비용이었다.

임신 소식을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오랫동안 프리랜서로 일하던 회사에서 해고되었다. 앞으로 내 통장에는 돈 한푼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해고 소식을 들은 뒤부터 본격적인 멘붕이 시작됐다. 남편의 월급에서 아파트 대출빚을 갚고 나면 네 가족이 살기 턱없이 부족했다. 임신 호르몬 때문인지 우울감은 몇 배나 높았다.


“애들이 내 인생을 망쳐놨어.”


하루에도 수없이 중얼거렸다. 밤에는 남편에게서 등을 돌리고 누워 숨죽이며 울었다. 지금 형편에 아이 둘을 키우게 된 사실이 막막하고 무서웠다.

병원에 갈 때마다 둥이 중 하나가 도태되길 바랐다. 엄마로서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그런 마음이 들었다.


막상 초음파로 두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는 것을 보고 나면 뭉클하고 기분이 좋았다.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정신이 돌아왔다. 두 아이를 가진 것이 삼신할매의 뜻이라면 받아들여야겠다 싶었다.


백수가 돼서 할일도 없으니 쌍둥이에 대한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아이 둘을 키우는 지인들에게 조언을 구했고, 쌍둥이 카페에 가입해 매일 올라오는 글을 읽었다. 그리고 인생 계획을 다시 세웠다.

*

외동이었다면 영끌이라도 해서 플렉스맘이 됐겠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필요한 물건을 사되 최대한 저렴하게 구매해야 했다. 얼마 쓰지 않는 아기물건들을 모두 2개씩 구비해야 한다.

예전엔 중고거래가 남의 손때 탄 물건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이젠 아니다.

중고거래는 현명한 소비다!

지웠던 당근마켓 어플을 다시 깔았다. 필요한 아기용품을 알림 키워드로 설정했다.

이날부터 나는 프로당근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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