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전, 장기 여행에서 돌아오면 친구들에게 전해줄 목적으로 오래 머물렀던 지역의 정보를 구글 지도에 저장했었다. 하지만 곧 코로나가 세상을 덮치면서 차곡차곡 모아놓았던 음식점, 시장, 교통 정보는 데이터센터에서 탄소나 뿜어대는 무가치한 것이 되어버렸다. 정보에는 유통기한이 있다는 사실을 그 때 배웠다.
2024년 여름(6월 말), 스리랑카에 다녀왔다. 슬슬 상해 가는 정보들을 추려 조심스럽게 식탁에 올려놔본다. 다가올 여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길 바라며.
벌써 꽤 많은 시간이 지나버렸다는 점, 지역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늙고 나약한 백팩커의 기록이라는 점을 감안해주길.
1. 공항
스리랑카의 국제공항인 ‘콜롬보 국제공항’은 콜롬보가 아니라 ‘네곰보’에 있다. 우리로 따지면 이름은 ‘서울’ 공항이지만 서울이 아니라 부천 정도에 있다고 보면 된다. 공항은 생각보다 작은 편이며, 입국심사, 짐검사도 꽤 빠른 편이다. 아마 비자를 신청하고 와서 그랬을 수도 있다. 도착 비자가 있다고 들었는데, 심사장 그 어디에서도 도착 비자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공항 안에서는 와이파이가 가능하고, 스리랑카치고는 화장실이 깨끗한 편이다. 공항 내 환전소는 모든 업체가 동일한 환율이기 때문에 관상이나 말뽄새를 보고 선택하면 된다. 호객은 있으나 “올 쒜임 프롸이스”를 강조하며 손짓만 하는 정도다. 환율은 적당한 편이었고, 바로 캔디로 가는 여행 코스가 아니라면 공항에서 환전하자. 스리랑카는 호텔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곳에서 여전히 현금을 사용하고 있었다. 내 여행 일정은 네곰보에서 하루 쉬고 담불라로 넘어가는 것이었는데, 두 곳 모두 환전소를 찾기 쉽지 않았다.
공항을 나가면 쉽게 들어올 수 없다. 그러니 육지와의 만남에 너무 가슴설레어 바깥 공기 마시겠다고 냉큼 뛰쳐나가지 말고, 공항 안 와이파이로 모든 걸 해결한 뒤 밖으로 나가자. 특히 유심 판매소, 환전소 모두 공항 안에 있는데, 공항 입구를 경비들이 막고서 보딩패스를 제시해야만 들어갈 수 있다. 보딩패스가 없다면 공항 안으로 다시 들어오지 못하게 막을 수도 있으니 꼭 챙겨놓자(당시 나는 보딩패스를 잃어버린 상태였는데 관대하고 준엄하고 은혜로우신 직원분이 특별히 들여보내줬다).
여담으로, 유심을 사는데 중국인 여자 여행객 한 명이 유심 판매소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앱을 이리저리 휘휘 거리는 걸 보니 현금이 없었던 모양이다. 뭔가 난처해 보여서 도와주려고 여행자들의 연대 의식을 잔뜩 담은 눈빛을 보냈는데, 아쉽지만 그 친구는 나를 그냥 여행지에서 플러팅하고 싶어 안달 난 풋고추 정도로 봤던 것 같다. 나에 대한 눈빛이 너무 싸늘해서 조용히 유심만 사고 왔다. 잊지 말자. 도착하면 반드시 환전부터 하자. 올 쒜임 프라이스니까 걱정말고 바꾸자.
콜롬보 공항의 만남의 장소는 공항 우체국 앞이다. 공항 우체국은 출구에서 나가자마자 왼쪽으로 쭉 나가면 있다. 공항 건물에 속해있고, 출구와도 멀지 않은 곳에 있지만 우체국 근처에서는 공항 와이파이가 잡히질 않는다. 멀지도 않고, 우체국 근처로 갈수록 배낭 맨 외국인 밀도가 높아지니 쉽게 찾을 수 있다. 되도록이면 도착 날은 공항버스보다는 숙소 픽업 서비스를 권한다. 가격은 비싸지만 공항버스의 퀄리티가 높지 않고 첫날의 경우 터미널에서 숙소까지의 이동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에 픽업을 이용하는 것이 속 편하다(대중교통은 정보가 빈약하고, 픽미 어플을 써서 뚝뚝을 타야함).
2. 숙소
24년 6월 기준, 대부분의 스리랑카 숙소는 거의 모두 후불제로 운영되고 있었다. 숙소 측에서 임의로 취소한다던가 예약이 겹쳐 방이 없거나 하는 일은 없었는데, 아마 성수기에서 조금 비켜나서 그랬던 것으로 추정된다(6월 말). 가격은 아고다가 가장 저렴했다. 스리랑카는 코로나와 경제 위기 이후 GDP의 큰 축을 담당하던 관광업이 많이 위축되었는데, 후술 하겠지만 개인적 견해로 스리랑카 관광업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아 보인다(다른 나라에 비해 매력도가 떨어진다). 숙소는 2~3일 전까지 예약 취소가 가능했다. 여행 일정을 보다 유연하게 가져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보증금을 내지 않다 보니 숙소 측에서 임의로 예약을 취소할 수도 있으니 성수기라면 차선책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3. 사기
스리랑카 길거리에서 ‘영어’를 쓰면서 말을 거는 사람은 99.8퍼센트 사기꾼이거나 가이드를 빙자한 사기로 돈을 벌어먹는 사람들이다. 나름 백팩 매고 방귀 좀 뀌어봤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작은 키와 애매하게 어려 보이는 글로벌 호구 관상을 가진 사람으로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말이다. 인도 기차역 한복판에서 우리의 뚝뚝 대협들께서는 누가 봐도 돈 많아 보이는 유럽인 어르신들과 배낭여행이 마냥 행복한 레깅스 입은 체육인 누나들 사이를 헤치고 180cm 느릅나무들 틈바귀에서 은엄폐하고 있는 나에게 달려와 호객질을 하곤 했다. 평소에 그런 사랑과 관심을 받고 살았으면 이딴 힘든 배낭여행 따위가 인생에 있었을 리 없었다. 어쨌든 여하튼 아무튼 스리랑카엔 ‘인도식’ 사기가 은근하게 만연해 있다. 물론 델리나 바라나시만큼 내공이 출중한 대협들이 있는 건 아니지만, 오히려 여행자 처지에서는 인도보다 스리랑카에서 더 사기를 당하기 쉽다. 왜냐하면 그 사기꾼을 제외한 다른 현지인들은 여행자들에게 매우 친절하고 살갑게 대해주기 때문이다. 스리랑카 사기꾼들은 인도식 “헬로! 마이 프렌드”와 같은 신호를 주지 않고, 은근슬쩍 다가와서 외국인에게 영어 한마디하고 싶어서 말 건 순수한 사람으로 위장한다. 버스나 음식점 등에서 외국인이 신기해하는 현지인들이 만나다 보면 어느 순간 무장해제가 되기 마련이다. 그렇게 잠깐 방심한 사이 바로 마살라 맛 물씬 풍기는 여행 사기 국민 콤보가 작렬하는 것이다.
“네가 타려는 버스는 오늘 오지 않아, 이미 다 떠나고 없어. 미안, 스리랑카는 늘 그래. 하지만 넌 럭키한 걸! 왜냐고? 내가 데려다줄 수 있으니까!”
“오늘 1년에 단 하루 부처님 머리카락을 공개하는 날이야. 넌 참 럭키해. 이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기회라니까!”
“버스비? 천 루피야. 350루피라고? 옆자리 애가 350루피를 냈다고? 아니. 1,000루피야. 씨발 너는 그냥 천 루피라니까?”
“오 친구, 그곳은 입구가 아니라 출구야. 내가 입구로 데려다줄게, 왜냐면 난 한국인을 사랑하거든. 내 목숨을 한국인이 구했어. 유명한 한국인 교수가 날 치료했지. 난 한국인들을 좋아하고, 그들을 도와야 해.”
그래서 의외로 여행 초반보다 중 후반, 따뜻한 랑카 사람들의 미소와 친절이 스며든 순간 사기에 취약해진다.
가장 조심해야 할 시그널은 ‘영어’다. 랑카 사람들은 인도와 달리 의외로 영어에 능한 사람 비중이 작고,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도 나에게 먼저 말을 걸거나 호의를 베푸는 사람은 늘 다른 의도나 목적을 숨기고 있었다. 일반적인 랑카 사람들은 나 같은 눈 작고 멍청한 백팩커를 신기하게 볼 뿐, 나서서 뭔가를 도와주지 않는다. 혹시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오면 누군가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피하고, 나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자.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버스 정류장 위치를 알려주고는 내가 버스에 올라탈 때까지 시선을 거두지 않을 것이다. 내가 겪었던 랑카 사람들을 그랬다.
4. 스마트폰, 그리고 기차
그렇다면 뭐 어떻게 피하라는 겁니까? 다행히 2024년엔 스마트폰이라는 기계가 있었다. 90년대 배낭여행 1세대들이 들으면 기함할 일이지만, 요즘 여행은 사실상 요놈이 다 한다고 보면 된다. 스리랑카는 기차 시간표나 숙소 위치 등 여러 가지 여행 관련 정보에 있어 의외로 구글 지도가 꽤 정확한 편이었다. 그리고 기차에 관해 가장 정확한 정보는 기차역이나 버스 터미널 벽면에 있었다. 기차나 버스 시간표는 구글 지도에 나와 있는 내용을 참고하되, 기차역에서 최종 확인을 하면 된다. 그래도 모호하다면 매표소 직원을 찾아가 물어보면 된다(하지만 정보의 정확도와 별개로 싸가지는 드럽게 없는 편이니 너무 상처받지 말자). 기차의 경우 여러 기차들이 공용 철로(와 플랫폼)를 공유해서 쓰는 경우가 많으니, 시간을 정확히 숙지한 다음 직원에게 물어보고 타면 큰 문제는 없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