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당근러가 되고나서부터 물건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임신을 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집 정리’였다. 기존에 있던 물건들을 처분하고 그 자리에 아기들 물건을 채워야 했다.
그 과정에서 곤도 마리에의 <정리의 힘>이라는 책을 만났다. ‘설레는 물건만 남길 것. 설레지 않으면 과감히 처분할 것.’
책의 조언에 따라 집안의 물건들을 모조리 끄집어냈다. 잡동사니가 거실 한가득 쌓였다.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설레는 것과 설레지 않는 것. 앞으로도 내가 계속 사용할 것과, 한 달 뒤에도 꺼내보지 않을 물건들을 분류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물건에 가치를 매기게 됐다. 얼마에 샀는지보다 내가 얼마나 자주 쓰는 물건인지, 얼마나 아끼는 물건인지가 더 중요했다.
비싸게 주고 산 물건이었는데도 내게는 아무런 값어치를 하지 못하는 물건들도 있었다. 당장 샀을 땐 설레었지만 몇 번 쓰고 나니 더 이상 필요 없어진 물건들이었다. 쓰지 않지만 아까워서 수납장에 넣어놓은 물건들이 정말 많았다.
옷도 그랬다. 싼 옷이든 비싼 옷이든 결국엔 입는 옷만 입게 됐다. 안 입는 옷은 색이 바라거나 오래되어 퀴퀴한 냄새가 나는 것도 있었다. 안 입는 옷을 버리면서 생각했다.
‘집에 쌓인 물건들은 결국 쓰레기구나.’
옷들은 버렸지만, 물건들 중에는 아직 쓸 만한 것들이 많았다. 내게는 쓰레기나 다름없지만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보물이 될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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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마켓에 물건을 내놓으려 하니 먼저 할 일이 있었다. 바로 물건값을 정하는 일이다. 나는 물건값 정하는 기준을 ‘소중함의 정도’로 나누었다.
두 가지 판매 유형이 생겼다. 가격을 높게 책정한 대신 오랫동안 주인을 기다리는 물건과, 저렴하게 파는 대신 빨리 주인을 찾아가는 물건.
그중 바이올린은 가장 오랫동안 주인을 기다렸다. 순전히 나의 욕심 때문이었다.
나는 바이올린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바이올린이라는 악기도 사랑한다. 어깨에 나무악기를 올려놓고 연주를 하면, 악기가 살아있는 것처럼 나와 호흡을 맞추는 것만 같다.
도무지 단순한 사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중고악기도 버려지는 것이 안쓰러워 당근에서 구매해서 수리해 썼다. 매일 윤이 나도록 닦고 여름과 겨울에 습도 관리도 철저히 했다.
그런데 악기 욕심은 끝이 없어서, 새로운 악기를 사오게 되었다. 원래 쓰던 바이올린은 정이 많이 들어 가지고 있었다.
그 바이올린은 거의 방치되어 있던 데다 자리도 많이 차지했다.
이젠 보내기로 결심했다. 당근마켓에 바이올린을 올리면서 구매한 가격에서 거의 깎지 못했다. 왜냐면 바이올린은 그만큼 내게 소중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주인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장문의 글을 올려 이 악기의 장점을 자랑하고, 얼마나 관리를 철저히 하며 아껴주었는지 적었다. 매일 당근 어플을 확인했다.
긴 기다림 끝에 바이올린은 제 주인을 찾아갔다.
바이올린을 처음 배우는 분이셔서 지하철역에서 꽤 오랫동안 바이올린을 보여주며 관리하는 방법을 설명해준 기억이 있다.
그만큼 바이올린이 새 주인에게 가서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반대로 지금 내게 소중하지 않은 물건, 즉 한때는 소중했지만 이제는 더는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 물건은 아무리 비싸게 주고 샀더라도 싸게 내놨다. 6만 원짜리를 5천 원에 올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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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당근러가 된 지금이라면 바이올린도 조금 더 저렴하게 내놨을 것이다. 소중함에 따른 값어치로 값을 매기는 건 맞지만, 소중함의 기준이 돈이 전부는 아니라는 걸 알게됐기 때문이다.
당근마켓을 이용할수록 내가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 누군가에게는 보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내게는 값어치가 떨어져 소외받던 그 물건이, 누군가 보물처럼 품안에 품고 가는 것을 볼 때의 뿌듯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어느 샌가부터 당근마켓은 단순히 안 쓰는 물건을 돈 받고 파는 플랫폼이 아니었다. 내게 필요 없어진 물건의 진짜 주인을 찾아주는 귀중한 장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