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에 이어)
5. 버스
하지만 버스는 기차와 조금 다르다. 버스 터미널의 경우 케바케인데, 터미널마다 제각각인데다, 육안으로는 체계를 파악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하고, 또 혼잡하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중간에 내려서 직접 환승해야하는 버스는 피할 필요가 있다. 나의 경우 버스 환승을 위해 대기했던 웰라와야 버스 터미널이었는데, 다행히 버스 스케줄이 벽면에 정확히 적혀있었고 투어리스트 인포메이션 센터가 터미널 안에 따로 있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이 인포메이션 센터 안을 우리의 대협들께서 놀이터 다니듯 들락날락하면서 자기가 마치 센터 직원 인양 “벽면에 적힌 스케쥴이 잘못되었다”, 혹은 “10시 반 스케줄은 터미널로 오는 거고 가는 버스는 1시간 뒤에 있다” 따위의 무공을 시전해 선량한 백팩커들을 현혹시킨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버스 터미널에서 우리같은 비천한 백팩커들은 강호인들을 피해 관인을 찾아 두 가지를 알아내야 한다. 하나는 버스를 타는 곳. 다른 하나는 버스가 오는 시간. 참고로 웰라와야 버스 터미널에서 갈레가는 버스는 터미널 안에 들어오지 않고 바깥 쪽에서 사람을 싣고 바로 출발하는 구조였다. 나에게 신나게 야부리를 털던 한 강호인은 “너 왜 길에서 버스 기다림? 여기에 버스 안오니까 나랑 같이 가자”를 무려 10분 동안 떠들어댔다. 그 동안 내 뒤로는 갈레 가는 손님들이 줄지어 섰지만 그는 아랑곳 없이 버스에 올라타는 직전까지 구애의 몸짓을 멈추지 않았다. 돈 버는 게 이리도 힘들다. 앞서 언급했듯, 버스 터미널에선 영어를 구사하며 나에게 도움을 주려는 사람을 과감히 무시하면서, 용호상박 쌍룡쟁투의 광경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는 스리랑카 현지인들에게 슬쩍 물어보자. “갈레? 골?” 어차피 내가 묻고자 하는 건 버스를 타는 위치고, 지명만 알면 된다. 일반적으로 버스 터미널의 경우 목적지가 적혀있는 경우가 많지만, 스리랑카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기다리는 사람에게 지명을 물어서 확인을 받고(내가 물은 사람이 영어를 하고 두 마디 이상 나에게 말을 건다면 화장실 간다고 하고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자. 그 분은 대협일 가능성이 높다) 버스가 도착하면 티켓보이에게 다시 한번 확인을 받자. 스리랑카 버스는 티켓보이가 버스 입구에 달랑달랑 매달려 목적지 이름을 목이 터져라 외치면서 호객을 하는 구조이다. 한 놈이라도 더 태우려고 하기 때문에 금방 알아볼 수 있다.
6. 한번 더, 버스
터미널이 아니라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야할 때는 어떨까? 의외로 터미널보다 수월하다.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버스가 지나갈 때 “갈레?” “콜롬보?” 물으면 티켓보이가 태우거나 쌩을 깐다. 버스들은 사람이 서 있으면 거의 다 멈춰준다. 한 명이라도 더 태우려고 하기 때문이다. 가끔 저 버스가 맞나? 싶은 버스들이 와도 놀라지 말자. 로컬 버스가 시내버스/시외버스 기능을 모두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얼추 방향이 맞으면 타면 된다. 예를 들어, 웰라와야 버스 터미널에서 갈레 가는 버스를 탄다면, 미리싸 같이 버스가 지나가는 마을 정류장에는 죄다 들른다고 보면 된다. 물론 큰 마을이 아니면 길거리에서 내려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류장은 표지판이나 사인이 없는 곳이 많은데, 구글 지도가 생각보다 정확했다. 이게 정류장? 싶다가도 서 있다 보면 사람들이 조금씩 모여든다.
스리랑카는 버스를 타면서 바로 돈을 내지 않는다. 버스를 타게 되면 일단 티켓보이의 손에 주목하자. 손에 영수증 기계가 들려 있다면 마음 놓고 창밖 구경을 하면 된다. 영수증을 끊어주는 티켓보이들은 사기를 잘 치지 않는다. 손님들을 받고 나서 여유가 생긴 티켓보이들이 자리를 돌면서 수금을 한다. 목적지를 물어보고 그거에 맞는 금액을 청구하는 방식이다. 도착 지역을 찍으면 그에 맞는 금액이 찍힌 영수증이 나오기 때문에 뒤통수 맞을 일은 잘 없다. 하지만 손에 영수증 기계가 없다면 긴장해야 한다. 스리랑카에는 외국인들에게는 일단 2~3배 부르고 보는 글로벌 스탠다드 바가지 문화가 특히 버스에 많이 있다. 물론 로컬 버스가 가격이 워낙 저렴해서 타격이 크진 않지만, 일단 기분이 더럽기 때문에 살짝 저항해줄 필요가 있다. 간단한 방법으로는 옆에 탄 로컬 랑카 승객에게 대략적인 가격을 물어보면 된다. 버스 승객은 대협이 아니니 믿어도 된다. 목적지만 말하고 돈 보여주면 승객들이 대충 알려준다. 물론 티켓보이들은 거스름돈을 주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을 잊지 말자. 사기를 덜 당하고 싶으면 일부러 200루피 정도를 내고 이거 맞아? 하면서 뽀로로 눈빛을 쏘면 된다. 그럼 더 달라고 하는데 거기에 맞춰서 더 내면 된다.
7. 또 다시, 버스
스리랑카 버스 중에 가장 악질은 공항버스다. 옆에 놈이 350루피를 낸 걸 뻔히 봤는데도 나같은 글로벌 호구에게는 1000루피를 내라고 땡깡을 부린다. 의외로 공항버스는 공항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주변 마을 여기저기를 들렸다가는데, 지도상으로 공항 근처에 다다른다면 일찍 내린 다음에 적당히 400~500루피만 내고 걸어서 들어가도 된다. 왜 일찍 내려야하냐고? 일찍 내려야만 티켓보이와의 일합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리랑카 버스들은 정말 바쁘다. 흥정질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가 없다. 그 흥정질을 버스 안에서 하라고 티켓보이가 있는 것이다. 그들은 떠나야 하기 때문이고, 실랑이가 벌어지고 500루피를 흔들고 있으면 로컬 승객들이 대충 어떤 상황인지 감을 잡고 째려보기 시작한다(물론 나서서 도와주지 않는다. 스리랑카 사람들은 인도 사람들처럼 오지랖이 넓지는 않은 것 같다). 대부분의 여행지에서 시간은 현지인의 편이기 마련이다. 급한 여행자들이 손해를 본다. 하지만 적어도 공항버스에서만큼은 아니다. 시간은 우리 편이다. 되도록 타기 전에 금액 흥정을 마치고 타자. 떠나는 마당에 얼굴 붉히는 거 유쾌한 일 아니다. 그리고 걸어 들어가는 길도 살짝 위험하니까 가급적이면 흥정 마치고 타자. 2024년 기준 로컬 승객이 냈던 금액은 대략 350~400루피였다.
공항버스를 찾는 건 아주 쉽다. 콜롬보 기차역에서 내린 다음, 구글에 에어포트 버스 터미널이라고 되어 있는 곳까지 걸어가면 입구부터 “에어뽀뜨!”라고 외치는 티켓보이가 있다. 그 놈을 따라가면 된다. 적극적으로 호객질을 하는 걸로 봐서는 버스가 한 대가 아닌 것 같았다. 공인된 버스라기보다는 사설 버스 같았다. 타기 전에 반드시 금액 협상을 마치자.
8. 마지막으로 버스
스리랑카는 대부분의 도로가 편도 1차선이다. 뭐 당연하지만 대부분의 거리엔 신호등이 없기 때문에 동남아에서 갈고 닦은 무단횡단 실력을 뽐내야만 길을 건널 수 있는데, 시야 안에 스리랑카 로컬 버스가 보이는 순간 걸음을 멈추고 도로 바깥으로 최대한 멀리 떨어져 기다리는 것이 신상에 이롭다. 스리랑카 도로의 왕은 로컬 버스다. 평화로운 부처님의 나라에 자비로움 따위는 먼지만큼도 없는 거대한 쇳덩이가 혼자 이니셜D를 찍는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 레이싱 만화에서나 볼법한 무브먼트로 달린다. 도로 사정이 매우 열악함에도 버스 연착이 생각보다 심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의 뛰어난 운전실력, 자비없는 추월 실력에 있다.
길이 좁아서 중앙선이 무색한 스리랑카 도로를 혼자 반절이나 차지할 만큼 덩치는 큰 주제에 운전은 깡패 그 자체다. 고막을 찢어먹을 듯한 경적을 핸들 돌릴 때마다 눌러 재끼는 건 기본이요. 운전은 또 어찌나 난폭한지 한 달에 한 장씩 교통사고 면책권이라도 받는 것 마냥 엑셀을 밟으며 다닌다. 뚝뚝 아저씨들이 불쌍하게 느껴진 나라는 랑카가 처음이었다. 일단 로컬 버스가 뜨면 사람이건 뚝뚝이건 일진 뜬 중학교 복도처럼 알아서 잔챙이들이 피해 다닐 수 밖에 없다. 그들은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보법"이 다르다.
9. 픽미
스리랑카 뚝뚝 어플은 ‘픽미’인데, 그랩이나 고젝과 달리 후불제다. 뭐 이제는 당연한 얘기지만 뚝뚝 아저씨들은 절대 거스름돈을 주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잔돈을 항상 가지고 있을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스리랑카 숙소는 대부분 후불제이다. 숙소에 돈을 낼 때, 마트에서 물이나 물건을 살 때, 투어비를 낼 때 반드시 큰 돈을 내서 잔돈을 확보하자. 100루피 단위로 가지고 있어야 손해를 덜 본다. 물론 물가가 싸니까 베풀며 다니겠다하면 그냥 내도 된다. 픽미 기사님들은 대부분 매우 친절하셨다. 그 친절이 고마워서 내리고 팁으로 잔돈을 안 받겠다고 한 적도 많았다. 스리랑카는 앞서 말했듯 버스들이 워낙 위험하게 달리기도 하고, 인도가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지 않은 곳이 많아 도보로 이동하기 어려운 곳들이 많다. 가급적이면 픽미를 이용하자.
(3편에서 계속)